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IndicatorLoading Indicator

페트로달러 다음은 '컴퓨트달러'…미국이 코인에 목매는 이유

기사출처
한경닷컴 뉴스룸

간단 요약

  • 미국은 AI, GPU, 데이터센터 투자를 매개로 중동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확산시켜 새로운 디지털 달러 결제망을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 USDT, USDC스테이블코인이 미 단기국채의 새로운 수요처로 부상하며, 지니어스법(GENIUS Act) 제정 이후 미국 국채시장과 달러 수요 확대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 미국은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미국 준비금 현대화법(ARMA) 등을 통해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디지털 금본위제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간별 예측 흐름 리포트

Loading IndicatorLoading Indicator

"AI 시대 달러 패권 무대가 바뀐다"

"미국은 기술을 내주는 대가로 중동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정착시키며 새로운 디지털 달러 결제망을 짜고 있다"

그래픽=송주연 기자
그래픽=송주연 기자

우리는 달러의 세계에 살고 있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원유와 원자재를 들여올 때도, 해외 주식에 투자할 때도 달러를 거친다. 원·달러 환율이 출렁이면 수입물가와 기업 비용도 움직인다.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69.5%에 달한다.

하지만 달러패권을 둘러싼 환경은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71%에서 2026년 1분기 57%로 낮아졌고 한때 미국 국채 큰손이었던 중국의 보유액은 2013년 약 1조3000억달러에서 올해 6월 6334억달러로 줄었다.

이러한 지표들을 보면 과거 네덜란드나 영국처럼 미국의 화폐 지배력도 수명이 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몰락이 아닌 달러패권의 다음 무대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석유에서 인공지능(AI)으로, 실물 거래에서 디지털 거래로 달러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구상이다. 이른바 '컴퓨트달러(Compute-Dollar)'다.

미국이 주도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를 세계에 공급하고 이를 활용해 만들어지는 AI 상품과 서비스 결제까지 달러 또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연결하는 발상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제안한 구상으로 아직 공식 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AI 인프라 투자와 달러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환경은 만들어지고 있다.

◆페트로달러에서 '컴퓨트달러'로

AI 연산력이 새로운 전략자산으로 부상

미국 달러의 힘을 이해하려면 석유를 봐야 한다. 세계경제가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유의 상당 부분을 달러로 거래했고 석유를 사려는 국가들은 달러를 확보해야 했다. 달러가 세계경제 곳곳으로 퍼지는 강력한 통로가 만들어진 셈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미국과 주요 산유국의 관계가 공고해지면서 이런 질서가 더욱 굳어졌다. 흔히 '페트로달러(petrodollar)'라고 부르는 구조다. 산유국이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달러는 미국 국채를 비롯한 달러 자산에 투자되거나 세계 금융시장으로 흘러갔다. 석유 거래를 매개로 달러가 국제무역과 금융을 오가는 순환고리가 만들어졌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석유를 거래하기 위해 '달러를 계속 필요로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달라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 보유를 줄이면서 달러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다. 에너지 시장에서는 탈석유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고 AI가 새로운 경제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석유가 산업과 이동을 움직이는 핵심 에너지원이었다면 디지털 경제에서는 AI를 작동시키는 연산 능력, 즉 '컴퓨트(compute)'가 새로운 생산 기반으로 떠오르고 있다. GPU와 데이터센터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 힘이 되고 있는 이유다.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테리 더피는 "디지털 경제의 근간인 컴퓨팅은 21세기의 새로운 석유와 같다"고 말했다. "모든 AI 모델 학습, 모든 거래 결제, 그리고 모든 데이터 처리는 컴퓨팅 자원을 기반으로 이뤄지며 컴퓨팅 자원은 그 자체로 빠르게 성장하는 자산군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ICE 선물시장 부문 수석부사장인 트라뷰 블랜드는 "AI가 연구실과 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로 빠르게 자리매김하면서 컴퓨팅 시장 또한 그에 못지않게 빠르게 진화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통용하는 가격 결정 메커니즘과 위험 관리 도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GPU에서 데이터센터까지

AI 인프라에 달러를 심는다

변화는 중동에서 시작하고 있다. 석유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이제 자금을 AI와 데이터센터에 쏟아붓고 있다. 막대한 석유·가스 수익과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 비용을 바탕으로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고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자체 AI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조사기관 IMARC그룹에 따르면 중동 AI 시장은 2024년 46억달러에서 2033년 1500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사우디는 AI를 직접 키우는 데 나서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는 2025년 AI 기업 HUMAIN을 출범했다. AI 모델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를 아우르는 자체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미국 중심의 AI 기술 생태계가 중동으로 확장하고 있다. UAE의 AI 투자사 MGX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xAI 등 미국 빅테크와 손잡고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에 투자하는 인공지능인프라파트너십(AIP)을 출범시켰다. 최대 1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동원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서 중동의 국부자본은 미국 빅테크 및 글로벌 금융자본과 함께 AI 인프라 투자자로 참여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UAE의 AI 기업 G42에 투자한데 이어 UAE에서 AI·클라우드 인프라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클라우드와 AI 기술, 엔비디아의 첨단 GPU가 중동의 오일머니와 결합한단 얘기다.

미국 정부는 첨단 AI 반도체의 중동 수출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미국산 기술의 보호와 국가안보 기준을 강조하고 있다. 2025년 미국과 UAE가 체결한 AI 협정에는 UAE의 10년간 1조4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과 함께 미국산 첨단기술의 전용·유출을 막기 위한 보안 기준을 맞추는 내용을 포함했다. 미국이 첨단 AI 반도체의 중동 수출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기술 생태계의 주도권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결제 영역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연결고리로 떠오르고 있다.

◆AI 시대의 달러 결제망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고정된 디지털 화폐'다. 달러 또는 다른 실물자산에 일대일로 연동한다. 발행사는 이용자가 코인을 현금으로 교환해달라고 요구할 때 지급할 수 있도록 미 국채, 금, 달러 등 준비자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은행망을 거치지 않고도 24시간, 국경을 넘어 달러를 이동시킬 수 있는 '인터넷 기반 달러 결제망'이 될 수 있다.

중동은 이 새로운 달러 결제망이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다. UAE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테더의 USDT와 서클의 USDC처럼 달러 가치에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이 중동의 디지털자산 시장과 결제 인프라에 자리 잡으면서 블록체인 위에서도 달러가 유통될 수 있는 기반이 넓어지고 있다.

여기서 과거의 석유(페트로달러)와 오늘날의 AI를 연결해 볼 수 있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미국의 GPU·클라우드·데이터센터에 투자하고 이 기술로 만들어지는 디지털 경제가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반도체와 오픈AI, 제미나이의 AI 서비스를 사려면 미 재무부가 승인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해진단 얘기다. 스테이블코인은 지급준비금을 위해 미 국채 등을 사들인다. 석유가 달러 수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AI 시대에는 '컴퓨트'가 달러 수요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패권을 약하게 하는 40조달러 부채

현재 주요 스테이블코인들은 미 국채가 담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테더(USDT), 서클(USDC) 등이 대표적이다. 테더는 올해 1분기 기준 약 1410억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기준으로 20위 안에 든다. 한국, 독일, 사우디 등보다 많은 양이다. 서클은 약 650억~74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국가 순위로 치면 25~30위권에 위치한다. 네덜란드, 호주 등과 맞먹는 수준이다.

미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이 국채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자 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2025년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했고 2026년에는 세부 시행규칙 마련에 들어갔다. 지니어스법은 준비자산 대부분을 초단기 국채(T-bill)와 국채담보 환매조건부채권(RP) 등 단기국채로 운용하도록 유도한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준비자산이 증가하면서 미국 단기국채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인 것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두 회사의 초단기 국채 보유액은 2022년 이후 700억달러 증가했다.

재정 부담과 국채시장 불안이 겹치면서 현재 달러패권을 지키는 미국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8월 27일 기준 미국의 정부부채는 40조775억달러에 이른다. 이자 비용만 1조달러가 넘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연방정부 세입 5달러 가운데 거의 1달러가 이자 지급에 쓰이는 수준이다.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5.27% 안팎에서 움직이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이후 약 19년 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새로운 수요처를 만들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달러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의 사용이 늘어나면 세계 곳곳에서 달러를 보유하고 거래할 필요성이 커진다. 동시에 발행사는 이용자의 상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준비자산의 상당 부분이 미 단기국채로 흘러간다면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달러 수요를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 국채시장으로 자금을 되돌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정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채 수요처를 확보하는 동시에 디지털 경제에서 달러가 사용될 수 있는 영역을 넓힐 수 있다.

그래픽=송주연 기자
그래픽=송주연 기자
그래픽=송주연 기자
그래픽=송주연 기자

◆비트코인 본위제?

미국의 디지털 금융 패권 전략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국채 소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달러를 디지털 공간에 유통시키는 한편 그와 별개로 비트코인을 국가 차원의 전략자산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3월 행정명령을 통해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체제를 구축했다. 미국 재무부가 정부 보유 비트코인을 통합 관리하고 압수·몰수 등으로 확보한 물량을 준비금으로 이전하는 내용이다. 비트코인을 단순한 민간 가상자산이 아니라 국가가 장기적으로 보유할 주권적 전략자산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의회에서는 이를 법률로 고착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2026년 5월 하원의원 닉 베기치 등이 발의한 '미국 준비금 현대화법(ARMA)'은 재무부 내에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을 설치하고 연방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한곳에 통합하도록 했다. 준비금에 편입된 비트코인은 최소 20년간 매각·교환·담보 설정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분기별 보유 현황을 암호학적으로 검증해 공개하는 '보유 증명(Proof of Reserve)' 체계도 마련하도록 했다.

주목할 부분은 자금조달 방식이다. 이 법안은 국민의 세금을 새로 걷지 않는 구조를 지향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보유한 준비금 자산(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통해 채권시장으로 들어온 자금 등) 중 만기되는 자금이나 회계적 잉여금을 환수해 비트코인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 등을 연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기존에 미국 국채를 떠받치던 자금을 빼내 변동성이 큰 자산으로 돌리는 셈이어서, 논란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으로 아직 법률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과거 금본위제에서 금이 화폐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이었다면 새로운 디지털 질서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비트코인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하나는 달러를 더 넓게 유통시키고 다른 하나는 희소 디지털자산(비트코인)을 국가가 직접 보유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디지털 금본위제' 또는 새로운 '브레턴우즈 체제'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다만 아직 미국이 비트코인을 달러의 공식적인 담보나 최종 결제자산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 본위제'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픽=송주연 기자
그래픽=송주연 기자

돋보기

디지털 패권의 서막은

미국이 달러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한번 판을 흔들고 있다. 그간 미국은 금본위제, 페트로달러 시스템, 스위프트(SWIFT·미국 주도 국제결제시스템)를 활용해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했다. 이제는 가상자산 생태계 장악을 통해 달러패권을 지키려 하는 모습이다.

달러패권은 돈의 힘을 넘어 미국이 세계를 쥐고 흔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 러시아를 국제결제망(SWIFT)에서 쫓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달러 결제를 막아버리는 것만으로도 한 나라의 경제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똑똑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 무서운 파괴력은 역설적으로 거대한 부작용을 낳았다.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 언제든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중국, 브릭스(BRICS) 국가들, 그리고 중동의 산유국들이 각자도생식 '탈달러 움직임'을 본격화하며 전통적인 달러 동맹의 균열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중동은 달러 무기화에 대한 위기감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석유 시대의 종말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석유 자원의 가치가 고갈되기 전에 막대한 오일머니를 AI와 데이터센터로 전환하여 독자적인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이 야망을 실현하려면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이 필수적이었고 미국은 기술을 내주는 대가로 중동에 달러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정착시키며 새로운 디지털 달러 결제망을 짜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AI 인프라
#달러 패권
#가상자산 규제
한경닷컴 뉴스룸

한경닷컴 뉴스룸

hankyung@bloomingbit.io한국경제 뉴스입니다.

이 뉴스, 어떻게 보시나요?








PiCK 뉴스






해시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