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공포가 세계 주식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소비 수요가 늘면서 상품 가치가 급등했지만 꽉 막힌 공급망 탓에 실물경제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잇따라서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여야 하지만 성장세가 멈출 것이란 우려에 대응마저 쉽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식품 가격 폭등과 에너지 부족 사태 등이 현실화하면서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렸던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소비 수요가 급증했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에 상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에너지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유럽에선 천연가스값이 연일 치솟고, 중국은 석탄 부족에 몸살을 앓고 있다.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이 꿈틀대자 국제 유가도 함께 급등하고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이끈 것은 중동발 오일쇼크였다. 세계 증시가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을 떠올리는 이유다.
시마 샤 프린시펄글로벌인베스터스 수석전략가는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소비 지출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1970년대는 아니지만 현대판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이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지수는 1.59% 하락한 33,843.92로 마감했다. 지난 한 달간 나스닥지수는 5.4% 하락했다.
미국의 높은 물가가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 데다 중국 제조업 경기가 코로나19 유행 후 처음으로 위축 국면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프라 법안이 미 하원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여파는 아시아 주식시장으로 번졌다. 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62% 내린 3019.18에 장을 마쳤다. 올해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2.31% 하락했다.
◇獨·스페인 물가상승률 4% 넘어서…美는 5.3%로 치솟아
◇에너지값 급등·원자재 품귀…공급 부족에 경기위축 가속
1974년 1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65달러로 4개월 만에 네 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던 아랍 국가들이 석유 자원을 무기 삼아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면서다. 1차 오일쇼크다. 그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0.5% 떨어져 역성장했다. 물가는 11.05% 급등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상품 가격이 올라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됐다. 오일쇼크발(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은 유럽 일본 등 세계를 강타했다.
오일쇼크 악몽이 50년 만에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공급망 곳곳이 무너졌지만 소비 수요가 늘면서 물가가 빠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을 비롯해 가구 의류 등 사실상 모든 소비재 기업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인플레로 시름하는 미국·유럽
독일 연방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 올랐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독일 물가상승률이 4%를 넘어선 것은 199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 지역 상품 가치가 오르면서 물가가 급격히 상승했다.
스페인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4%(전년 동기 대비)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도 지난달 물가가 3.2% 올랐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 추정치는 3.3%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3%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상품 가격이 급등했다. 철강부터 반도체까지 사실상 모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세계 식료품 가격은 지난해 3월 이후 40% 급등했다. 코로나19 사태에 생산이 급격히 줄었지만 소비 수요가 살아나자 가격이 급등했다. 고기, 유제품 등 모든 식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난까지 더해져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세계 각국은 생산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너지 부족에 유가도 치솟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 비용이 높아져 생산을 늘리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달 28일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3년 만의 최고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석탄 부족에 시름하고 있다.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다. 일부 지역에선 공장까지 가동을 멈췄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국영 에너지기업들에 석탄과 석유 확보를 지시했다. 중국이 ‘에너지 사재기’에 나서면 가격은 더욱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가 살아난 미국과 유럽에서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것도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다. 영국에선 트럭 운전사가 10만 명가량 부족해 유조차마저 운행이 어려운 상태다.
◇전문가들 “1970년대와는 다를 것”
경기 둔화 지표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는 109.3으로 예상치(114.8)를 밑돌았다. 중국의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예상치(50.1)보다 낮은 49.6으로 떨어졌다. PMI는 제조업 경기를 파악하는 심리지표다. 기준선인 50을 넘지 못하면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고 있지만 1970년대와 같은 극심한 경기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국을 덮친 물가 상승이 일시적 요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렸던 소비가 급증하면서 생긴 한시적 영향이라는 것이다. 비키 레드우드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전략가는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은 내년에 완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1970년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로 낮은 수준의 성장과 높은 물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칼럼 피커링 베렌버그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공급망 문제에 해결책을 찾지 못해 혼란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jran@hankyung.com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식품 가격 폭등과 에너지 부족 사태 등이 현실화하면서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렸던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소비 수요가 급증했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에 상품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에너지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유럽에선 천연가스값이 연일 치솟고, 중국은 석탄 부족에 몸살을 앓고 있다.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이 꿈틀대자 국제 유가도 함께 급등하고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이끈 것은 중동발 오일쇼크였다. 세계 증시가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을 떠올리는 이유다.
시마 샤 프린시펄글로벌인베스터스 수석전략가는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소비 지출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1970년대는 아니지만 현대판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이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지수는 1.59% 하락한 33,843.92로 마감했다. 지난 한 달간 나스닥지수는 5.4% 하락했다.
미국의 높은 물가가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 데다 중국 제조업 경기가 코로나19 유행 후 처음으로 위축 국면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프라 법안이 미 하원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여파는 아시아 주식시장으로 번졌다. 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62% 내린 3019.18에 장을 마쳤다. 올해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도 2.31% 하락했다.
◇獨·스페인 물가상승률 4% 넘어서…美는 5.3%로 치솟아
◇에너지값 급등·원자재 품귀…공급 부족에 경기위축 가속
1974년 1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65달러로 4개월 만에 네 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던 아랍 국가들이 석유 자원을 무기 삼아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면서다. 1차 오일쇼크다. 그해 미국 경제성장률은 0.5% 떨어져 역성장했다. 물가는 11.05% 급등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상품 가격이 올라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지만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됐다. 오일쇼크발(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은 유럽 일본 등 세계를 강타했다.
오일쇼크 악몽이 50년 만에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공급망 곳곳이 무너졌지만 소비 수요가 늘면서 물가가 빠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을 비롯해 가구 의류 등 사실상 모든 소비재 기업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인플레로 시름하는 미국·유럽
독일 연방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1% 올랐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독일 물가상승률이 4%를 넘어선 것은 199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 동독 지역 상품 가치가 오르면서 물가가 급격히 상승했다.
스페인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4%(전년 동기 대비)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도 지난달 물가가 3.2% 올랐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 추정치는 3.3%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3%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상품 가격이 급등했다. 철강부터 반도체까지 사실상 모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세계 식료품 가격은 지난해 3월 이후 40% 급등했다. 코로나19 사태에 생산이 급격히 줄었지만 소비 수요가 살아나자 가격이 급등했다. 고기, 유제품 등 모든 식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난까지 더해져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세계 각국은 생산을 확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너지 부족에 유가도 치솟고 있다. 유가가 급등하면 비용이 높아져 생산을 늘리는 게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달 28일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3년 만의 최고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석탄 부족에 시름하고 있다.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다. 일부 지역에선 공장까지 가동을 멈췄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국영 에너지기업들에 석탄과 석유 확보를 지시했다. 중국이 ‘에너지 사재기’에 나서면 가격은 더욱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가 살아난 미국과 유럽에서 극심한 인력난을 겪는 것도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다. 영국에선 트럭 운전사가 10만 명가량 부족해 유조차마저 운행이 어려운 상태다.
◇전문가들 “1970년대와는 다를 것”
경기 둔화 지표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는 109.3으로 예상치(114.8)를 밑돌았다. 중국의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예상치(50.1)보다 낮은 49.6으로 떨어졌다. PMI는 제조업 경기를 파악하는 심리지표다. 기준선인 50을 넘지 못하면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고 있지만 1970년대와 같은 극심한 경기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국을 덮친 물가 상승이 일시적 요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렸던 소비가 급증하면서 생긴 한시적 영향이라는 것이다. 비키 레드우드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전략가는 “코로나19발 인플레이션은 내년에 완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1970년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하지만 공급망 문제로 낮은 수준의 성장과 높은 물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칼럼 피커링 베렌버그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공급망 문제에 해결책을 찾지 못해 혼란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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