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 루비니 "금융위기 뛰어넘는 초거대 위협에 세계 분열···한국도 선택해야" [빅샷인터뷰]
[편집자 주 : 한국경제TV는 한국경제신문과 공동으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이하 루비니)와 세계 경제 위협 요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루비니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일한 거시경제학자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예측한 인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올해 국내에 '초거대위협(MegaThreats: Ten Dangerous Trends That Imperil Our Future, And How to Survive Them)'를 번역 출간한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현재 세계가 맞닥뜨린 위기가 지난 2008년 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관론자가 바라보는 미래와, 다가오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조언을 아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정리했습니다.]
▷질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초거대위협'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오늘날의 경제적 위협은 불과 몇 년 전의 것과는 다릅니다. 2년 전만 해도 구조적 장기침체를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저축액은 많고 소비는 부진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낮은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을 겪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정반대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면서 중앙은행도 금리를 인상하고 있습니다. 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의 상승은 세계적인 부채 위기를 의미합니다.
1~2년 전만 해도 초세계화의 영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탈세계화, 보호무역주의, 탈동조화와 세계 경제의 파편화를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경제적 위협으로는 지정학적 불황이 있습니다. 러우 전쟁이 비정규전에 돌입하면 나토가 개입하게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기 보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 가능성을 비쳤으며 이는 유가 폭등으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미중 갈등 역시 정찰 풍선 사건으로 더욱 격화되고 있습니다. 대만과 중국 간에 군사적 충돌이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북한의 독재자를 빼놓을 수 없죠. 러우 전쟁, 중국 대만 갈등, 중동 위기로 관심을 받지 못하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인근의 바다를 겨냥해서요.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가 영향받고 있죠. 경제적 재정적 피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코로나를 통해 심각한 팬데믹이 올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AI, 머신러닝, 로봇 자동화로 경제 규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에 영구적 실직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본 집약적 기술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크게 만들 수도 있죠. 소득과 부의 불평등 악화로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운동이 있을 겁니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와 비교해 암울해진 미래를 보고 불만을 품게 되겠지요. 이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자본주의에
불리하게 작용하며 다수 선진 국가와 신흥 국가에서는 이미 급진적 극우와 극좌 세력이 집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위협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를 '초거대 위협'이라 부르지만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는 올해의 유행어로 '다중 위기'라는 단어를 선정했습니다. 역시 경제적 비경제적 위협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말하죠.
▷현재 세계 경제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두 번의 오일쇼크를 기억할 겁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간의 전쟁이 발발했었죠. 1979년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있었고요. 유가 폭등으로 인플레이션과 불황,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세계의 공공 및 가계 부채는 GDP 100% 수준으로 그리 높지는 않았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은 인플레이션과 불황,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지만 부채 위기는 없었죠. 부채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찾아왔었고요. 세계 금융 위기 이래 부채 비율은 더욱 증가했습니다. 현재는 15년 전인 2008년보다도 부채가 증가해 GDP의 350%에 달합니다. 2차 대전 직전인 1930년대보다도 훨씬 나쁜 상황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지정학적 불황 때문이죠.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는 '악몽의 30년'을 보냈습니다. 세계 1차 대전과 스페인 독감을 거쳐 1929년에는 증시 폭락이 왔었죠. 대공황 때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무역 전쟁, 통화 전쟁, 금융 위기, 부채 위기, 디폴트를 비롯해 실직률은 20%까지 치솟았습니다. 이후에는 독재 군사 정권이 득세하게 됐죠. 그 때와 비교했을 때, '악몽의 30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위험들이
오늘날에는 초거대 위협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기후 변화를 우려할 필요가 없었죠. AI의 일자리 파괴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인구 노령화로 인한 '묵시적 채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1차, 2차 대전만큼 추악한 갈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쟁 시나리오를 생각해봅시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미국, 유럽, 서방 동맹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따라서 1970년대, 세계 금융 위기보다 지금이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서 '초거대위협'에서 연방준비제도의 정책을 비판하신 바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안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셨는데, 교수님께서는 올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어느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보십니까.
코로나 이후 선진국 및 일부 신흥국의 인플레이션이 급상승했습니다. 지난 2년간 부적절한 정책과 불운이 겹치면서 일어난 상황이죠. 여기서 부적절한 정책이란 과도한 통화, 재정, 신용의 완화를 말합니다. 최근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신흥국의 인플레이션이 몇 달전 정점을 찍었고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불경기와 경착륙을 겪지 않고도 목표치인 2%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저는 연착륙 시나리오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은 측정법에 따라 6~7%, 실업률은 3.5% 수준입니다. 과거 이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늘 경착륙으로 시작해 연착륙으로 이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을 8~10%에서 5~6%로 낮추는 것은 쉽습니다. 긴축 통화정책만으로도 가능하죠. 하지만 인플레이션 안정화가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목표인 2%보다는 4~5%에 머물 확률이 높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원자재 가격 때문입니다. 둘째로 올해 핵 문제로 이란 공습 가능성이 크며 에너지 가격에도 추가적인 압력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거두면서 환자가 속출해 공장 운영에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이 집단 면역을 키우는 데 성공한다면 3%가 아닌 5% 성장률도 달성할 수 있겠지만 원자재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현재 원자재 생산 규모를 늘리는 투자가 현저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사회는 화석 연료 생산자들을 몰아붙였습니다. 주주와 금융 기관들 역시 생산량 증대를 위한 투자를 반대했죠. 규제, 환경 문제와 생산량 증대를 위한 투자 부족으로 저탄소 금속과 산업 금속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전망했습니다. 에너지, 식품, 저탄소 금속, 산업 금속, 비료 가격이 43% 상승한다는 것이죠. 원자재 가격이 20~30%만 인상된다 해도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미국의 현재 임금 상승률은 5~6% 정도입니다. 상품 인플레이션은 하락하는 추세입니다만 경제 대부분에서는 서비스가 75%를 차지하며 생산 가격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에서 비롯됩니다. 임금 상승률이 5~6%라면 서비스 인플레이션도 계속 높겠죠. 제 예상이 맞다면 연말 핵심 물가지수가 3%로 하락해 내년 말까지 2%에 이르리라는 중앙은행 전망은 틀렸습니다. 연말에도 핵심 물가지수는 4~5%에 머무를 것이고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연준은 금리를 5%가 아닌 6% 이상으로 올리고 유럽중앙은행은 3%에서 4% 이상으로 금리를 올리겠죠. 금리를 높게 인상하면 진정한 불경기가 오면서 주식, 채권, 신용자산 가격은 폭락할 것입니다. 경제 경착륙으로 금융 위기와 불황은 악화될 것입니다. 불황이 악화되면 디폴트도 증가하고 경제 금융 붕괴를 경험하게 되겠죠.
만일 중앙은행이 지레 겁을 먹고 금융 붕괴를 피하기로 한다면 인플레이션과 기대인플레이션이 고정되면서 임금 상승률은 높아질 겁니다. 70년대의 임금 물가 악순환이 오게 되죠. 역시 인플레이션, 불황,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끝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연착륙보다는 경착륙의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미미한 불경기를 겪다가 연착륙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경착륙' 그리고 불황이 성립하려면 노동시장의 급격한 위축이 뒤따라야 합니다. 현재 미국의 노동 시장의 시장의 예상보다도 견고한 상황인데 이러한 추세가 올해 안에 무너질 것으로 보십니까.
현재까지 미국과 유럽은 불황이 아닌 경제 성장의 둔화를 겪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펼친 긴축 통화 금융 정책과 공급망 혼란으로 빚어진 결과입니다. 이미 기술 부문의 노동 시장은 완화되기 시작한 걸 볼 수 있고요. 우리가 참고하는 조사나 경제 자료에서는 여전히 노동 시장이 탄탄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자료에 따르면 중대한 경기 둔화가 예상됩니다. 지난해 긴축된 금융 시장 상황으로
주가는 하락하고 채권 수익률은 상승했죠.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미국 재정도 긴축에 돌입하게 됐습니다. 경착륙은 올해 중에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스태그플레이션도 언급하셨는데, 올해나 가까운 미래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제 예상대로 경착륙을 맞이하게 되고 2분기 이상의 불경기가 계속된다면 현실화될 겁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의는 불경기와 함께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보다 높을 때를 말하니까요. 영국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10%에 이르며 영란은행은 4~6분기 동안 불황이 지속되리라 전망합니다. 제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공급망 혼란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와도 신속한 완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멀었다고 보지만 어쩌면 러우 전쟁이 끝날 수도 있죠. 결국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공급 병목 현상이 해소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끝나 성장이 재개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책을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10가지 중기적 공급 충격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10가지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부추깁니다. 저렴한 중국 생산 공정을 본국으로 옮기면 생산원가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을 앞세우고 오프쇼어링보다 프렌드쇼어링을 원합니다. 적시 생산에서 만일에 대비한 체계로 가면서 세계 공급망이 불필요해지고 비싸지게 됐습니다. 인구 노령화와 이주 정책의 제한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주 정책은 선진 경제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정학적 불황과 미중의 탈동조화를 비롯해 서방과 경쟁국들이 서로 등을 돌리면서 세계 경제가 탈동조화로 가게 될 것입니다. 기후 변화 문제는 단기적으로 식품 가격 인상을 가져오고, 탈석탄화 움직임은 역으로 유가를 끌어올립니다. 사이버 전쟁의 위협으로 등 기업 보안에 막대한 비용이 지출될 수 있고, 정부 부양책의 종료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시민 반발 가능성을 키웁니다. 외교·안보를 위한 화폐의 무기화 역시 스태그플레이션의 요인이 될 겁니다.
▷증시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들은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경제 지표로 판단합니다. 그런데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가 많죠. 어떤 경제 지표가 투자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투자자들이 추종하는 주요 경제 지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 지표들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상품과 노동 시장의 경직도도 중요한 지표입니다만 과거에는 수요 충격이나
긍정적 공급 충격에 중점을 두곤 했습니다. 세계화나 무역과 기술의 이전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지금은 부정적 공급 충격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합니다. 경제 모델은 가끔 실패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경제 모델로는 금융 위기나 불황을 예측할 수 없죠.
세계 경제 구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경제 모델에 금융 위험이나 지정학적 위험을 대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을 열고 모든 지표를 살펴야 합니다.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정학적 요인과 기후 변화 같은 환경적 요인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전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특정 이념이나 모델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와 그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체계적이고 전체론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세계 흐름의 방향을 판단할 기준이 되죠 완벽한 지표나 모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갈등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한국도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양국 모두 놓칠 수 없는 교역국이기 때문입니다. 양국 간 갈등이 심해질 때, 한국이 택해야 할 전략에 대해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세계 무역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에게는 예민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대만 영토에서 전쟁으로 발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계 반도체의 절반이 대만에서 생산되며
하이엔드 반도체는 80%에 달합니다. 한국에도 삼성을 비롯해 주요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많습니다. 복잡한 상황입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인 동시에 중국과도 활발한 무역과 투자가 진행 중이니까요.
미국은 이미 중국을 향해 기술적 전쟁을 선언했죠. 하이엔드 칩과 반도체의 수출만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반도체 장비도 중국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상황입니다. 미국이 생산한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설계가 반도체나 장비 생산에 사용됐다면 마찬가지로 수출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칩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만, 일본, 한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에는 미국의 설계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휴대전화를 통해 정보를 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도 도입될 겁니다.자율주행 자동차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집약적 기술입니다. 다양한 센서를 통해 빅데이터를 모읍니다. 중국이 서방의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자율주행 교통 체계를 운영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서방 역시 중국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리 만무합니다. 양국이 서로를 통제하려 할 테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시작되는 기술적 탈동조화는 통신과 휴대전화에서부터 자율주행 자동차까지 이어질 겁니다. 미래에는 일상적인 소비자 가전에도 5G 반도체가 탑재될 겁니다. 중국산 토스터나 커피 머신 전자레인지도 마찬가지죠. 중국 정부는 당신의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토스터를 통해서도 감시할 수 있습니다. 드론이나 웹카메라만 보는 게 아니라 토스터나 커피 머신으로도 들을 수 있죠. 양방이 서로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므로 기술적 탈동조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휴대전화와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이 생수병조차도 5G 칩을 탑재할 수 있습니다. 사물 인터넷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니까요. 물병에 탑재한 칩으로도 도청이 가능해집니다.
기술적 탈동조화가 시작되면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영향을 받을 겁니다. 미국 동맹 대 중국 동맹으로 세계가 철저히 양분화되겠죠. 미국, 유럽을 선택했다면 안타깝게도 중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기술, 상품, 서비스 전반에 탈동조화가 일어날 겁니다. 내일 당장은 아니지만 추세가 그렇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한쪽을 선택해야 할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탈동조화로 세계가 양분된다면 전 세계의 미국 동맹들이 한자리에 모이겠죠. 경제, 금융, 무역, 기술, 정치를 통합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파키스탄, 캄보디아를 비롯해 몇몇 신흥 국가들도 중국 진영에 서려고 할 겁니다. 세계가 매우 양분화될 겁니다.
유럽은 러시아에 의존하던 에너지를 다른 곳에서 조달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이제는 중국으로의 수출과 해외직접투자 위험을 고민할 차례입니다. 냉전이 끝나가고 있으니 유럽마저도 미국과 중국 중에 선택해야 할 테니까요.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보호해 주길 바란다면 아마 미국 편에 서야 할 겁니다. 나토 또한 미국을 돕게 될 것이며 아시아로 동맹을 확장하려 할 겁니다.
나토는 이미 한국, 일본 같은 국가에 확장의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일본, 인도, 호주, 미국이 4개국 안보 회담을 구성하고 있죠. 미국, 영국, 호주가 모여 핵잠수함 안보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역시 미국의 동맹이죠. 결국 세계는 양분화하여 완전히 다른 체계 아래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극도의 탈동조화로 인해 경제 구역도 완전히 나눠지게 되겠죠.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가게 될 겁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달러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통화인 가운데 중국은 원자재를 달러 대신 중국 위안으로 거래하려고 합니다.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2차 대전 이후 단극화된 세계 통화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거래의 다양한 지불 방식의 3분의 2가 달러로 이뤄져 온 셈이죠. 지정학적 갈등이 심했던 시절에는 다극화된 세계 통화 체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IMF SDR은 선진국 통화가 대부분이지만 몇 년 전 위안화도 정식 편입되었습니다. 물론 SDR은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화폐는 아닙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전 세계가 두 진영으로 양분화되어갈 겁니다.
아마도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만드는 데 성공할 겁니다. 계산 단위,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겠죠. 우선 중국의 동맹들도 제재를 의식해 달러 사용을 피하게 될 겁니다. 어쩌면 걸프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같은 전자상거래 지불시스템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보급할 겁니다. 기술과 5G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감시 체계도 퍼져나가겠죠. 금융 기술조차도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진 사회니까요. 사회 신용 체계도 만들었고요. 세계 곳곳의 독재 정권들은 중국의 감시 모델에 흥미를 느낄 겁니다.
그런 시대가 오면 달러의 입지가 줄어들 뿐 완전히 쇠퇴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과거에는 항상 단극화된 통화 체계였지만 앞으로는 양극화된 체계가 사용될 겁니다. 경제와 금융 거래 및 통화 체계가
두 개로 갈리게 되는 것이죠. 이는 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수 십 년에 걸쳐 진행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도 미국처럼 인구 고령화가 중대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에 대한 해법으로 이민을 통해 노동인구를 늘리는 해법을 제시해오셨는데요.
인구 고령화는 여러 방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선 경제 성장과 인구 성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구 성장이 더디면 경제 성장도 더디게 되죠. 인구 노령화로 인해 묵시적 채무와 비예산 부채가 늘어납니다. 노인층을 위한 연금과 의료 서비스는 젊은이들의 임금 소득세로 충당됩니다. 적은 수의 젊은 층이 내는 세금이 노인층의 혜택을 위해 쓰이고 있지만 문제는 이런 혜택들이 지속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거죠.
한국이나 일본 같은 국가는 사회 정치적 이유로 이주에 제한을 둔 바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주민이 많지 않은 국가들이죠. 이주민을 허용하는 국가에는 이민 정책이 해결책이 될 수 있었죠. 하지만 AI, 머신러닝, 로봇 자동화 시대에는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겁니다. 육체노동은 줄어들고 기술에 의한 영구적 실직이 일어납니다. 우선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 순으로 일자리들이 사라질 겁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일자리도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국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이민을 환영하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민 정책이 더 엄격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방법과 인구 고령화, 이주민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미래에는 이주민 없이도 노동자가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기술 발전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이민 정책은 더욱 강경해지겠죠 일본의 경우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에 이미 로봇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역할을 하죠. 일부 로봇들은 인간보다 나은 정서 지능을 지녔습니다. 슬픈 감정이 느껴지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부를 묻죠.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들도 많습니다 이런 간병인 일자리도 기술 발전에 밀려 끝내 사라지게 될 겁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면서 발생하는 실업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코로나 이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주요 자동차 기업의 대표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미 생산 공정의 90%를 자동화할 기술을 보유했다고 하더군요. 로봇과 기계 덕분에 소수 직원으로도 운영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며 대량 해고가 진행되면 사회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죠. 벌써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만일 생산 공정에 로봇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앞장서서 이를 도입할 겁니다. 인건비가 높으면 경쟁력을 잃게 되죠. 자동차 외에도 모든 상품의 생산 자동화를 위해 다들 경쟁할 겁니다. 미래의 공장에는 관리자 한 명을 배치해 로봇 천 대를 운영하고 있을 겁니다. 청소부도 한 명 있을지 모르겠고요. 사실 바닥을 청소할 가정부 로봇은 이미 존재하죠. 가정부 로봇은 휴가나 복지, 쉬는 시간도 필요 없습니다.
▷한편으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기술 발전이 노동 생산성을 높이거나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오지 않았습니까?
결국 기술 혁신이 생산성 증대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빠른 속도로 경제 규모와 잠재 성장률을 높일 겁니다. 미국과 유럽 성장률은 1~2%에서 3~6%까지도 증가할 수도 있겠죠.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더라도 영구적 실업 문제는 여전할 겁니다. 맨 처음은 블루칼라 일자리로 대부분이 자동화될 겁니다. 또한 화이트칼라 업무의 상당 부분도 분업화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업무를 단계별로 나누면 자동화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의성이 필요한 업무도 결국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대체될지 모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죠. 저는 좀처럼 20년 후 전망에 관한 글은 쓰지 않습니다. 저는 경제 컨설턴트로 연준과 ECB의 움직임을 살핍니다. 몇 주마다 중앙은행의 행동을 예측하고 이를 제 고객들에게 알려줍니다. 지금으로서는 AI보다 전문가의 예측이 더 정확합니다. 골드만삭스나 제이피 모건의 전문가라면 연봉이 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연준의 행방을 예측할 수 있다면 엄청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멋진 직업이죠. 적어도 소득에 있어서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3~4년 후면 모든 경제 지표와 모델을 분석하는 AI가 생겨날 겁니다. 연준 회의에 모든 연설과 발언을 살피고 과거 반응과 경제 충격 역사를 꿰뚫고 있을 겁니다. AI는 연준의 결정뿐만 아니라 정책 성명서 내용도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요. 연준의 결정 외에도 정책 성명서와 여론이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은 3~5년 후면 개발될 것이고 골드만삭스에서 백만 달러를 받던 일자리는 사라지겠죠. 이 수준의 기술이 개발되면 블루칼라, 화이트칼라에 이어 고연봉 일자리도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어떤 수준의 부가가치를 생성해내든, 지금의 일자리와 소득은 서서히 기술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점점 그렇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미래 일자리의 가능성을 말합니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다들 공업으로 이동했죠. 공업 생산성이 높아지자 다시 서비스업으로 이동했고요. 하지만 이제 서비스업도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미래 일자리에 희망을 품은 사람도 있었지만 아마존이 만든 일자리 한 개가 소매점 일자리 열 개를 대체할 겁니다.
미국에서 실직한 생산 근로자들이 결국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버를 운전하거나, 슈퍼마켓 캐셔가 되거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자율주행기술이 개발되면 우버 운전사들도 사라질 겁니다. 로봇은 햄버거와 커피 음료까지 인간보다 5배는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미래의 직업이 생겨난다고 해도 단순한 저부가가치 서비스 직업은 사라지고 없을 겁니다. 머지않아 자율주행 자동차뿐 아니라 음식을 배달하는 드론이나 로봇이 나타날 겁니다. 자율주행 기술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죠.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무서운 내용입니다. 기자 직업도 위협받을걸요? 기업 재무 보고서가 나오면 정해진 형식에 맞춰 기사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책을 통해 '기술 혁신이 인플레이션의 안정화를 불러올 거라 믿는 낙관주의자들이 있다'라고 언급하셨는데, 궁극적으로 기술 혁신이 인플레이션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시는지요.
장기적으로는 기술 혁신과 AI가 경제 규모를 확장할 거라 믿습니다.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원가를 낮춰줄 거고요. 하지만 향후 10년간은 앞서 말한 10가지 위협이 성장을 저해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겁니다. 생산원가의 인상은 인플레이션 요인이니까요.
과거에 긍정적인 디플레이션을 불러온 유일한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기술이었죠. 궁극적으로 기술은 디플레이션을 불러올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행로는 10~20년간 지속될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도 있는 미국의 부채 문제도 이야기해보아야겠습니다. 현지에선 부채 한도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채한도는 상향이 될 것으로 봅니다. 여야 모두 디폴트는 피하려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천문학적인 미국의 부채 그 자체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부채 한도가 높아지는지 아닌지에는 관심을 쏟지만, 부채 자체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부채 한도가 언급될 때마다 뻔한 연극처럼 민주당과 공화당이 싸움을 벌입니다. 그 어느 쪽도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막판에 이르러서야 양측이 합의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의 공공 및 가계 부채 비율은 2차 대전 직후보다도 높습니다. 대공황의 정점보다도 높죠.
여전히 공황은 계속되고 있고 전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채 비율도 점점 높아지겠죠. 세계 기축 통화를 소유한 미국은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미국 국채와 달러 자산을 사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대규모 경상 수지 적자를 더 길고 저렴하게 유지할 수 있죠. 물론 기축 통화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미국 부채 문제와 비교해 유럽과 일본의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미국보다 인구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고 미국만큼 기술 혁신이 이뤄지지 않아 성장 잠재력도 높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보다는 다수의 유럽 국가와 일본을 걱정하는 게 마땅합니다.
물론 미국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달러 지배력의 약화가 올 수 있죠. 사람들이 달러 자산을 멀리하게 되면 기축 통화의 특권도 사라지게 될 겁니다. 또한 저렴하게 재정을 마련할 수 있으므로 이는 더 많은 부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엄청난 특권이 결국 제 목을 매달 밧줄을 쥐여주는 꼴이죠. 그 단계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도 부채가 증가하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미국은 별도의 재정비 없이 기축 통화 특권을 이용해 재정을 마련합니다. 채무, 채권이 점점 커지다가 감당할 수 없어지면 달러가 추락하고 그 피해는 막대할 겁니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 시장 규율이 훨씬 일찍, 빠르게 적용됩니다.
▷그와 같은 흐름은 앞서 말씀하신 미-중 탈동조화의 시대와도 연관이 있을까요?
여러 상황이 있을 수 있죠. 미국은 최소 1조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지만 탈동조화로 인해 이를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경우처럼 해당 자산을 동결시키거나 압수할 수 있으니까요. 10억 달러를 빌려 못 갚으면 제 문제지만 1조 달러를 못 갚으면 빌려준 사람이 곤란해지는 거죠. 저야 파산하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중국은 달러 자산을 떠나 금처럼 안전한 자산을 원할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국채 수익률은 치솟고 미국의 차입 비용도 상승할 것입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략적 경쟁국도 마찬가지죠
기축 통화의 특권은 일종의 패러독스입니다. 술을 공짜로 마실 특권이 있는 주정뱅이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공짜 술을 마실수록 건강도 상하겠죠. 저렴하게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특권은 부채를 더욱 늘어나게 만듭니다. 그러다 찾아오는 붕괴는 훨씬 가혹할 겁니다.
▷오늘 여러 나라를 언급하셨는데요. 일부 국가에서 위기의 촉발점이 되는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느 나라가 경제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소규모 경제 국가라면 심각한 금융 위기가 올 수 있죠. 하지만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만한 신흥국은 별로 없습니다. 레바논과 스리랑카는 파산했고 파키스탄은 채무 문제를 겪고 있죠.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도 같은 길을 가고 있고요. 심지어 터키도 위기 상황이지만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합니다.
세계가 타격을 받을 만한 사건은 중국이 경착륙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경착륙일지 연착륙일지는 모르지만 중국이 난관에 봉착한 건 확실하죠. 한동안 세계 경제 성장에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제 예상이 맞다면 공급 충격과 높은 물가 상승률은 계속될 겁니다. 주요 경제가 경착륙을 겪고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것이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높게 유지하겠죠. 올해 일어날 일은 아니며 서서히 진행되겠지만 향후 십 년간의 흐름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에는 한국 경제에 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난해 5월 방한해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경착륙을 맞이할 가능성은 작다고 하셨는데요.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불황을 겪지 않고 세계 경제가 연착륙을 겪는다면, 혹은 몇 분기 동안 미미한 불황으로 끝난다면 한국도 작년과 비교해 성장 둔화를 겪게 될 겁니다. 세계적인 성장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인데 한국은 수출에 의존하는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죠. 세계 경제 성장, 무역, 수출의 둔화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풍요로운 한 해는 아니겠지만 불황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경착륙 시나리오라면 다릅니다. 미국과 유럽이 불황을 맞고 중국은 성장 둔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럼 한국에도 타격이 있겠죠. 불경기가 오면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거고 무역 거래가 충격을 받을 겁니다. 연준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이고 원화는 약세가 되면서 해외 부채가 늘어나게 됩니다. 원화의 입지를 지키려면 긴축 통화 정책이 필요하고 이는 경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미국이 재채기하면 전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처럼 경착륙이 오면 한국에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거시경제학적 구조적으로 탄탄한 경제를 갖춘 한국도 경착륙 시나리오에서는 피해 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국가이며 미래 기술과 지식에도 큰 투자를 하고 있죠. 다른 신흥국에 비해 회복력도 훨씬 강할 것입니다.
▷미국 시장과 자산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한 투자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작년처럼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때는 주식 투자의 성과가 좋지 않습니다. 배당금이 낮아지는 요인이기 때문이죠. 반면 작년의 경우 장기 채권 수익률은 1%에서 3.5%까지 상승했습니다. S&P는 15%, 나스닥은 30% 하락했습니다 기술주와 성장주는 긴 투자가 필요한 자산으로 이익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1%에서 3.5%로 오를 때 10년 만기 채권의 가격은 20% 하락했습니다. 작년에는 15% 하락한 S&P보다 안전 채권의 손실이 더 컸습니다. 반비례였던 채권과 주식의 관계가 비례로 바뀌었죠.
연착륙을 믿는 사람이라면 올해 상반기는 다소 불안정할 겁니다. 증시는 소폭의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가 성장이 회복되면 이익 증가로 좋은 성과를 낼 겁니다. 하지만 저처럼 경착륙을 예상한다면
인플레이션은 계속 높은 수준이겠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향후 몇 년간 인플레이션은 2%가 아닌 6%대에 머무를 겁니다. 인플레이션이 6%일 때 10년 만기 채권 수익률은 최소 8%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제외하면 2%가 실질 수익률이죠.
현재 이자율 3.5%에서 8%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작년 채권 수익률이 1%에서 3.5%로 오를 때 가격은 20%나 하락했습니다. 3.5%에서 8%로 오르면 50%는 더 떨어질 테니 채권 투자는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채권 수익률이 8%일 때 현재 S&P의 주가 수익률은 17%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인플레이션이 높을 당시 주가 수익률은 7%였습니다. 7%까지는 아니겠지만 수익률이 17%에서 10%로 하락하면 주식 투자는 50%의 손실을 보게 되는 겁니다. 앞으로 몇 년간에 걸쳐 말이죠. 즉 평균 인플레이션이 6%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주식과 채권 투자는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이런 가정이 실제가 된다면 일부 재산은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에 투자해야 할 겁니다. 인플레이션 지수 채권 투자는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높은 수익률을 냅니다. 한 달짜리 단기 채권도 수익률이 높습니다. 장기 채권처럼 가격 영향을 받지 않죠. 지정학적 위험으로 중국이 미국 국채를 팔고 나면 유럽이나 일본 국채를 살 리는 없습니다.
금과 귀금속, 저탄소 금속이 좋습니다. 공급이 제한된 단기 임대 형식의 지속할 수 있는 부동산 투자도 좋습니다. 따라서 단기 채권, 인플레이션 지수 채권, 금, 귀금속, 저탄소 금속뿐만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형태의 부동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좋습니다. 주식과 채권 투자의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죠. 투자자로서 고려해봐야 할 투자 프로파일입니다
▷의미 있는 경고를 해주셨습니다. 만약 교수님께서 내다보는 초거대위협이 현실이 되었을 때, 개인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견을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초거대 위협 중에서 부채 위협은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해야겠죠. 국제 법인들의 개인 대출을 막는 국가적 정책을 세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 팬데믹, AI 등은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함께 행동한다면 새 기술을 통해 일부 위협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훌륭한 리더십을 통한 국제적 협력도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정부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죠. 저마다 탄소 배출량을 낮추는 겁니다. 채식주의자나 비건이 되는 방법도 있고요. 탄소 배출의 4분의 1은 가축을 키우는 데서 나오니까요. 집에 단열을 보강하거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도 있죠. 일회용 봉투 대신 재사용 가능한 가방을 사용하는 등 탄소배출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학사나 석사를 받기 위해 공부했던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기 기술이 쓸모없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대학에서 뭘 전공했냐고 제게 물어오면 STEM을 골고루 공부했다고 답합니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컴퓨터 과학 말입니다. 하지만 읽고 쓰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부가적인 기술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STEM과 교양 과목 중에 전공과 부전공을 선택하는 겁니다. 평생 같은 일만 할 건 아니니까요.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꾸려면 유연한 사고와 함께 꾸준한 재교육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쓸모를 잃지 않기 위해 말이죠.
앞서 말했듯이 투자에는 다른 형태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합니다. 다들 저축을 늘려야 할 겁니다. 연금과 의료 서비스 재정이 고갈되는 중이므로 미리 저축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 소득이 높지 않다고 해도요. 또한 미래 기업이나 기술에 투자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되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고요.
법정 화폐의 가치 저하나 기후 변화 정치 및 지정학적 위험들을 고려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시기 바랍니다. 장기 투자하고, 데이 트레이딩은 그만두세요. 암호화폐나 밈주식은 잊으세요. 하룻밤에 부자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저축하는 것이 좋은 결말을 만들 겁니다. 여기까지가 개인에게 드리고 싶은 제 조언입니다.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으로 힘을 모아 해야 할 일도 있고요.
신인규 기자 ikshi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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