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요약
- 미국과 이란 전쟁 장기화로 OPEC 회원국 원유 수출 급감과 오일머니 캐시 트랩 심화로 중동발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 UAE의 OPEC 탈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외화 부족 등으로 OPEC가 자금 잉여국에서 자금 수요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급감, 리알화 가치 폭락, 달러라이제이션 심화가 이어질 경우 이란과 세계경제 모두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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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세계 신용 사이클상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속속 오일머니 캐시 트랩에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캐시 트랩이란 흑자에도 현금이 부족해 자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테크니컬 디폴트 상황을 말한다.
OPEC 회원국 원유 수출 물량, 예상보다 더 급감
전쟁 발생 직후 이란에 의해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기 시작한 지난 3월 OPEC 회원국의 원유 수출 물량을 보면 예상보다 더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원유 수출 항구가 호르무즈해협에 갇혀 있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전쟁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체 항로를 마련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30% 이상 감소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 위기국이 겪었던 서든스톱에 비유될 만큼 원유 수출 대금의 급감 속에 개발 지급 수요가 많은 회원국을 중심으로 외화난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국가는 UAE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외화 사정이 악화된 UAE는 미국 국채를 매각해 보존해 오다가 미국에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요청했다.
작년 한국의 사례에서 입증됐듯이 주무 부서인 미국 중앙은행(Fed)은 중심 통화로서 달러화 위상을 지키기 위해 캐나다, 일본, 유로 랜드, 영국, 스위스 등 5대 기축통화국과 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비기축 통화국과 체결할 때는 전쟁과 같은 외부 충격으로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때만 한시적으로 체결한다.
통화스와프 체결 요청에도 Fed가 주저하는 사이 외화난이 가중되자 UAE는 증산을 통해 해결할 목적으로 5월 1일부로 OPEC를 전격 탈퇴했다.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 2023년 앙골라 전례가 있긴 하지만 UAE의 탈퇴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만간 이라크, 쿠웨이트마저 탈퇴하면 OPEC는 붕괴 일보 직전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후 보루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도 외화가 부족해 OPEC를 지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스포츠, 예술, 문화 등에 걸쳐 리야드를 제2의 뉴욕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러다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비전 2030'마저 중단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확산 중이다.
전쟁 당사자인 이란도 사정은 더 안 좋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하락하기 시작한 리알화 가치가 달러당 180만리알까지 폭락했다. 이란 국민조차도 자국의 법정화폐를 공중에서 뿌릴 정도로 외면하고 있다. 이란 정부가 고정환율제 도입 등으로 리알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인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이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리알화 가치가 폭락함에 따라 이란 경제는 빠른 속도로 악성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역대 최저치인 –10% 내외로 추락한 반면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사상 최고치인 67%로 급등했다. 이란 국민이 겪고 있는 경제고통지수는 2010년 아랍의 봄 당시 리비아 국민보다 높다.
과연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란의 혁명수비대(IRGC)가 'Do-Or-Die(죽기 아니면 살기)' 전략의 일환으로 5차 중동전쟁을 일으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중동 정세는 1973년 4차 중동전쟁 발생 당시와 달리 초승달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요르단·예멘 그리고 러시아)는 느슨해진 상황이다.
이란 정부와 IRGC의 선택, 크게 두 가지
5차 중동전쟁 발생의 키(Key)를 쥐고 있는 이란 정부와 IRGC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란 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실리외교를 표방하고 있어 5차 중동전쟁 발생 가능성은 희박하다. 작년 6월 이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 이후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헤즈볼라 배후 지원설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하나는 프락치 조직을 지원하는 IRGC를 통하는 길이다. 이란 정부와 별도로 IRGC는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이라크의 '인민동원군', 예멘의 '반군'을 지원해 중동 지역 내 헤게모니를 꿈꾸는 음모를 갖고 있다. 이란 정부도 IRGC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와 해방 프로젝트(freedom project)로 과연 이란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P5+1'(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 핵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던 2015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양측은 이란이 핵 개발 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핵협상 타결에 대해 그 누구보다 이란 국민이 반가워했다. 이란 국영 방송은 1979년 이후 무려 36년 만에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협상 타결 성명서를 생방송으로 직접 중계했다. 이란 시민들도 거리로 나와 'Thank Rouhani'(이란 대통령)를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기대감을 표시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도 앞으로 남은 과제 해결에 불안과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환영했다. 독일, 프랑스 등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됐다"고 반기면서 중동 중심의 전략을 추진해 나갈 방침(pivot to Middle East)을 밝혔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란의 핵협상 타결에 반대했던 국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로 중동 지역의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잠복돼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의 핵협상 타결이 이스라엘 생존을 위협하고 핵확산 및 핵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역사적인 실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이 초승달 벨트와 사우디 벨트(이스라엘·사우디아리비아·미국), 수니파와 시아파를 동시에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 이란이 끝까지 항전하는 것도 트럼프 정부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 개선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고립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와 해방 프로젝트로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이 급감해 핵협정 파기로 악화될 경우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뒤 차단됐던 중동의 최대 시장인 이란이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질 확률이 높다. 중동 국가 가운데 인구와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이란 시장이 다시 닫히면서 세계경제에는 어려움을 초래할 위험도 크다.
이란 정부도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당초 호르무즈해협 통행세 결제 통화로 당초 리알화와 위안화, 그리로 코인으로 받을 계획에 달러화를 포함시켰다. 이란 국민은 오래전부터 자국의 법정화폐인 리알보다 달러를 선호해 왔다. 앞으로 호르무즈해협 통행세를 달러로 받으면 달러라이제이션이 급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1960년 9월 창설 이후 세계 신용 사이클상 자금 잉여국 역할을 해왔던 OPEC 회원국이 자금 수요국으로 전락하면 중동발 금융위기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마저도 자금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에 외화난에 시달리는 OPEC 회원국이 급한 김에 중국으로 달려갈 가능성도 높다.
트럼프 정부도 'Do-Or-Die' 상황에 몰리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목줄(leash line)이라 일컫는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가 넘어선 지 오래됐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30년물 국채금리가 각각 3%, 5%를 넘자 증시에서는 '5.3 괴물(monster)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이란과 미국 모두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전쟁은 마무리돼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한경닷컴 뉴스룸
hankyung@bloomingbit.io한국경제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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