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 까다로운 인증 절차 없이 대출과 예금, 보험, 지급결제 등 금융서비스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가상자산 생태계.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가 좇는 금융의 미래다.
디지털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 패러다임이 전 세계 투자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요즘. 미래 금융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화두에 오른 개념이 있다. 바로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을 뜻하는 ‘디파이’다. 디파이 통계 사이트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전 세계 디파이 시장에 예치된 자산 규모는 10월 19일 기준 963억 달러(약 114조 원)로, 1년 전인 지난해 10월에 비해 5배 가까이 급증했다. 국내 은행의 원화 저축성예금(1504조 원)과 비교하면 7.6%에 불과한 규모지만, 짧은 기간 내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새로운 대세’로 주목받는다.
○중개자 없이 대출·결제, 디파이의 가능성
기존 금융 산업에서는 소비자가 대출 상품에 가입하려면 은행 창구나 각 금융사 모바일 플랫폼을 찾아 상품 가입 의사를 표시한 뒤, 각 상품별 약정에 따라 계약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증권 거래를 하려면 증권사 계좌부터 만들고, 신용카드 결제를 하기 위해서는 카드사로부터 카드부터 발급받는 게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금융소비자는 금융기관에 이자나 수수료를 제공하고, 금융기관은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시스템 내에서 안전한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산업이 유지됐다.
이와 달리 디파이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스마트 계약)’를 통해 중개인 없이도 자유롭게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다. 전통 금융 산업에서 은행이나 증권사, 카드사, 보험사가 중개인 역할을 하며 사용자의 금융 거래를 도와줬다면, 디파이 생태계에서는 중앙화된 시스템의 개입 없이도 가상자산 거래에 접근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해줬던 중개 역할을 블록체인 알고리즘이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프로그래밍 코드가 일종의 금융 인프라를 형성해주는 셈이다.
디파이는 현재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시파이(CeFi, 중앙화 금융)와도 구분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블록체인 기반의 혁신 금융 생태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시파이는 거래 중개자나 관리 주체(사람 또는 법인)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로, 기관 중심의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 빗썸 또한 상장된 코인을 거래하는 시파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성장한 사례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처음 생겼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가상자산 거래소의 매매 중개 업무는 전통 자본시장에서의 한국거래소(KRX)와 유사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반면 탈중앙화를 표방하는 디파이는 거래소 없이도 일대일 개인 간(P2P) 금융상품 거래가 가능한 생태계를 목표로 한다. 무엇보다도 디파이 시장의 핵심은 자율성과 개방성이다. 개인의 신용이나 나이, 국적 등 어떤 자격 요건도 따지지 않는 ‘열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 금융 인프라를 누리지 못하는 금융 소외계층을 디파이 생태계가 포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이유다.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CPC기획팀 과장은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진행한 세미나에서 “오늘날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 자산이 됐고, 어떤 국가에서는 법정화폐로 지정됐다”면서 “디파이 또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2030년 정도에는 기술이 성숙해지고 무질서한 시장에도 체계가 잡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재 (디파이의) 미래를 낙관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은행 계좌가 없는 17억 명의 세계 인구가 디지털 지갑을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디파이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지금은 벤처캐피털(VC)이나 소수의 엘리트 개인투자자들이 주요 시장 참여자로 구성돼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투기성 매매가 아닌 새로운 효용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현재는 대출 분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자산 운용, 파생상품, 보험 등 다양한 분야의 금융서비스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디파이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디파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만큼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한계점도 분명 존재한다. 우선 디파이가 각국 규제당국의 화살을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은 큰 리스크 요인이다. 앞서 개리 젠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투자자 보호가 충분치 않은 상황으로, 서부시대와 비슷할 정도”라며 디파이를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 규제를 시사한 바 있다.
최근 국내 가상자산 시장도 금융당국의 거래소 구조조정에 따라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대형 4개사 체제로 재편됐다. 디파이 시장 또한 향후 규모가 커질수록 당국의 감독권 아래 놓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생태계 특성상 불법적인 자금 흐름에 이용될 우려가 있고, 투자자 보호가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혁신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디파이 시장의 큰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도 있다. 디파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거래를 안전하게 이행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생태계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취약점을 드러내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한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최근 디파이 플랫폼인 ‘콤파운드’가 서비스 업데이트 오류로 인해 이용자들에게 9010만 달러(약 1062억 원)의 암호화폐를 잘못 송금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앞서 디파이 플랫폼인 ‘폴리네트워크’는 해킹 사고로 6억1000만 달러(약 72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가 해당 해커로부터 되돌려 받았다. 디파이의 경우 프로그램 코드가 외부에 공개된 탓에 해킹 공격이 비교적 쉽다는 취약점을 지녔다.
마이클 모로 제네시스 트레이딩 최고경영자(CEO)는 “기관투자가들이 디파이에 진입하기에는 아직 리스크가 크다”면서 “디파이에서 생겨나는 스마트 컨트랙트 오류 등의 결함은 기관투자가가 감수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디지털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 패러다임이 전 세계 투자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요즘. 미래 금융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화두에 오른 개념이 있다. 바로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을 뜻하는 ‘디파이’다. 디파이 통계 사이트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전 세계 디파이 시장에 예치된 자산 규모는 10월 19일 기준 963억 달러(약 114조 원)로, 1년 전인 지난해 10월에 비해 5배 가까이 급증했다. 국내 은행의 원화 저축성예금(1504조 원)과 비교하면 7.6%에 불과한 규모지만, 짧은 기간 내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새로운 대세’로 주목받는다.
○중개자 없이 대출·결제, 디파이의 가능성
기존 금융 산업에서는 소비자가 대출 상품에 가입하려면 은행 창구나 각 금융사 모바일 플랫폼을 찾아 상품 가입 의사를 표시한 뒤, 각 상품별 약정에 따라 계약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증권 거래를 하려면 증권사 계좌부터 만들고, 신용카드 결제를 하기 위해서는 카드사로부터 카드부터 발급받는 게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금융소비자는 금융기관에 이자나 수수료를 제공하고, 금융기관은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시스템 내에서 안전한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산업이 유지됐다.
이와 달리 디파이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스마트 계약)’를 통해 중개인 없이도 자유롭게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다. 전통 금융 산업에서 은행이나 증권사, 카드사, 보험사가 중개인 역할을 하며 사용자의 금융 거래를 도와줬다면, 디파이 생태계에서는 중앙화된 시스템의 개입 없이도 가상자산 거래에 접근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해줬던 중개 역할을 블록체인 알고리즘이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프로그래밍 코드가 일종의 금융 인프라를 형성해주는 셈이다.
디파이는 현재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시파이(CeFi, 중앙화 금융)와도 구분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블록체인 기반의 혁신 금융 생태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시파이는 거래 중개자나 관리 주체(사람 또는 법인)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로, 기관 중심의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 빗썸 또한 상장된 코인을 거래하는 시파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성장한 사례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처음 생겼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가상자산 거래소의 매매 중개 업무는 전통 자본시장에서의 한국거래소(KRX)와 유사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반면 탈중앙화를 표방하는 디파이는 거래소 없이도 일대일 개인 간(P2P) 금융상품 거래가 가능한 생태계를 목표로 한다. 무엇보다도 디파이 시장의 핵심은 자율성과 개방성이다. 개인의 신용이나 나이, 국적 등 어떤 자격 요건도 따지지 않는 ‘열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 금융 인프라를 누리지 못하는 금융 소외계층을 디파이 생태계가 포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이유다.
한중섭 한화자산운용 CPC기획팀 과장은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진행한 세미나에서 “오늘날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 자산이 됐고, 어떤 국가에서는 법정화폐로 지정됐다”면서 “디파이 또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2030년 정도에는 기술이 성숙해지고 무질서한 시장에도 체계가 잡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재 (디파이의) 미래를 낙관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은행 계좌가 없는 17억 명의 세계 인구가 디지털 지갑을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디파이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한 지금은 벤처캐피털(VC)이나 소수의 엘리트 개인투자자들이 주요 시장 참여자로 구성돼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투기성 매매가 아닌 새로운 효용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현재는 대출 분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자산 운용, 파생상품, 보험 등 다양한 분야의 금융서비스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디파이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디파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만큼 아직 해결하지 못한 한계점도 분명 존재한다. 우선 디파이가 각국 규제당국의 화살을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은 큰 리스크 요인이다. 앞서 개리 젠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투자자 보호가 충분치 않은 상황으로, 서부시대와 비슷할 정도”라며 디파이를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 규제를 시사한 바 있다.
최근 국내 가상자산 시장도 금융당국의 거래소 구조조정에 따라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대형 4개사 체제로 재편됐다. 디파이 시장 또한 향후 규모가 커질수록 당국의 감독권 아래 놓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생태계 특성상 불법적인 자금 흐름에 이용될 우려가 있고, 투자자 보호가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혁신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디파이 시장의 큰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도 있다. 디파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거래를 안전하게 이행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생태계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취약점을 드러내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한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최근 디파이 플랫폼인 ‘콤파운드’가 서비스 업데이트 오류로 인해 이용자들에게 9010만 달러(약 1062억 원)의 암호화폐를 잘못 송금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앞서 디파이 플랫폼인 ‘폴리네트워크’는 해킹 사고로 6억1000만 달러(약 72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가 해당 해커로부터 되돌려 받았다. 디파이의 경우 프로그램 코드가 외부에 공개된 탓에 해킹 공격이 비교적 쉽다는 취약점을 지녔다.
마이클 모로 제네시스 트레이딩 최고경영자(CEO)는 “기관투자가들이 디파이에 진입하기에는 아직 리스크가 크다”면서 “디파이에서 생겨나는 스마트 컨트랙트 오류 등의 결함은 기관투자가가 감수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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