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요약
-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과 컴퓨트플레이션이 전력 인프라 병목과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 베트남·멕시코·말레이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제조업 기반이 AI 데이터센터로 전력과 수자원을 잠식당해 조기 탈산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현지 전력망 한계로 조립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경우 한국의 중간재 수출 감소와 무역 수지 악화 가능성이 있는 반면 변압기·송배전 장비 슈퍼 사이클 기회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전기 잡아먹는 빅테크의 데이터센터…신흥국 제조업 덮쳤다

최근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로 글로벌 공급망에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컴퓨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빅테크가 선진국의 전력망 병목을 피해 신흥국으로 우회하면서 현지 제조업의 에너지를 잠식하면서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 급증
26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24년 415TWh에서 오는 2030년 최대 1000TWh로 증가할 전망이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AI는 오늘날 에너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화두 중 하나이며, 전력 병목을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가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선 가장 큰 문제로 관련 인프라 확충의 물리적 시차인 '타임-투-파워(Time-to-Power)' 지연을 꼽는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 전력망 연결에 필수인 대형 발전소 승압 변압기의 미국 내 평균 납기는 작년 2분기 기준 143주로 증가했다.
벤 바우처 우드맥킨지 수석 애널리스트는 "전력 수요 폭발로 2025년 기준 미국은 전력 변압기 공급의 30%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돈이 있어도 인프라 장비를 구할 수 없는 선진국의 한계는 명확하다. 영국 규제기관 오프젬에 따르면, 이달 기준 영국 내 데이터센터 접속 대기 용량은 국가 전체 피크 수요(약 45GW)를 상회하는 50GW에 달한다.

최근 미국 빅테크 기업 등은 미국 내 인프라 병목을 피하기 위해 부지 확보가 쉽고 규제가 느슨한 동남아와 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로 우회하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의 혜택을 받던 전통 제조업 기지가 AI 자본에 필수 공공재를 잠식당하는 '구축 효과'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신흥국 인프라 잠식
동남아 지역의 허브인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가 대표적이다.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동남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5년 2.6GW에서 2035년 10.7GW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수자원 및 전력망 부하로 2024년 말 기준 신규 승인 신청의 최대 30%가 현지 심사에 의해 거절됐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최근 "전력망과 수자원 압박을 통제하기 위해, AI와 무관한 신규 데이터센터 진입을 2년간 엄격히 제한한다"고 밝혔다.
멕시코 케레타로 주 역시 데이터센터 때문에 주변 산업단지의 전력 조달 비용을 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클라우드HQ가 이 지역에 48억 달러 규모의 거대 데이터센터 캠퍼스 투자를 진행하는 등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전력 송배전 인프라는 이미 한계 수위에 도달했다. 멕시코경쟁력연구소의 오스카르 오캄포 에너지 코디네이터는 작년 11월 '엘 파이스'와 인터뷰에서 "멕시코는 지난 6년간 사실상 전력 부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역시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로 비상에 걸렸다.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디지털 인프라 확충 투자가 집중되면서다. 베트남 정부는 전력난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와 국가 산업 경쟁력을 훼손할 것을 우려해 전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격상시켰다.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는 지난달 전력 공급 보장 지시문 발표를 통해 "충분한 전력 공급은 의무적이며, 어떠한 예외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 국가의 빅테크 유치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긍정하는 측은 이들의 막대한 자본과 장기전력구매계약이 개도국의 탈탄소 전환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획기적으로 앞당겼다고 평가한다. 반면 고용 창출 계수가 매우 낮은 데이터센터가 수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는 전통 제조업의 기저 전력을 싹쓸이한다는 비판도 있다.
가장 치명적인 경제적 리스크로는 신흥국의 '조기 탈산업화' 위험이 꼽힌다. 보통 개발도상국은 저렴한 노동력과 안정적인 기초 인프라를 바탕으로 전통 제조업을 유치해 중산층을 육성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선진국 소비자들이 주로 이용할 AI 연산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자국의 핵심 자원을 소진 당하고 기존의 건강한 무역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가 창출하는 부가가치와 기술적 과실은 거대 언어 모델(LMM)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특허를 소유한 미국 테크 기업이 챙긴다. 반면 거대한 데이터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탄소 배출과 전력·수자원 고갈 등 생태적, 물리적 비용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떠안게 되는 비대칭 구조가 굳어질 수도 있다.
글로벌 거시경제에도 영향
글로벌 거시경제 영향도 미친다. 현재 글로벌 전체에서 데이터센터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파급 효과가 클 전망이다. 아일랜드 중앙통계국이 지난해 발표한 전력 통계 결과에 따르면, 아일랜드 국가 전체의 계량 전력 소비량 중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5%에서 2024년 22%까지 상승했다.
컴퓨트플레이션의 파급 효과는 단지 지역 전기료 인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멕시코 케레타로, 베트남 북부, 말레이시아 조호르 등 글로벌 사우스 산업단지에 위치한 수많은 글로벌 제조 공장들은 치솟은 산업용 전력 요금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증가하는 전압 강하와 순환 정전 우려에 생산 라인 셧다운을 막기 위해 추가 유지비가 발생할 수 있다. 심각한 영업이익률 압박에 직면한 전통 제조업체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핵심 중간재와 최종 소비재의 수출 단가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도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경제 모델은 고부가가치 중간재를 국내에서 대량 생산해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수출하고 현지 공장이 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하는 가치사슬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액은 약 1225억 달러였다. 이 중 핵심 조립 기지인 베트남 수출만 628억 달러를 기록했다. 베트남 및 멕시코 수출품의 80% 이상이 부품과 기자재 등 중간재다.

전력망 한계로 현지 조립 공장들의 가동률이 하락하면, 부품을 제때 소화하지 못해 한국발 중간재 신규 수출 주문감소와 무역 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글로벌 변압기 및 송배전 장비 공급난은 한국의 관련 산업에 '슈퍼 사이클'이라는 지정학적 기회를 제공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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