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케이225지수가 코로나19 사태 뒤 고점의 턱밑까지 올라왔다. 주요국 지수가 2021년께 고점을 찍은 뒤 크게 하락했고, 이후 재반등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니케이225지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최근 1~2년간 큰 하락이 없었기 때문에 반등도 빨랐다.
이같은 흐름의 배경으로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저물가', 그리고 '소비재 중심 경제 구조'가 꼽힌다. 물가나 정부 채권 발행 여력의 측면에서 당분간 통화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최고치 경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니케이225지수가 지난 12일 29,388.30에 장을 마쳤다. 코로나19 사태 뒤의 고점(2021년 9월 14일 30,670.10) 대비 4.18% 낮은 수치다. 같은 날 코스피지수가 고점과 25.11% 차이를 보였고, S&P500지수(14.02%), 상하이지수(11.92%) 등도 10% 이상씩 차이가 나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 미국 등에서는 최근 1~2년 새 정부와 중앙은행이 긴축 정책을 펴면서 증시가 큰 폭으로 조정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까지도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증시 조정이 크지 않았고, 그만큼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윤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워낙 저물가가 심했던 탓에 코로나 사태 뒤 유동성을 공급해도 물가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해 긴축할 이유가 없었고, 이런 상황은 올해 내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안을 편성하는 등 유동성 공급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니케이225지수에서 소비재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증시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지수의 시가총액 톱5 가운데 3개가 불황에 강한 소비재 종목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계속 푸는데다가 고환율의 영향으로 이들 기업의 실적이 잘 나오고 있다. 소니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3% 높아졌고 패스트 리테일링(2월 마감·26.9%), 도요타자동차(19.4%) 등도 양호한 매출을 냈다.
이 영향으로 일본 펀드의 수익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서 판매중인 일본 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의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은 14.86%(12일 기준)다.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10.58%) 대비 양호하다. ACE일본TOPIX레버리지(H)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은 25.33%에 달한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일찌감치 일본 투자를 늘렸다. 국내 투자자(개인과 기관 합산)의 일본 주식 보유금액은 지난해 9월 23억7254만달러에서 이달 11일 29억8945만달러로 26.0% 늘었다. 종목별 보유량을 보면 의류기업 골드윈이 4억9336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니폰스틸(3억5209만달러), 가도카와(3억3716만달러), 넥슨(3억2379만달러), 반다이남코(2억4219만달러) 순이었다.
물가 압력이 높아진 점은 위험 요소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12월에 10년만기 국채 금리 상단을 기존 0.25%에서 0.5%로 확대했는데 이는 8년여 만에 최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이 금리는 0.4% 근처에서 오르내리고 있으며, 0.5%까지는 가지 않고 있어 큰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최보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달러가 당분간 강세를 띄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본 증시의 특성상 상승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고점 돌파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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