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의 풍력발전소 건설 채권에 투자해볼까?’
개인투자자들이 스마트폰 앱을 내려받아 다양한 해외 채권을 하루에도 수차례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전유물인 사모채권 등 금융상품을 매우 적은 비용으로 쪼개 팔 수 있는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서다.
홍콩통화청(HKMA)은 소액 투자자에게 그린본드(녹색채권)를 직접 판매하는 거래 플랫폼의 시범 서비스를 연내 선보일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발행자와 투자자를 직접 연결할 계획이다. 개인투자자가 참여하는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채권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프로젝트 제네시스’로 부르고 있다.
블록체인 본드는 실물 증서 없이 ‘디지털 토큰화(STO: security token offerings)’ 방식으로 발행한다. 여러 참여주체(node)가 채권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산 저장하는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거래소나 주관 증권사 같은 관리기관을 따로 두지 않아도 된다. 증권예탁결제기관(CSD)도 필요없다. 또 거래 당일 결제가 가능해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다. 현재 한국 채권시장의 결제일은 거래일+1일이다. 해외의 경우 길게는 거래일+3일이 걸리기도 한다.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채권을 소액으로 쪼개 팔 때 발생하는 판매 및 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모채권이나 사모펀드는 투자자 자격, 각종 규정 준수 여부를 사람이 확인해야 해 투자자 수를 제한해야 했다. 반면 블록체인 본드는 이런 작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
많은 장점에도 블록체인 본드가 아직 채권시장의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률과 기술표준 등이 시험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발행 사례는 세계은행, JP모간, 캐나다국립은행(NBC), HSBC,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최근 유럽과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다양한 시도가 성공하면서 블록체인 본드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키우고 있다. 유럽투자은행(EIB)은 지난 4월 최초로 전통적인 ‘공동주관사단(syndicate of banks)’을 활용한 블록체인 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디지털증권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프랑스 법률에 따라 공동주관사인 골드만삭스와 소시에테제네랄, 산탄데르 등이 1억유로 규모의 2년 만기 자금 조달을 지원했다.
홍콩통화청의 프로젝트 제네시스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 그린본드의 환경 개선 효과를 측정해 투자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투자한 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블록체인 본드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서다.
개인의 블록체인 본드 투자 증가는 기존의 채권 발행 방식을 빠르게 대체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채권의 유동성 개선은 기업들이 새로운 발행 방식을 선택하도록 이끌 핵심 변수다. 중소기업 채권 발행 활성화라는 한국 자본시장의 숙원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회사채 발행 시장은 95% 이상이 대기업인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소수 기관투자가만 참여하는 협소한 투자자 기반 탓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채권시장에서 멀어진 데는 높은 판매 수수료도 한몫했다.
싱가포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본드가 ‘자본시장 민주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사모펀드, 헤지펀드, 사모부채 등에 이르기까지 ‘쪼개 팔기’를 확산시키는 도로를 깔아줄 것이란 전망에서다. 저금리 시대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해 부동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많은 개인투자자에게 미래에는 훨씬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란 얘기다.
프로젝트 제네시스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계 기업인 셰어러블에셋의 이원홍 창업자는 “개인투자자가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자본시장을 디지털화하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채권은 물론 글로벌 자산시장 전체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개인투자자들이 스마트폰 앱을 내려받아 다양한 해외 채권을 하루에도 수차례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전유물인 사모채권 등 금융상품을 매우 적은 비용으로 쪼개 팔 수 있는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서다.
홍콩통화청(HKMA)은 소액 투자자에게 그린본드(녹색채권)를 직접 판매하는 거래 플랫폼의 시범 서비스를 연내 선보일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이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발행자와 투자자를 직접 연결할 계획이다. 개인투자자가 참여하는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채권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프로젝트 제네시스’로 부르고 있다.
블록체인 본드는 실물 증서 없이 ‘디지털 토큰화(STO: security token offerings)’ 방식으로 발행한다. 여러 참여주체(node)가 채권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산 저장하는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거래소나 주관 증권사 같은 관리기관을 따로 두지 않아도 된다. 증권예탁결제기관(CSD)도 필요없다. 또 거래 당일 결제가 가능해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다. 현재 한국 채권시장의 결제일은 거래일+1일이다. 해외의 경우 길게는 거래일+3일이 걸리기도 한다.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채권을 소액으로 쪼개 팔 때 발생하는 판매 및 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모채권이나 사모펀드는 투자자 자격, 각종 규정 준수 여부를 사람이 확인해야 해 투자자 수를 제한해야 했다. 반면 블록체인 본드는 이런 작업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다.
많은 장점에도 블록체인 본드가 아직 채권시장의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률과 기술표준 등이 시험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발행 사례는 세계은행, JP모간, 캐나다국립은행(NBC), HSBC,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최근 유럽과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다양한 시도가 성공하면서 블록체인 본드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키우고 있다. 유럽투자은행(EIB)은 지난 4월 최초로 전통적인 ‘공동주관사단(syndicate of banks)’을 활용한 블록체인 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디지털증권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프랑스 법률에 따라 공동주관사인 골드만삭스와 소시에테제네랄, 산탄데르 등이 1억유로 규모의 2년 만기 자금 조달을 지원했다.
홍콩통화청의 프로젝트 제네시스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 그린본드의 환경 개선 효과를 측정해 투자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투자한 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블록체인 본드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서다.
개인의 블록체인 본드 투자 증가는 기존의 채권 발행 방식을 빠르게 대체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채권의 유동성 개선은 기업들이 새로운 발행 방식을 선택하도록 이끌 핵심 변수다. 중소기업 채권 발행 활성화라는 한국 자본시장의 숙원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회사채 발행 시장은 95% 이상이 대기업인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수적인 소수 기관투자가만 참여하는 협소한 투자자 기반 탓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채권시장에서 멀어진 데는 높은 판매 수수료도 한몫했다.
싱가포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본드가 ‘자본시장 민주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던 사모펀드, 헤지펀드, 사모부채 등에 이르기까지 ‘쪼개 팔기’를 확산시키는 도로를 깔아줄 것이란 전망에서다. 저금리 시대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해 부동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많은 개인투자자에게 미래에는 훨씬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란 얘기다.
프로젝트 제네시스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계 기업인 셰어러블에셋의 이원홍 창업자는 “개인투자자가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자본시장을 디지털화하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채권은 물론 글로벌 자산시장 전체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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