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보조'서 '목표 공유하는 동료'로…에이전틱 AI 시대가 온다 [이스트포인트:서울 2026]
간단 요약
- 글로벌 기업 리더의 81%가 1년~1년 반 안에 에이전트를 자사 AI 전략에 통합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 글로벌 핀테크와 블록체인 시장에서 에이전트가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지급하고 정산까지 마치는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 한국은 전 국민 실명계좌, AI 3대 강국(G3) 도약, 간편결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 등으로 에이전트 인프라 선도 기회를 갖췄다고 밝혔다.
기간별 예측 흐름 리포트


김호진 해시드오픈파이낸스 & 샤드랩 대표

"I'm not a robot.(나는 로봇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이 문장은 인터넷 사용자가 사람인지 봇(자동화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지 판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웹은 지난 30여 년간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 서비스 개발자는 사람을 위한 사용자 경험(UX) 혁신에 몰두했고, 보안 시스템은 접속한 상대가 사람인지 자동화 프로그램인지를 구분했으며, 금융 서비스의 인증은 경제활동의 주체가 자산의 소유자 본인이 맞는지 확인했다. 검색도, 쇼핑도, 결제도 모두 '사람이 직접 행동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머지않아 우리는 정반대의 문장을 더 자주 보게 될지 모른다. "I'm not a human.(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전제를 흔드는 주인공이 AI 에이전트다. 스스로 검색하고, 예약하고, 업무를 수행하며, 다른 AI와 협업하는 소프트웨어다. 이처럼 AI가 능동적으로 목표를 수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에이전틱 AI'라고 부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능동적 실행'이다. 생성형 AI가 질문에 답을 내놓는 보조 도구였다면, AI 에이전트는 목표를 이해하고 계획을 세운 뒤 여러 시스템을 오가며 일을 끝낸다. "출장을 준비해줘"라는 한마디에 항공권을 찾고, 호텔을 예약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필요한 이메일까지 쓴다. 질문에 답하는 AI에서 목표를 수행하는 AI로, 인터넷에 새로운 '행동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31개국 직장인 3만여 명을 조사한 '워크 트렌드 인덱스' 지난해 보고서에서 기업 리더의 81%는 1년~1년 반 안에 에이전트를 자사 AI 전략에 통합하겠다고 답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2029년까지 전 세계 기업이 운영하는 AI 에이전트가 10억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필자는 이 변화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사회와 경제, 그리고 인프라가 다시 설계되는 전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일의 모습부터 달라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에이전트가 실행을 맡을수록 사람의 역할은 목표를 설정하고 판단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쪽으로 이동한다고 분석하고, 이런 직장인을 '에이전트 보스'라고 이름 붙였다. 말하자면 직접 손을 움직여 실행하던 사람이 AI의 일을 관리하고 검토하는 감독자로 옮겨가는 셈이다. 직원의 역할이 이렇게 변하는 것은 노동의 단위 역시 개별 '작업'에서 '목표'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뜻이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시장 경제에서 벌어진다. 지금까지 기업은 사람을 설득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광고와 마케팅을 고도화하고, 사람이 쓰기 편한 화면과 결제 버튼을 다듬었다. 하지만 검색과 비교, 구매와 결제를 에이전트가 대신하는 순간 기업의 고객 명단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게 된다. 에이전트에게 화려한 배너 광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에이전트가 보는 것은 상품 정보와 가격, 재고, 반품 조건이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리돼 있는가, 결제와 정산이 자동으로 처리되는가다. 정보 격차도 극적으로 줄어든다. 만인의 에이전트가 완전에 가까운 정보로 상품을 비교하고 구매하는 세상은,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효율성이 극대화된 완전경쟁시장에 성큼 다가선 모습이다. 기존의 경쟁력이던 '사람에게 선택받는 브랜드'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에이전트에게 선택받는 데이터와 인터페이스'는 기존 경쟁의 전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게임의 룰이다.
글로벌 핀테크와 블록체인 시장에서는 에이전트가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지급하고 정산까지 마치는 실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실험은 거대한 변화의 예고편일 뿐이다. '행동 주체'의 변화는 새로운 인프라를 요구한다. AI가 사람을 대신해 행동하려면 누구를 대신하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떤 권한을 위임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결제하고 거래 결과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분산형 디지털 신원과 권한 관리, 스테이블코인, 프로그래머블 결제, 에이전트 간 통신(A2A) 같은 기술이 함께 주목받는 이유다. 에이전트 시대에는 안심하고 AI에게 일을 맡길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한국에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 국민 실명계좌에 기반한 금융 시스템, 정부가 국가 목표로 내건 'AI 3대 강국(G3)' 도약과 반도체부터 독자 모델까지 이어지는 풀스택 소버린 AI 투자, 세계 최고 수준의 간편결제 보급률, 그리고 국회와 정부에서 진행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까지, 에이전트가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할 수 있는 조건을 이만큼 갖춘 나라는 드물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서비스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조건들을 하나의 인프라로 엮어 새로운 시대의 표준을 선도할 기반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미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해시드와 블루밍비트,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글로벌 콘퍼런스 '이스트포인트:서울 2026'이 올해 9월 행사의 대주제를 'The Agentic Era'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머지않아 웹사이트는 접속자인 에이전트에게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대신해 왔습니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프라를 먼저 갖춘 나라가 다음 30년의 인터넷 질서를 쓴다. 인터넷 이후 가장 큰 업무 방식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김호진 해시드오픈파이낸스 & 샤드랩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뉴스룸
hankyung@bloomingbit.io한국경제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