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대비 미래가치로 평가받는 '신계 주식'
실적과 연동해 가치를 평가받는 '인간계 주식'
미래로 한 뼘씩 나아가는 곳에 주어지는 '최첨단 프리미엄'
올해 주식시장의 최대 화두는 단연 2차전지 관련주의 초강세일 겁니다. 실적 대비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쏠림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2차전지 주식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엔비디아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의 경우에도 생성형 인공지능(AI) 테마의 수혜를 받으며 주가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이처럼 요즘 주식시장은 현 실적 대비 높은 미래가치로 평가받는 '신계'(神界)의 주식과 현실적과 연동 가치를 평가받는 '인간계'(人間界)의 주식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주식시장 양극화는 최근 발생한 현상은 아닙니다.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가격을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미래 혁신을 주도하는 성장주에 급격한 쏠림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해당 주식의 가격은 지금껏 시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미국에선 FAANG, 우리나라에서는 BBIG 등 이러한 주식을 지칭하는 약어가 신계에 등극한 성장주의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주식이 신계에 등극하면 계속해서 신계에 머무는 것일까요? 아니면 신이 될 자격요건에 미달되면 다시 인간계로 내려오는 것일까요? 국내 주식시장의 신계였던 바이오와 배터리, 인터넷, 게임의 경우를 보면 나름대로 답을 내려볼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제외한 다른 테마는 신계와 인간계의 중간계에 머물거나 이미 인간계로 내려와 있습니다. 한 번 신계에 오른다고 해서 영원한 신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느 주식이 신계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때 신계였던 주식들은 왜 윗세상에 머물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온 것일까요?
위의 그림은 새로운 기술이 소개된 이후 시장의 기대와 수용이 어떤 단계를 따라 변하는지를 나타낸 '가트너 하이프 사이클(Gartner Hype Cycle)'이라는 그래프입니다. 신기술이 소개되고 시장에서 각광을 받게 되면 기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현실이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망의 단계를 지나 비로소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성장기를 거쳐 완숙기에 접어드는 사이클을 보입니다.
이 그래프의 종축(Y축)은 주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도를 나타내지만 앞서 언급한 바이오, 인터넷, 게임 업종의 대표기업들의 주가 그래프를 보면 유사한 모습이 관찰됩니다. 과거 시장의 기대치와 함께 급등했던 주가는 현재는 실망의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주가가 관심도와 유사하게 움직인다면 아직 실망하기에는 너무 이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재차 상승할 기회가 남아있는 셈이니까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도가 이렇듯 크게 요동치며 변하는 이유는 대중의 기대치 변화 속도와 실제 기술의 변화 속도는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기대의 변화 속도가 기술의 변화 속도를 앞지를 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기 쉽고, 반대로 관심이 낮아진 사이 기술 발전이 지속돼 머물러 있던 기대치를 따라잡을 때 2차 성장기가 도래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시장의 기대치가 변하는 것만큼 빠르게 기업이 혁신할 수 있다면 실망의 단계로 넘어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애플은 올해 신제품으로 비전프로를 소개하면서 주춤거리고 있는 메타버스의 미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메타버스를 주도하던 가상현실(VR) 기술은 만들어진 실체라는 '가상'의 요건은 충족시켰지만 실제와 구분할 수 없는 '현실'의 요건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입니다. 즉 컴퓨터 그래픽으로 아바타를 창조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이 현실이라고 착각할 수준의 현실감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애플의 비전프로는 증강현실(AR)을 통해 사용자와 현실 사이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현실에서 컴퓨터로 하던 일들을 배치시킴으로써 단번에'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실제 사용자의 반응은 제품 출시 이후 지켜봐야겠지만 메타버스가 종착지에 도착하기 전에 들러야 할 새로운 기착지를 만든 셈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던 영상통화의 화면이 새롭게 창조된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현실감은 분명 다를 것이고, 추후 3D 기술의 발전과 함께 궁극적으로 영화 '스타워즈'에서 보던 것과 같은 영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만듭니다.
테슬라는 올해 자동차가 아닌 '옵티머스'라는 로봇의 개발 소식을 알렸습니다. 전기차 가격 인하로 이익률 감소를 겪고 있고 자율주행 성능 향상도 정체된 상황에서 테슬라의 신제품은 의외의 영역인 로봇에서 나왔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오래된 업력을 통해 한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임계점에 대한 경험치가 존재합니다. 테슬라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정의된다면 가격인하와 이익률 감소는 더이상 신계에 머물기 힘든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상 속에 존재할 뿐인 이 로봇을 통해 테슬라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우주선, 로봇까지 기계를 움직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로 비전을 확장했습니다. 안드로이드나 iOS가 스마트폰을 구동하듯, 향후 움직이는 기계는 테슬라의 인공지능 운영체제에 따라 작동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어느 순간 천지개벽하듯 급진적으로 나타난다기보다는 점진적 변화가 쌓인 단계별 발전을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이란 기술도 알파고를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린 이후, 인공지능 스피커와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한 단계씩 진화해 왔습니다. 인공지능의 최종단계가 어떤 모습일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밟고 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하나씩 놓여가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성장주의 조건은 이렇듯 미래로 가는 길에 과거 대비 진일보한 시제품을 소개하고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업들입니다. 그들이 가리킨 방향으로 실제 미래가 흘러갈 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시장은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뾰족한 곳의 끝에서 현재의 영역을 한 뼘씩 확장해 가는 기업들에게 문자 그대로 최첨단(最尖端) 프리미엄을 주고 있는 셈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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