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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산유국이라는 미국, 에너지 가격은 왜 못잡을까[박신영의 월가 아나토미]

기사출처
한경닷컴 뉴스룸

간단 요약

  •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을 유지하고 미국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각각 40%, 80% 가까이 상승했다고 밝혔다.
  • 미국은 정유 능력 부족, 세계 디젤 공급 부족, 낮은 재고로 인해 디젤 가격이 작은 수급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 백악관의 디젤 수출 금지 검토는 단기적으로 국내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정유사 생산 축소와 국제 디젤 가격 상승으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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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최근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미국도 다시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국채금리 역시 이런 물가 불안을 반영하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입니다. 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왜 자국의 휘발유와 디젤 가격은 마음대로 낮추지 못하는 걸까요.

24일(현지시간) 월가 아나토미에서는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면서도 국내 에너지 가격을 제어하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루 평균 1358만 배럴

미국은 2018년부터 세계 최대 산유국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2025년 미국의 원유와 콘덴세이트 생산량은 하루 평균 1358만 배럴로, 세계 전체 생산의 약 15.8%를 차지했습니다.

2위 러시아는 하루 1016만 배럴, 3위 사우디아라비아는 973만 배럴 수준입니다.

특히 텍사스주 하나만 놓고 보면 하루 약 580만 배럴을 생산합니다. 미국 전체 생산의 43%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텍사스만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면 세계 4위 산유국 수준입니다.

2. 셰일가스에서 경질유 생산

미국 원유 생산 증가의 중심에는 셰일혁명이 있습니다.

셰일은 치밀한 암석층입니다. 이 암석층에 고압의 물과 모래를 넣어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을 수압파쇄하고 합니다.

이렇게 생산한 원유를 타이트 오일, 흔히 셰일 원유라고 부릅니다. 함께 나오는 천연가스는 셰일가스입니다.

미국 셰일 원유의 특징은 경질·저유황유라는 점입니다. 경질유는 가볍고 묽은 원유를 말합니다. WTI와 미국 셰일유가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캐나다 오일샌드나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무겁고 끈적한 중질유에 가깝습니다.

중동산 원유는 그 중간에서 중질유 쪽에 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랍라이트처럼 유황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원유도 대표적입니다.

3. 미국 정유소는 중질유에 특화

문제는 미국의 정유소가 셰일 경질유를 전제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대형 정유소 대부분은 셰일혁명 이전에 건설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중질유를 수입해 휘발유와 디젤, 항공유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즉, 중질유를 분해하고 가공하는 데 강점이 있는 정유시설입니다.

반면 미국에서 새로 많이 생산되는 셰일 원유는 경질유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경질유를 수출하고, 정유소에 더 잘 맞는 중질유를 수입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은 하루 약 320만~4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면서도, 하루 약 62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합니다. 이 가운데 60% 이상은 중질유이며, 캐나다산 비중이 약 63%를 차지합니다.

4. 정유공장을 개조하면 되지 않나

그렇다면 정유공장을 셰일 경질유에 맞게 바꾸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수십억달러의 비용이 들고, 완공까지 수년이 걸립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신규 대형 정유공장이 사실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존 공장을 증설하는 데도 복잡한 인허가와 환경 규제가 따릅니다.

전기차 전환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수십 년을 바라보는 대규모 화석연료 설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 시장은 공장 개조보다 수출입을 통해 원유 수급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5. 미국은 석유제품 최대 수출국

미국은 중질유를 처리해 휘발유·디젤·항공유를 생산하는 대형 복합 정유소를 갖춘 덕분에 정제 석유제품의 최대 수출국이 됐습니다.

특히 미국은 세계 LPG 수출의 40%대 초반을 담당합니다.

디젤 역시 미국은 세계 최대급 수출국입니다. 국제 디젤 거래량의 약 15~20%를 공급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러시아 정유시설의 가동 차질과 제재가 이어지면서 미국산 디젤의 세계 시장 내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6. 국제 가격을 따라가는 구조

석유는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상품입니다.

미국 내 가격이 해외보다 낮으면 정유사와 트레이더들은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해외로 물량을 보냅니다. 이를 차익거래라고 합니다.

수출이 늘면 미국 안에 남는 물량은 줄고, 국내 가격도 다시 국제 가격 수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반대로 국내 가격이 수입 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으면 수입 물량이 줄어들고 공급 부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의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가격에 운송비와 유통비를 더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산 원유 기준인 WTI는 세계 기준유인 브렌트유와 함께 움직입니다. 미국에서 생산하고 미국에서 정제하더라도, 수출입의 문이 열려 있는 한 가격은 세계 시장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7. 국제 유가는 왜 오르나

현재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전쟁과 지정학적 위험입니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험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중동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도 이어지면서 정제 능력 차질이 커졌습니다.

OPEC+가 감산을 완화했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실제 생산은 전쟁과 제재, 시설 차질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고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결국 공급은 빠듯한데 지정학적 위험까지 겹치면서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도 함께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24일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48달러, 디젤 가격은 6.51달러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휘발유 가격은 40% 이상, 디젤 가격은 80%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8. 세계 디젤 공급 부족

다른 석유제품 가격도 오르고 있지만, 디젤 가격 상승폭이 특히 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세계적인 정유시설 차질입니다.

중동과 러시아의 정유시설 피해로 전 세계 정제 능력의 약 10%가 가동을 멈춘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유가 있어도 이를 디젤과 항공유, 휘발유로 바꿔줄 정유시설이 부족해진 것입니다.

둘째, 미국 내 정유 능력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당시 수요가 급감하면서 일부 정유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신규 정유공장은 사실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존 정유소가 최대한 가동되더라도 전체 생산 능력 자체가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중동과 러시아의 정제 차질로 세계 시장에서 디젤이 부족해지자 미국산 디젤은 남미와 유럽으로 빠르게 수출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유소 가동률은 이미 약 97% 수준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추가 생산을 크게 늘릴 여유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수출이 활발한 만큼 재고도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디젤과 난방유를 합친 증류유 재고는 1982년 통계 집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선물시장 구조도 재고 확대를 어렵게 만듭니다. 디젤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낮은 백워데이션 상태에서는 기업이 비싼 가격에 디젤을 사서 저장해도 나중에 더 낮은 가격에 팔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간이 재고를 쌓을 유인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을 수확철 농기계와 화물 운송 수요, 겨울철 난방유 수요까지 겹치고 있습니다.

낮은 재고, 제한된 정유 능력, 높은 수출 수요가 동시에 겹치면서 디젤 가격은 작은 수급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9. 디젤, 경제 전반 영향 커

미국에서도 휘발유 소비 비중은 디젤보다 훨씬 큽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EIA 기준으로 2025년 미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은 약 2030만 배럴입니다.

이 가운데 휘발유 소비는 하루 약 890만 배럴로 전체의 44%를 차지합니다.

반면 디젤과 난방유를 합친 증류유 소비는 하루 약 390만 배럴로 전체의 약 19%입니다. 휘발유 소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디젤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직접적입니다.

디젤 가격이 오르면 화물차와 물류업체의 비용이 먼저 상승합니다. 이후 유류할증료와 운임 인상을 통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로 비용이 넘어갑니다.

계약 갱신과 재고 소진이 진행되면 식료품과 생활용품 가격에도 반영됩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에는 대체로 1~3개월의 시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휘발유는 가계의 직접 지출에 영향을 줍니다. 반면 디젤은 물류비를 통해 경제 전체의 가격에 번지는 연료입니다.

10. 디젤 수출을 금지하면 해결될까

백악관은 디젤 수출 금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대 효과는 단순합니다. 수출을 막으면 미국 안에 남는 디젤 물량이 늘고, 국내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민과 트럭 운전자의 연료 부담을 덜려는 정치적 목적도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정유사가 생산을 줄일 수 있습니다.

원유를 정제하면 디젤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휘발유와 제트유, 중유 등 여러 제품이 정해진 비율로 함께 나옵니다.

수출이 막혀 팔 곳 없는 디젤이 탱크에 쌓이면 정유사는 원유 투입량 자체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디젤뿐 아니라 휘발유와 항공유 생산도 함께 줄어듭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도 수출을 막으면 정유사가 생산을 줄이고, 휘발유 가격이 즉각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남는 디젤을 미국 내 필요한 지역으로 보내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 디젤 수출의 상당 부분은 걸프만 연안 정유소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파이프라인 용량에는 한계가 있고, 미국 항만 간 해상 운송은 존스법 규제를 받습니다.

동부 해안처럼 정유시설이 부족한 지역으로 물량을 빠르게 돌리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세계 가격 상승이 결국 미국에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해상으로 거래되는 디젤의 약 20%, 하루 약 150만 배럴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 공급원입니다. 유럽은 러시아산 디젤 수입을 끊은 뒤 미국산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수출을 막으면 해외 디젤 가격은 먼저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내에서는 단기적으로 가격이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부 해안처럼 해외 공급에 의존하는 지역은 국제 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미국의 디젤 가격도 세계 가격과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물가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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