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토큰화 금융자산 2조달러 시대 온다…온체인 '머니 무브' 시작
간단 요약
- 맥킨지는 토큰화 금융자산 시장이 2030년 2조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고 밝혔다.
- 블랙록, 프랭클린템플턴 등 글로벌 금융기관이 토큰화 미 국채, 디지털 MMF, STO 결제 인프라 등 온체인 실험을 실제 자산운용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 주요국이 토큰증권, 스테이블코인, 기관 수탁 인프라 제도화를 추진하며 디지털자산이 제도권 자본시장 인프라 경쟁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간별 예측 흐름 리포트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자본시장의 변화는 대개 조용히 시작된다. 투자자가 체감하기 전, 먼저 움직이는 곳은 결제, 정산, 담보, 수탁 같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지금 온체인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그렇다. 시장의 관심은 여전히 '가격'에 쏠려 있다. 하지만 더 주목할 것은 돈과 자산이 이동하는 방식의 변화다. 금융기관들은 자산이 발행·결제되는 인프라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필자는 이 변화가 미래 금융의 국면을 가른다고 본다.
블록체인은 한동안 새로운 토큰을 발행하는 기술로 받아들여졌다. 최근의 흐름은 다르다. 시장은 이제 기존 자본시장 인프라를 온체인으로 옮기는 단계에 들어섰다.
국채, 머니마켓펀드(MMF), 사모신용, 예금성 자산 같은 기존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위에서 다루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다. 종이 서류를 디지털 파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금융 거래의 일정표와 운영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는 변화다.
숫자는 이미 방향을 보여준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토큰화 금융자산 시장이 2030년 2조달러(약 304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제외한 수치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채권, 펀드, 대출, 상장지수상품(ETP) 같은 전통금융 상품이 대거 온체인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성장세가 가장 뚜렷한 분야는 토큰화 미 국채다. 디지털자산 데이터 분석업체 RWAxyz에 따르면 토큰화 미 국채 시장은 최근 150억달러(약 23조원) 규모로 커졌다. 블랙록, 프랭클린템플턴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가 성장을 이끌었다. 기관의 온체인 실험이 실제 자산운용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글로벌 금융사들의 접근법도 달라지고 있다. 블랙록과 프랭클린템플턴은 토큰화 디지털 MMF를 앞세워 기관투자자를 끌어들인다. JP모간, 씨티, 골드만삭스는 예금 토큰, 담보 이전, 토큰증권(STO) 결제 인프라를 실험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화 국채를 담보로 쓰는 분산장부 레포(DL Repo)도 확산하고 있다. 담보 소유권이 실시간(t+0)으로 이전되면서 하루보다 짧은 인트라데이 레포가 가능해졌다. 정산이 끝날 때까지 대출이 묶이던 병목이 사라진 것이다. 블록체인이 신사업 부서의 실험 과제였다면, 이제 결제·정산·유동성 관리의 핵심 업무로 다뤄진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기술 트렌드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기존 금융 인프라에는 오래된 병목이 있다. 국경 간 증권 결제는 느리다. 사모시장 유동성은 제한적이다. 담보 이동은 여러 중개기관을 거쳐야 한다. 거래는 화면에서 즉시 체결되지만 실제 권리 이전과 정산은 별도 절차를 거친다. 온체인 인프라는 이 간극을 줄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결제 자산의 역할이 커진다. 토큰화 국채와 펀드가 움직이려면 반대편에 안정적인 결제 수단이 있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이 이 구조의 핵심 축이 된다.
토큰화는 비용 절감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수익 기회도 연다. 기관은 토큰화 자산을 24시간 거래·담보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유휴 자산을 더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분할 지분은 그동안 접근이 어렵던 사모신용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에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인다. 운용사 입장에선 상품 진입 장벽을 낮추고 수수료 기반을 넓히는 길이 된다.
앞으로의 경쟁은 어떤 자산을 토큰화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그 자산이 어떤 결제망과 수탁 구조를 갖췄는지, 어떤 기관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기관 사업은 결제, 담보, 수탁, 회계, 공시가 모두 맞물려야 작동한다. 온체인 자본시장의 승부처는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다. 금융기관의 업무 프로세스에 얼마나 깊게 결합되는지에 달려 있다.
필자는 이를 온체인 머니 무브의 본격화로 본다. 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자산이 실제 금융 업무 안에서 제대로 움직이는지다.
규제 논의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같은 주요국은 디지털자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하는 방식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도 토큰증권 제도화,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관 수탁 인프라를 논의하고 있다. 이제 던질 질문은 블록체인이 금융에 필요한가가 아니다. 누가 먼저 제도권에서 작동하는 사업모델을 만들 것인가다.
남은 과제는 적지 않다. 토큰과 실제 권리 사이의 법적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투자자 보호, 공시, 회계 처리, 보안 기준도 정교해져야 한다. 수탁과 내부통제 기준은 기관 참여의 전제 조건이다. 다만 이런 논의가 본격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온체인 자본시장이 금융 주변부의 실험을 넘어 제도권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자산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거래소 중심의 가격 경쟁에서 자본시장 인프라 경쟁으로, 토큰 발행에서 기관의 자산 운용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시스템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온체인 머니 무브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이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는 금융기관과 국가는, 인프라를 남이 짜놓은 판에서 뒤늦게 자리를 구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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