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긴축 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은행발 위기'가 주연을 꿰찼지만 힘을 잃고 있습니다.
'노 랜딩'(무착륙)이나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완화)은 추억의 드라마 제목이 됐습니다. 주인공은 자주 교체돼도 인플레이션이라는 존재는 건재합니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사라지지 않고 존재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경기침체가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급으로 전락했다가 주연급으로 돌아왔습니다.
'긴축 드라마 시즌2'에선 인플레이션과 침체 간의 치열한 맞대결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연 자리에 오르느냐에 따라 긴축 드라마 결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플레 우려가 커지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계속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대로 침체 분위기가 확산하면 금리 동결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번주에 소화할 수많은 일정과 지표가 그 결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해당 지표가 나올 때마다 시장은 인플레와 침체 중 어느 한 쪽으로 급격히 기울 수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긴축 드라마를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이슈와 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시장은 12일에 요동칠 공산이 큽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되기 때입니다.
3월 CPI는 2월에 비해 큰 폭으로 둔화할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습니다. 전년 동기대비 상승률이 2월에 6%에서 3월에 5.2%로 떨어진다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입니다. 전쟁의 '역(逆) 기저효과'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같은해 3월부터 물가가 크게 올라 올해 3월부터 인플레가 둔화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하지만 반대 가능성도 있습니다. 끈적끈적한 근원물가 때문입니다. 3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5.6%로 2월(5.5%)보다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물가의 '데드크로스'가 일어나면 '서비스 물가 잡기는 역시 쉽지 않구나'하는 인플레 우려가 커질 수 있습니다.
근원물가가 시장예상보다 낮아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물가의 역전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시장엔 큰 호재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다음날인 13일엔 CPI보다 선행하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나옵니다. PPI도 추세적으로 내려오고 있습다. 3월 PPI는 3.1%로 2월(4.6%)에 비해 큰 폭으로 둔화할 것으로 시장에선 전망하고 있습니다. 14일엔 미시간대 기대인플레이션율이 공개됩니다.
인플레 3총사의 결과에 따라 인플레 우려가 커지느냐 잠잠해지느냐가 어느 정도 결정될 전망입니다.
경기하강이나 경기침체를 예고할 지표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나오는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 외에도 세 개의 일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10~16일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월드뱅크(WB) 연차 총회입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도 함께 열립니다.
이 행사에서 IMF는 11일에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합니다.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예바 IMF 총재는 비관론을 쏟아낸 바 있습니다. "앞으로 5년 간 세계 성장률이 3%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중기 성장 전망입니다. 올 1월엔 세계 성장률을 2.7%에서 2.9%로 올렸는데 이번엔 어떻게 조정할 지가 관심입니다. 같은날 IMF는 금융안정보고서도 발표합니다.
나머지 두 가지 일정은 14일에 몰려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가 나옵니다.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대비론 둔화하고 있지만 전달 대비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가고 있습니다. 3월 소매판매는 2월에 이어 전월대비로 0.4% 감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실제 감소폭이 예상보다 더 크다면 소비위축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질 수 있습니다.
더 큰 관심사는 은행의 실적 발표입니다. 14일에 JP모건과 웰스파고, 씨티가 실적을 공개하면서 1분기 어닝시즌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4대 상업은행 중 BOA를 뺀 3개 은행이 실적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PNC은행과 블랙록 실적도 같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1분기 대형은행들의 실적은 견조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은행 위기의 직격탄은 중소형 은행에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대형은행들은 중소형은행에 비해 부실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비율도 낮습니다.
시장의 관심은 향후 실적 가이던스와 대출 태도입니다. 유동성 위기가 대형 은행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대비해 대출을 줄일 것이란 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미 은행 대출이 지난 2주간 사상 최대로 줄었다(1040억달러)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은행들이 어느 수위의 발언을 하느냐가 침체 우려를 키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침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제로금리인 수시입출식 예금에 은행에 돈을 맡기던 미국인들이 변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SVB) 파산을 계기로 많은 예금자들이 5%에 가까운 머니마켓펀드(MMF)로 돈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 돈은 Fed의 '역 레포(Repo)'를 통해 Fed로 흡수되고 있습니다.
역레포는 금융사가 하루 동안 Fed에 현금을 주고 국채를 받는 식으로 이뤄지는 초단기 거래를 뜻합니다. 2013년 양적완화 시대에 Fed가 기준금리의 하한선을 지키기 위해 안전장치로 쓰던 장치입니다.
그런데 기준금리 상승으로 역레포 금리가 오르면서 MMF 자금이 역레포로 몰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0% 수준이던 역레포 금리는 지난달 연 4.8%까지 상승했습니다. 2~3%대인 예금 금리(연 2%대)를 웃도는 수준입니다.
과거엔 은행 예금이 MMF로 몰려도 자금이 은행 시스템 내에서 순환했습니다. MMF가 양도성예금증서(CD) 같은 증권에 투자하면 돈을 받은 금융사는 다시 은행 예금에 예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젠 이 돈이 역레포를 통해 Fed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양적완화 시대 안전장치였던 '역 레포(Repo)'가 양적긴축 시대의 긴축수단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의 유동성 위기만 생각하면 Fed는 역 레포 금리를 내리거나 역 레포 한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Fed가 가지고 있는 국채를 사 줄 큰 주체가 하나 사라집니다. MMF가 역레포를 통해 미 국채를 가져가지 않으면 가뜩이나 줄고 있는 미 국채 매수세가 급감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은행 위기가 악화하지 않는 한 Fed는 역 레포에 대한 미시적 조정만 할 가능성이 큽니다.
IMF 보고서가 쏟아지는 날 Fed 인사들도 총출동합니다. 11일에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와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가 공식석상에 섭니다. 세 사람은 모두 올해 FOMC 투표권을 보유한 인사들입니다.
CPI가 나오는 12일엔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가 연설을 합니다. 이밖에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Fed 인사들의 발언이 쏟아질 전망입니다. 같은날엔 3월 FOMC 의사록도 공개됩니다.
한국과 캐나다의 통화정책 동맹이 굳건하게 지속될 지도 관심입니다. 두 나라는 미국보다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먼저 한 차례 금리 인상을 중단했습니다. 한국은 한국시간으로 11일에 금리를 결정합니다.
캐나다는 12일에 통화정책회의를 엽니다. 두 나라 모두 이번에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시장에선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번주를 날짜별로 정리하면 거의 매일 인플레와 침체 간의 'A매치 데이'입니다. 1주일 내내 IMF 연차총회가 있고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보자면 10일엔 한국의 기준금리 결정이 있습니다.
11일엔 IMF와 Fed 인사들의 발언 대결이 예상됩니다. IMF 총회에서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 이코노미스트들이 경제 전망을 쏟아냅니다. 대부분 인플레와 침체, 은행 위기에 대해 한마씩 할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날 올해 FOMC 표결권이 있는 인사들도 발언을 합니다.
12일은 긴축을 대표하는 미국과 긴축 중단 대열에 선 캐나다의 기 싸움입니다. 미국 CPI와 3월 FOMC 의사록이 공개되고 캐나다의 금리 결정 결과도 나옵니다. 13일은 인플레 지표인 PPI와 고용 지표인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나옵니다.
14일은 침체 여부를 보여줄 대형 은행의 실적과 3월 소매판매가 발표됩니다. 인플레 지표인 미시간대의 기대인플레이션율도 공개됩니다.
미국 투자은행인 파이퍼 샌들러의 'H·O·P·E'이론에 따르면 경기둔화나 침체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택(Housing)에서 시작해 구매관리자지수(PMI)의 주문(Orders), 기업 이익(Profits), 고용(Employment) 순서로 진행됩니다. 긴축 이후 경기후행지표인 고용 지표에서 침체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입니다. 자칫 그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긴축에서 발을 떼는 때가 너무 늦어 노동시장 뿐 아니나 전체 시장이 회복하는 게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은행발 위기가 그런 위험성을 예고해준 셈입니다. 은행 대출 축소로 끄덕없던 노동시장도 둔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노동시장이 냉각되고 있다는 더 많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생각입니다. 인플레가 강하냐 침체 기운이 더 세냐를 지켜봐야 합니다. 인플레와 침체의 맞대결 결과가 어떻게 될 지가 향후 Fed의 긴축 속도를 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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