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국민연금이 외국인 ATM기냐"
간단 요약
-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와 국내주식 목표 비중 상향으로 원칙을 훼손해 개인투자자에게 손실 전가 논란이 커졌다고 밝혔다.
- 리밸런싱 유예 이후 코스피지수 급락으로 국내주식 운용손익이 한 달 새 124조8000억원 증발하며 국내주식 수익률이 -2.99%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 국민연금의 룰 변경으로 외국인 투자자는 고점에서 순매도로 차익을 실현한 반면, 개인투자자는 고점 구간에서 대규모 매수로 물량을 떠안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기간별 예측 흐름 리포트


"누가 개미지옥 만들었나"
국감서 운용 독립성 논란
리밸런싱 유예로 外人 고점 매도
개인투자자만 '총알받이' 신세
해외 연기금과 달리 원칙 어겨
운용 수익 한 달 새 125조 증발
"국민 노후자금…독립성 지켜야"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장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와 기금 지배구조 독립성 훼손을 둘러싼 성토장이었다. 글로벌 자산운용 시장에서 공적 연기금의 리밸런싱은 과열을 식히고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주가가 급등해 상한선을 넘으면 기계적으로 분할 매도해 이익을 확정하고, 폭락할 때는 저가 매수해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그러나 1700조원 기금 규모의 국민연금은 원칙을 훼손하고 연초 리밸런싱을 전격 유예했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는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 개인투자자에게 고스란히 손실을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코스피지수 8000 넘자 '룰 개정'↓
국민연금은 지난 1월 26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코스피지수 5000 돌파를 하루 앞두고 리밸런싱을 전격 유예했다. 코스피지수가 8000을 넘어서며 보유 비중이 한도를 넘기자 5월 말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상향했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도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넓혀 최대 28.8%까지 보유하도록 운용 여력을 인위적으로 확대했다. 코스피지수가 8000대 중후반까지 치솟아도 기계적으로 주식을 팔지 못하게 빗장을 잠근 셈이다.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증시에 찬물을 끼얹으면 죄인이 된다'는 정무적 압박에 갇혀 국민연금 운용의 손발을 묶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부의 증시 부양 드라이브에 국민연금이 동원됐다고 맹공을 폈다. 조배숙 의원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투자 기준을 바꾸고 당연직 관료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하명 회의였다"고 직격했다. 반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종전 목표치를 맞추려면 200조원어치 이상 팔아야 했는데, 막대한 물량을 쏟아냈다면 증시 붕괴를 불렀을 것"이라고 맞섰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시장이 급격하게 변할 때는 '바이 앤드 스테이'라는 투자 원칙이 있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 등락에 맞춰 사고팔기를 반복하면 거래 비용만 커지고 기금의 장기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세계 연기금의 공통된 철학"이라고 말했다.

개미만 고점에서 '물량받이'
원칙을 저버린 대가는 참혹했다. 코스피지수는 6월 9000선을 터치한 뒤 7월 말 6600 안팎으로 급락했다. 이날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283조5000억원이던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누적 운용손익은 7월 말 158조7000억원으로 줄었다. 7월 한 달 국내주식 수익률이 -2.99%로 떨어지며 124조8000억원의 평가손익이 증발했다. 사학연금과 우체국예금이 최근 10년간 시장 상황을 이유로 리밸런싱을 유예한 적이 없고, 공무원연금도 20영업일 내에 룰대로 처분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국민연금이 룰을 깬 과실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돌아갔다. 외국인은 5~6월 상승장에서 170조원어치 순매도하며 고점 차익을 챙겨 시장을 빠져나갔다. 연간 누적 순매도액만 190조원에 달했다. 외국인이 던진 물량 폭탄을 받아낸 것은 정부의 증시 부양 기조를 따른 개인투자자였다. 개인들은 코스피지수 6000~9000대 초고점 구간에서만 116조원어치를 담았고, 5월 출시된 '삼전닉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연금 거버넌스의 독립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시장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이해관계자 추천 인사가 과반인 구조적 한계 탓에 정권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원칙과 독립성을 지킨 해외 대형 연기금과 대비된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닛케이지수가 30,000에서 70,000을 돌파하는 강세장에서도 국내주식 25% 룰에 따라 기계적으로 물량을 분할 매도해 차익을 확정하고 시장 과열을 식혔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관리청(NBIM)과 유럽 최대 기관투자가인 네덜란드 APG 역시 단기적인 정치적 압박과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규율에 따라 엄격하게 리밸런싱한다.
백 의원은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이라며 "핵심 운용 기준을 원칙 없이 바꾸고도 기금운용위 회의록을 4년 뒤에나 보라는 것은 국회와 국민에 대한 기만이자 독립성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최형창/최석철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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