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국채 큰손 대열 합류…통상 압박 완화하고 외환보유액 늘린다
간단 요약
- 정부와 한국은행이 미 국채 대규모 매입을 추진해 외환보유액 확충과 미국 정부의 '백기사' 역할을 동시에 노린다고 전했다.
- 원·달러 환율 하락과 미 국채 금리 급등을 계기로 연 5% 이상 이자 수입과 함께 통상 협상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복안이라고 밝혔다.
- 미 국채 주요 보유국이 되면 관세·대미투자 협상력,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 재개 등 대미 경제 동맹 강화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간별 예측 흐름 리포트


韓이 백기사로…美국채 대량 매입한다
환율·국채가격 떨어져 "외환방파제 쌓을 기회"
美는 자금조달 숨통, 韓 통상협상 지렛대 '윈윈'

한국이 미국 장기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우려로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한 미 국채를 대거 사들여 미국 정부의 '백기사'로 나서는 동시에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의 경제 동맹을 한층 강화해 통상 압력을 완화하는 고도의 패키지 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은행은 최근 이 같은 방안을 미국에 제안했고 미국도 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양국 재무부·중앙은행 '2+2 면담'에서도 미 국채 매입과 관련해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프랜시스 브룩 재무부 부장관 등이 이례적으로 회동했다.
정확한 매입 규모는 정해놓지 않았지만 지난 10월 말 기준 4431억달러인 외환보유액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만한 규모의 미 국채를 사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 수백억달러어치에 달할 전망이다.
한국은 8월 말 기준으로 미 국채 약 1342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보유액 기준으로 세계 18위다.
정부가 미 국채 대량 매입 카드를 꺼내든 것은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고환율 국면에서 외환보유액을 확충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1560원 선까지 치솟는 등 과도한 쏠림을 보였지만 심리적 마지노선인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에 시장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하반기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고 금리가 급등해 가격 부담 없이 미 국채를 사들일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도 환영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국채 금리가 뛰어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유럽 등 주요 보유국은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미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한국의 국채 매입이 가격 방어에 작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美의 백기사로 나서…한·미 '경제 동맹' 강화
매달 美국채 입찰 참여하는 방식, 대미투자 협상력 높이는데 활용
한국이 미국 장기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이기로 한 건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동시에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 복안으로 풀이된다. 국채 금리 급등으로 고심하는 미국의 우군으로 나서는 동시에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이어질 통상 압박을 돌파할 지렛대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외환 안전판+외교 지렛대 얻는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18년 6월 4000억달러를 넘긴 이후 8년 넘게 4000억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10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431억6000만달러다. 올 상반기 달러당 1560원을 웃도는 고환율 국면을 거치면서 외환당국 내부에서 외환보유액을 확충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까지 내려앉은 지금이 미 국채를 매입해 보유액을 늘릴 기회라고 판단했다. 국채 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매입한다면 연 5% 이상의 이자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미 국채 주요 보유국으로 자리 잡는다면 관세와 대미투자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현재 18위인 한국의 미 국채 보유국 순위가 높아지면 최악의 경우 미 국채 매도라는 카드를 쥐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중간선거 이후 3대 대미투자 프로젝트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와 향후 대안 투자처를 찾는 과정에서 한국의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
미 국채 매입을 지렛대 삼아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를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방콕에서 한·미 재무·통화당국 2+2 회동을 한 뒤 연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통화스와프는 한국 외환시장의 든든한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선진국 수준의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 5개국 중앙은행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미 금리 급등에 '구원투수' 노려
한국의 미 국채 매입은 미국에는 '가뭄 속 단비'가 될 수 있다. 지난 2월 말 연 3.96% 수준이던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초 연 5.31%까지 급등했다. 현재 연 4.85%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채 금리가 오를수록 막대한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미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연동된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이 급등해 가계와 기업의 금융 부담도 늘어난다. 최근 미 재무부가 국채 바이백(매입)까지 추진했지만 시장의 수급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요국의 '미 국채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미 국채 보유액 상위 10개국은 최근 6개월간 1315억달러어치를 팔아치웠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대규모 국채 수요처로 등장하면 미국은 국채 시장 안정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 매달 열리는 미국 국채 경매 시장에 간접입찰 방식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채 입찰에서 간접입찰 비중은 해외 중앙은행의 수요를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다. 지난 9월 말 미국 3년 만기 국채 입찰에서 수요 부진으로 0.03%포인트 넘는 테일(경매 직전 금리보다 낙찰 금리가 높은 상태)이 발생했다. 간접입찰 비중도 10%포인트 가까이 줄어들며 미 국채 수요가 감소했다는 게 입증되자 10년 만기 금리도 급등했다.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미 국채를 매입할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수출 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서울외환시장이 아니라 장외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 급락하는 국면에서는 그동안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도하면서 쌓인 원화를 활용할 수 있다.
심성미/김익환/정영효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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