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내려갈 일만 남았다" 소비재기업들의 U턴 선언…속내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격 책정이 끝났습니다."
토마토 케첩, 크림 치즈 등으로 유명한 글로벌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의 미구엘 패트리시오 최고경영자(CEO)가 이달 초 상반기 실적발표에서 한 말이다. 크래프트하인즈 제품들의 가격 인상을 멈추겠다는 신호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크 슈나이더 네슬레 CEO는 "올해 하반기에는 가격 인상을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유제품기업 다논의 CEO는 "당분간 물가상승세가 지속되긴 하겠지만, 다음 분기로 갈수록 가격 상승폭을 줄이겠다"고 말했고, 유니레버의 그레이엄 피트케틀리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정점을 지났다"고 선언했다.
24일(현지시간) 투자회사 제퍼리스 분석에 의하면 지난 7월까지 3개월 간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의 전년 동기 대비 제품 가격 평균 인상률은 9.7%로 집계됐다. 앞서 3개 분기 연속으로 전년 동기 대비 평균 11% 가량 제품 가격을 올렸던 것에서 소폭 완화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원자재 비용 및 인건비 상승 등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했던 소비재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 인상을 완화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의 체감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서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까지는 높은 소비재 가격을 감당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번스타인의 브루노 몬테인 분석가는 "소비재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이미 가격을 대폭 인상했기 때문에 올해 하반기부터 가격이 일부 조정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들 기업은 지난 18개월 동안 계속된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수준에 이미 도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일부 소비재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 매출 성장세 등이 하락한 것도 이들 기업이 '가격 정점론' 카드를 꺼내든 배경으로 꼽힌다. 유니레버의 2분기 점유율은 41%로 떨어져 2018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타깃은 올해 연간 매출 전망치를 낮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소비재 기업들의 '가격 정점론'이 매출을 유지하기 위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당분간은 가격 인하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제임스 에드워드 존스 RBC 분석가는 "최근까지는 소비자들이 그간의 가격 상승에 예상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해 소비재 기업들의 매출 감소를 상쇄했지만, 고물가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이들 기업은 향후에도 판매량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 판단해 추가 가격 인상에 신중한 상황일 뿐"이라며 "상품 가격을 내리기보다는 판촉 활동을 강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프랑스 유제품기업 다논 측은 가격 정점론을 언급하면서도 "향후 가격 조정보다는 프로모션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소비재 기업들이 쉽게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의 휴 필 수석 경제학자는 "이들 기업은 지난해 원자재 가격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도 공급물량 확보를 위해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가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데 참고하는 핵심 지표다. 최근 시장에서는 물가 정점론에 따라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금리 인상)도 막바지에 달했다는 기대감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수잔 콜린스 보스턴연은 총재는 "상당 기간 금리 동결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조금 더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차례 더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다. 반면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은 총재는 "현재로서는 할 만큼 했다"며 금리 동결 견해 피력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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