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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바트화 '이상 폭등'…주범은 스마트폰 금 거래?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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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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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 바트화의 이례적 강세가 디지털 금 거래와 관련 기업들의 대규모 달러 유입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 태국의 디지털 금 거래 플랫폼과 연관된 회색 자본 유입 및 규제 강화가 환율과 자본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 태국 바트화 구조적 왜곡과 변동성 확대가 한국 기업의 비용 상승환차손 등 투자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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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태국 바트화의 가치 크게 올랐다. 일각에선 기이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태국 경제는 제조업의 구조적 둔화, 국내총생산(GDP)의 90%에 달하는 가계부채, 정치적 불확실성 등 여러 요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0% 이상 상승

31일 로이터통신과 태국 중앙은행(BoT)에 따르면 12월 23일 기준 태국 바트화 가치는 올해 연초 기준으로 미 달러화 대비 10.3% 이상 올랐다(바트화 환율 하락). 아시아 통화 중 2위 수준의 절상률을 기록했다. 전날 기준으로는 태국 바트화는 달러당 31.1바트 수준까지 가치가 상승하며 4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보통 신흥국 통화가 연간 10% 이상 절상하려면 강력한 경제 성장이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유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태국 경제 상황은 반대에 가깝다. 태국 산업연맹(FTI)에 따르면 주력인 자동차와 전자 부품 제조업 가동률은 하락세다. 관광 수입 회복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금리 격차도 여전해 자본 유출 압력이 있다. 그럼에도 바트화는 12월 초 이후에만 약 2.5% 추가 절상되며 상승세를 보였다.

이런 현상의 배경은 '디지털 금 거래'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국제 금 가격이 약 70% 상승하며 온스당 4400달러를 돌파했다. 금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태국 국민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금을 대규모로 매도했다.

과거에는 금값이 오르면 태국 국민은 방콕 차이나타운의 붉은 금은방에 줄을 서서 실물 금목걸이를 팔았다. 이런 방식은 물리적인 이동 시간이 필요해 매도 충격은 며칠에 걸쳐 분산됐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 금을 판다. 이런 속도의 차이가 거시경제의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물 금 거래 없이 앱상의 숫자만 오가는 거래가 폭등하면서, 외환시장의 수급을 완전히 왜곡시켰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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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속도 키운 핀테크

태국은 전통적으로 금 거래가 활발한 국가다. 하지만 올해 금 열풍은 과거와 다르다. 화셍헹, 'MTS 골드', 'YLG 불리언' 등 태국의 금 거래 대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이들이 내놓은 '골드 나우'와 같은 거래 플랫폼은 1000바트(약 4만 원)의 소액으로 담보금 없이 실시간으로 금을 사고팔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디지털 인프라는 수백만 명의 개인 투자자를 외환시장의 직접적인 참여자로 만들었다. 해당 메커니즘 작동 방식은 이전과 다르다. 우선 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태국 개인 투자자들이 앱에서 차익 실현을 위해 금을 대량 매도한다. 플랫폼 운영사인 대형 금 딜러들은 고객에게 바트화로 정산을 해줘야 한다. 동시에 딜러들은 자신들의 금 재고 포지션에 대한 가격 하락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국제 시장에 보유한 금을 내다 판다.

국제 금 거래의 결제 통화는 미 달러화다. 딜러들은 해외에 금을 팔아 받은 막대한 달러를 태국 외환시장에 쏟아내며 바트화를 사들여야 한다. '금 매도 급증 → 대규모 달러 유입 → 바트화 집중 매수 → 환율 급락(바트화 가치 상승)'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과거 오프라인 중심일 때는 이 과정이 시차를 두고 분산됐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이를 초단타 매매 수준으로 가속했다. 태국 중앙은행이 지난 23일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바트화 가치가 급등하는 날에는 금 거래 관련 자금 유입이 전체 바트 매수 흐름의 약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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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관련 기업의 달러 순매도가 국가 전체 달러 순매도의 40~50%까지 치솟는 기형적인 구조도 굳어졌다. 비타이 라타나코른 태국 중앙은행 총재 "대형 금 딜러들의 거래 규모가 태국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50%에 육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정 거래일에는 디지털 금 거래 플랫폼의 일일 거래액이 태국 증권거래소의 전체 거래대금을 상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커지는 '회색 자본' 우려

바트화 가치 급등이 태국 국민의 금 매매만으로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이른바 '회색 자본'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태국 당국은 이번 금 거래 급증의 상당 부분이 인접국 캄보디아와 암호화폐와 연관돼 있다고 의심한다.

태국 관세청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태국의 대캄보디아 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한 713억 바트를 기록했다. 인구 1700만 명에 불과하고 1인당 GDP가 낮은 캄보디아가 '세계 금 정제 허브'인 스위스에 이어 태국의 제2위 금 수출 대상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크리엥크라이 티엔누쿨 태국 산업연맹 회장은 "매우 의심스러운 현상"이라며 "스캐머(사기단)나 카지노와 같은 회색 비즈니스 세력이 금을 자금 세탁 도구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자금 세탁의 경로는 이렇다. 범죄 조직이 보이스피싱이나 온라인 도박으로 벌어들인 불법 수익을 추적이 어려운 스테이블코인(USDT)으로 바꾼다. 이 코인으로 캄보디아 국경 등지에서 금을 산다. 구매한 금을 태국 금 매매상에게 합법적인 수출인 양 넘기거나 밀반입한 뒤, 이를 다시 팔아 '깨끗한 현금(바트화 또는 달러)'으로 세탁한다.

비타이 라타나코른 태국 중앙은행 총재 최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수출업자가 캄보디아로 금을 보내고 암호화폐로 결제받는다면, 중앙은행은 그 흐름을 추적할 수 없다"며 설명했다. 태국의 디지털 금 플랫폼이 동남아시아 범죄 자금의 세탁소로 전락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환전 수요가 태국 바트화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려 실물 경제까지 위협하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태국 당국은 칼을 빼 들었다. 태국 중앙은행은 지난 29일부터 거주자의 달러 매도(바트 환전) 거래 중 건당 20만 달러를 초과하는 거래에 대해 자금 출처 확인을 의무화했다. 특히 '금 판매 대금'인 경우에는 예외 없이 실제 해외 금 판매 증명서, 인보이스, 통관 서류 등 '3종 세트'를 제출해야만 환전을 허용하도록 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20만 달러를 초과하는 거래는 전체 건수의 15%에 불과하지만, 전체 금액의 85%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태국 재무부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금 거래에 대해 특정 사업세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의 반발과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다. 과도한 규제가 금 거래 시장을 위축시키고, 오히려 음성적인 거래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티 탕시스팍디 태국 금거래인협회장은 "세금이 부과된다면 태국의 금 거래 산업 자체가 쇠퇴할 것이며, 온라인 거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광범위한 충격이 우려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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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높은 시장에 세금을 부과하면 규제가 완화된 해외로 관련 자금이 빠져나가기 쉽다. 태국이 세금과 제한을 걸면 관련 자금은 두바이 등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규제가 오히려 태국 금융 시장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자본 유출을 가속할 수 있다는 '규제의 역설'이 거론된다.

핵심 동력은 '골드러시'

올해 태국 바트화 사태를 촉발한 근본적인 동력은 전 세계적인 '골드러시'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순매입량은 53톤으로 전월 대비 36% 급증했다. 폴란드(16톤), 브라질(16톤)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 사재기에 나서면서 금 가격의 하방 경직성은 더욱 단단해졌다는 분석이다.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미국의 재정 적자 우려가 겹치며 '탈(脫)달러' 움직임이 가속화된 결과다.

이런 대규모 수요가 금 가격을 밀어 올렸다. JP모간의 그레고리 시어러 원자재 전략가는 "금 가격은 구조적 강세장에 진입했으며, 내년 4분기까지 트로이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며 다소 공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베트남과 인도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금괴 경매를 재개하며 시장 개입에 나섰고, 인도는 관세 조정을 통해 밀수 억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국 바트화의 구조적 왜곡과 변동성 확대는 한국 기업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태국을 주요 생산 거점으로 삼고 있는 한국 제조 기업들은 '비용 상승'과 '환차손'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한국 수출 전선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달 기준 한국의 대태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한 7억 2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호재처럼 보인다. 바트화 강세로 태국 수입업체들의 구매력이 향상돼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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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착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태국 경제 자체가 고비용 구조로 경쟁력을 잃어간다면, 태국 내 한국 부품을 수입해 조립·재수출하는 업체들의 주문량이 감소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태국 내 한국 기업의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는 '공급망 도미노' 붕괴의 전조라는 의견도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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