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으로 분류된 탓에 '코리아 디스카운트' 발생
선진국 편입 시 최소 500억달러 신규자금 유입 전망
선진국 주식에 밀려 증시 폭락 우려도 거세
"한국은 홍콩보다 더 많은 글로벌 대기업을 유치했고 스페인보다 더 높은 구매력을 달성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이탈리아를 추월했다. 하지만 MSCI에 신흥시장으로 분류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아 투자잠재력이 손상됐고, 이는 증시 저평가로 이어졌다(블룸버그)"
한국 증시의 명운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여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흥국 지수에 머무르다 보니 경제 규모에 비해 증시가 과소 평가됐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단기적으로 증시 부양에 효과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韓 증시 명운, MSCI 선진국 편입에 달려
31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한국이 MSCI의 '선진국' 지위에 증시 명운을 걸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정부가 제도 개선을 통해 선진국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MSCI는 다음 달 22일 연례 시장 재분류 결과를 발표한다. 이번 발표에서 선진국 편입 후보군으로 분류되려면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다음 달 8일 먼저 공개된다. 최종 통과할 때 실제 반영은 2025년 5월께 이뤄질 예정이다.
MSCI는 1992년 한국을 신흥국지수에 처음 포함시켰고, 2008년부터 선진국지수 승격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MSCI 선진국 편입을 위한 조건은 △경제 규모 △주식시장 규모 △시장 접근성 등 3가지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주식시장 규모는 충족했으나 시장 접근성은 미흡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MSCI가 개선을 요구한 외환시장 개방 문제, 배당 문제, 외국인 등록이나 영문 공시 등에 대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뒤로 MSCI 선진국 편입에 필요한 금융 당국 차원의 자본시장 개편을 추진해왔다.
지난해부터 공매도 확대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배당금 지급 투명성 제고, 외국인 투자자 등록 절차 간소화, 외환시장 24시간 거래 체제 도입 등 시장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투자업계에선 이같은 조치가 한국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트 에르메스는 "한국이 MSCI 선진국으로 편입될 경우 재벌의 지배 구조 개편을 촉발하게 되고 기업은 주주 친화적 조치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국 편입 시 외국인 투자 확대 전망
한국이 MSCI 선진국에 들어가려는 가장 큰 이유로 MSCI 지수를 추종하는 대형 펀드 등 자본시장 규모가 꼽힌다. '선진국지수 편입→외국인 자금 유입 확대→주가 상승'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이 MSCI 선진국에 편입된다면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줄고, 증시 변동성은 낮아지며, 코스피 지수의 대세 상승을 위한 '추가 연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블룸버그는 MSCI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승격되는 것을 "대학 스포츠에서 빅리그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고 빗대기도 했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싱가포르 은행의 분석을 종합하면 MSCI 신흥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 규모는 1조 8100억달러(2395조원)다. MSCI 선진국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는 3조4900억달러(4615조원)로 두 배가량 차이가 난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약 500억달러가량 투자금이 신규 유입될 전망이다.
영국의 FTSE 러셀과 뉴욕의 S&P 다우존스 등도 MSCI 지수를 참고한 지수를 별도로 운용한다. 따라서 MSCI 선진국 편입의 효과는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매년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보고서에서 한국을 39개국이 포함된 '선진 경제권(Advanced Economies)'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을 미국·독일·영국·프랑스 등과 함께 '고소득(high income) 국가'로 구분한다.
S&P(2008년), FTSE(2009년) 등 글로벌 지수 산출 기관들도 일찌감치 한국을 선진국지수에 포함시켰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이사는 블룸버그에 "1997년부터 한국을 선진 경제로 분류했기 때문에 한국은 자격이 있는 셈"이라며 "여러 차원에 걸쳐 선진국으로 향하는 문턱을 넘은 경험을 쌓았다"라고도 말했다.
섣부른 시도라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섣부른 시도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증시가 지닌 입지가 축소될 수 있어서다. MSCI 신흥국 지수에서는 한국은 12% 비중을 차지하며 중국, 대만, 인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선진국 지수로 편입되면 비중이 1~2%로 줄어든다.
영국 픽텟 에셋 매니지먼트의 이영재 선임투자책임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약 8억달러(1조600억원) 규모의 신흥시장 펀드에서 한국 기업 주식 10개를 매도하고, 선진국 펀드에서 종목 1개만 매입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에 편입된 뒤 증시가 폭락한 국가도 여럿이다. 이스라엘은 2010년 MSCI 선진국 시장에 편입된 뒤 증시가 2년간 40%가량 폭락했다. 그리스도 2001년 선진국으로 분류된 뒤 증시가 45% 내려앉았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탓에 투자자들을 끌어오지 못한 탓이다.
통화시장의 24시간 개방도 과제 중 하나다. 통화 시장에 대한 제한 해제는 MSCI가 선진국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다.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 경제학과 교수는 "궁극적으로 MSCI가 원하는 것은 24시간 원화 환전이 가능하도록 역외통화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 엔화나 태국 바트화와 달리 원화 거래는 자금 유출에 대한 금융 당국의 우려로 인해 국내 영업시간으로 제한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4년 하반기께 원화 거래를 런던 시각까지 확대하고 역외 기업이 국내 은행 간 통화 시장에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일부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면 역외 거래는 계속 제한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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