가상 자산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도지코인(DOGE)'은 들어봤을 것이다. 귀여운 시바견이 마스코트인 이 가상 자산은 수많은 밈(meme :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양산하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가세해 도지코인에 관해 꾸준히 언급하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테슬라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하고 스페이스X에도 도지코인 결제 기능을 도입하겠다고 발언해 비트코인의 가격 폭등에 일조했는데, 4개월 뒤 돌연 비트코인을 비판하며 '도지코인은 사기'라고 말해 코인 가격이 폭락했다.
이런 도지코인 열풍에 힘입어 여러 유사 밈 코인들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는 진돗개를 모델로 쓴 '진도지 코인(JINDOGE)'이 대표적이다. 가격 반등 기대감에 투자자들이 몰렸던 진도지 코인은 거래소 상장 하루 만에 개발자가 전체 물량의 15%(약 26억원)를 매도한 후 잠적했다. 이후 진도지코인 가격은 90% 이상 폭락했고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이는 밈 투자 열풍을 노린 펌프 앤드 덤프(pump-and-dump)라고 볼 수 있다.
펌프 앤드 덤프는 주식 시장에서 쓰이는 시세 조작 수법 중 하나다. 주식을 싼값에 매입하고 허위 정보 등을 퍼뜨려 사람들을 속인 후 다시 비싼 가격에 되파는 수법을 말한다. 허위 정보에 속아 주식을 사들인 신규 투자자들로 인해 주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이를 본 주식 보유자들이 수익을 위해 주식을 대량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구조다.
가상 자산 시장에서도 펌프 앤드 덤프 수법이 목격되고 있다. 새로운 토큰을 쉽게 만들 수 있고 해당 토큰에 대한 허위 정보를 쉽게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토큰 발행을 익명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반복해 사기 행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림1>과 같이 시간대별 가상 자산 거래를 분석할 수 있는 체이널리시스 스토리라인(Storyline)을 통해 펌프 앤드 덤프가 어떤 수법으로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2월 소셜 미디어 홍보에 속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해당 토큰을 구매한 덕분에 토큰 가격이 몇 시간 만에 빠르게 올랐다. 하지만 토큰 출시 당일 토큰 발행자는 자신의 모든 토큰을 팔아 거의 2만 달러(약 2562만원)의 수익을 벌어들였고 이 토큰을 산 사람들은 90% 하락을 경험했다.
체이널리시스는 가상 자산 시장에서 펌프 앤드 덤프 수법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22년 이더리움, BNB 블록체인에서 출시된 토큰을 살펴봤다. 2022년에는 약 110만 개의 토큰이 출시됐다. 출시 첫 주에 가상 자산 간 교환(스와프) 10회 이상, 4일 연속 거래된 토큰은 4만521개로 나타났다. 이 중 출시 첫 주에 가격이 90% 이상 크게 하락해 펌프 앤드 덤프로 의심되는 토큰은 9902개로, 가상 자산 간 교환 10회 이상, 4일 연속 거래된 토큰의 약 24%에 해당한다.
출시 후 가격이 크게 하락한 일부 토큰은 시장 상황과 인프라 문제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한 결과로도 볼 수 있지만 첫 주 가격 하락 폭이 컸던 9902개 토큰 중 최악의 성과를 거둔 25개 토큰은 토큰 스니퍼(Token Sniffer)의 신뢰도 척도에서 0점을 받아 펌프 앤드 덤프를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토큰 중 일부에는 신규 구매자가 토큰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허니팟(honeypot) 코드도 포함됐다.
전체적으로 토큰 발행자와 관련이 없는 투자자들은 약 46억 달러(약 5조9846억 원)의 손실을 본 반면 토큰 발행자들은 토큰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총 3000만 달러(약 390억원)의 수익을 냈다. 또한 몇몇 토큰 발행자는 다수의 펌프 앤드 덤프를 시도했다. 펌프 앤드 덤프 토큰 의심 건수 9902건 중 24%는 445명의 발행자가 벌인 것으로 파악됐고 펌프 앤두 덤프 토큰을 가장 많이 발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작년에 무려 264개의 토큰을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토큰 생성은 쉽고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은 강하기 때문에 펌프 앤드 덤프 수법은 더욱 위험하다. 혹자는 가상 자산이 곧 주류 자산 중 하나로 편입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펌프 앤드 덤프와 같은 시세 조작이 존재하는 한 이는 어려울 수 있다.
텔레그램이나 리딩방에서 무료를 앞세운 종목 추천방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는 운이 좋아 몇 번은 수익을 볼 수 있어도 결국 큰 손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투자자 스스로도 어떤 가상 자산에 투자하기 전에 경계심을 갖고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단기간 내의 수익을 약속하거나 소셜 미디어 광고에 힘을 많이 쏟는 토큰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또한 프로젝트, 팀 실적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수행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조언을 구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펌프 앤드 덤프와 같은 시세 조작을 수사하고 미래에 더 안전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공공·민간 부문의 파트너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입법 기관은 투자자를 보호하는 관련 규제를 만들어 시행하는 한편 가상 자산업계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해 개인이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도우며 수사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발전시켜 범죄자들이 해를 끼치기 전에 탐지하고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백용기 체이널리시스 한국 지사장
한경비즈니스(bizstaff@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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