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전조현상 보이는 아르헨티나, 2000페소 화폐 발행
지난 2월부터 인플레이션 100%로 급등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 탓이란 분석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최고가액 화폐를 새로 발행했다. 물가가 급격히 치솟자 1인당 현금 보유량이 불어나서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이날부터 2000페소 신권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종전 최고액권이던 1000페소를 앞서는 화폐를 새로 발행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아르헨티나가 새로 발행한 2000페소 지폐의 가치가 최소 8.5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한 고정환율에 따른 계산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2000페소의 가치는 약 4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중앙은행이 고액권 발행에 나선 배경엔 인플레이션이 있다. 1991년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는 아르헨티나에서 페소는 종잇조각과 다름없는 신세라서다. 지난 4월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09%를 기록했다. 화폐가치가 곤두박질친 탓에 달러 수요는 급증했고, 페소화는 더 가치가 축소되고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나타나자 은행에선 화폐를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진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주요 은행인 갈리시아 은행과 산탄데르 은행에선 현금 보관소를 급격히 늘렸지만, 여전히 페소화를 보관하기엔 금고가 부족하다. 때문에 이번에 1만페소짜리 신권을 발행하라는 지적이 빗발친 이유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휘청거리는 원인으론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꼽힌다. 2019년 집권한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무상 복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코로나19 기간 국민에게 현금 지급을 포함해 각종 보조금과 복지를 늘리고 세금은 낮췄다. 아르헨티나에서 소득세를 내는 근로자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재정 적자는 통화량 증가로 대처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유통 규모는 2019년 8950억페소에서 지난해 3조 8000억페소로 4배 증가했다.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자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는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은 악화했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2018년 5월만 해도 26.3%였으나 지난 2월부터 세 자릿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경제난이 심화했다. 세계 최대 대두 수출국 중 하나지만 올해 수확량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른다. 따라서 올해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겪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물기 위해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오는 10월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경제난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경제 위기가 장기화할 거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아르헨티나의 걸림돌은 항상 정치였다"며 "차기 지도자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유지할 만 한 정치적 자본도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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