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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코인 붕괴' 왜 발생했나…루나 사태 A to Z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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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비트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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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조원을 호가하던 코인 가격이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전세계 가상화폐 시장도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테라·루나 얘기입니다. 차세대 코인의 선두주자로 테라 생태계는 어쩌다가 모래성처럼 산산히 무너지게 됐을까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algorithmic stable coin)’은 인간의 탐욕이 만든 허상인지, 아니면 혁신을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인지… 국내 최고의 암호학 전문가로 평가되는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가 [친절한 긱스]에서 루나 사태를 통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합니다.

루나(LUNA)와 테라(UST)는 올해 5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시가총액 기준으로 전 세계 가상자산 중 8위까지 올랐었다. 그러나 국내거래소에서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던 인기 암호화폐 루나는 단 6일 만에 그 가치가 1원 미만의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면서, 테라는 고점 대비 57%가 루나는 고점 대비 무려 99%가 폭락했다. 불과 5개월 사이 약 50조원 넘게 사라진 것이다.

더욱이 그 파장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에까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시가총액 규모로 스테이블 코인에선 1위, 암호화폐 시장 전체에서는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에 이어 3위였던 암호화폐 테더(USDT)는 이번 루나/테라 사태의 영향으로 1주일 새 약 100억달러(12조 6400억원)가 인출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는 이번 사건을 두고 ‘암호화폐 세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빗댔으며, IMF 총재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사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algorithmic stable coin)’으로 불리는 루나·테라는 도대체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작동하길래 이런 '역대급' 폭락장을 연출했을까. 무엇이 이런 참혹한 사태를 불러왔는가. 이를 과연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암호화폐란 무엇인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물건을 사고 대금을 지불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신용카드로 계산하거나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신용카드나 계좌이체 외에는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며, 이럴 경우 내가 어디서 얼마를 썼는지 일거수일투족이 추적될 수 있다. 이것이 일종의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여긴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 박사는 1982년 “추적 불가능한 결제를 위한 은닉 서명 (Blind Signatures for Untraceable Payments)”이란 논문을 통해 인터넷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익명성(anonymity)’이 보장되는 전자화폐(electronic cash)를 세계 최초로 제안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자화폐를 만든 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종종 오만원권 지폐를 컬러복사기로 복사해 위폐를 만들어 쓰다가 잡힌 사람들 기사를 볼 수 있다. 전자화폐는 0과 1의 디지털 정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오만원권보다 복제가 훨씬 더 쉽다. 게다가 디지털의 특성상 원본과 복사본이 똑같기에 위폐를 잡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움 박사는 신용카드 결제의 경우와 같이 은행이 위폐를 단속하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이를 ‘중앙집중형 전자화폐’ 혹은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라고 한다.

이로부터 26년 후인 2008년, 미국의 투자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부터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는 은행이란 존재를 배제한 상태에서도 동작이 가능한 전자화폐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비트코인’이다. 또한 은행을 대신해 위폐를 감별해주는 기술적 수단, 그것이 바로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이렇게 은행을 배제하고 블록체인을 사용해 만든 전자화폐를 ‘탈중앙형 전자화폐’ 또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상화폐와 암호화폐를 그냥 통틀어 가상화폐로 부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국 중앙은행이 직접 전자화폐를 발행하기도 하는데 이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라고 한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2월4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베이징 국가체육장(버드 네스트 스타디움)의 상점들에서 비자(Visa) 카드를 통한 결제보다 훨씬 더 많은 거래가 중국 인민 은행(PBOC)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e-CNY)로 이뤄졌다고 한다. 디지털 위안화는 법정 화폐와 똑같은 효력을 갖는 중국의 전자화폐로 알리페이(Alipay)나 위챗(WeChat) 등을 통해 사용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 인민 은행은 e-CNY의 익명성을 ‘제어할 수 있는 익명성(controllable anonymity)’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어할 수 있는 익명성이란 평상시에는 이용자에게 자신의 신원을 숨길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지만, 유사시에는 법 집행 기관이 불법 거래를 추적할 수 있게끔 한 것을 말한다.

혹자는 CBDC가 널리 보급될수록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이 만든 암호화폐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며 필연적으로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디지털 위안화의 경우 온전한 익명성이 아닌 제어 가능한 익명성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CBDC의 경우에도 거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시민들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더 중요시해 비트코인을 선택할지, 아니면 안정성을 위해 CBDC를 선택할지 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

2010년 5월22일 미국의 프로그래머인 라스즐로 하녜크즈(Laszlo Hanyecz)는 1만개의 비트코인으로 피자 2판을 구매했다. 이는 암호화폐를 활용해 최초로 실물 거래를 한 것으로, 이후 사람들은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매년 5월22일을 ‘비트코인 피자데이’라고 부르며 기념하고 있다.

당시 피자 두 판의 가격이 30달러였으니 비트코인 1개당 0.3센트(0.003달러, 약 3.82원) 정도 했던 셈이다. 한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5월22일 현재 1비트코인의 가격은 약 29,442달러로 12년 새 가격이 9,814,000배 뛰었다. 이러한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비트코인을 화폐로 사용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것이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정부가 화폐를 제조하는 데 화폐의 가치에 해당하는 일정량의 금을 담보로 비축해 두는 금본위제도와 같이, 자신을 더 안정적인 다른 자산에 연동(일명, ‘페깅(pegging)’)시킴으로써 가치를 유지하려는 암호화폐를 일컫는다. 이때 고정할 담보 자산으로는 기존의 법정 통화, 정부 채권, 비트코인 같은 또 다른 암호화폐 들을 활용할 수 있는데, 현재 대다수의 스테이블 코인들은 미국 달러에 고정돼 있다.

2019년 6월, 전 세계 20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던 페이스북(Facebook)은 암호화폐 ‘리브라(Libra)’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해 큰 파문을 불러왔다. 당연히 각국 정부들은 기존의 통화 질서가 약화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페이스북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2020년 4월 결국 페이스북은 당초 계획을 수정하고 이름도 ‘디엠(Diem)’으로 변경한다. 이러한 디엠은 ‘디엠 달러(Diem USD)’, ‘디엠 유로(Diem Euro)’, ‘디엠 엔(Diem JPY)’, ‘디엠 원(Diem KRW)’ 등과 같이 각국의 개별 법정 통화에 가격을 연동시킴으로써 가격 변동성을 낮춘 ‘스테이블 코인’의 일종이다. 디엠 외에도 현재 테더(USDT), 메이커다오의 다이(MakerDAO’s DAI) 등 다양한 스테이블 코인들이 존재한다.

◇알고리즘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 루나(LUNA)와 테라(UST)

테라폼랩스(권도형, 신현성 설립)에서 개발한 루나(LUNA)와 테라(UST)는 기존의 법정 통화나 채권, 금 등을 담보로 활용한 전통적인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이 아닌, 별도의 담보물 없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공급과 수요를 조절해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소위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algorithmic stable coin)’이다.

일반적인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구조는 ‘투 코인(two-coin)’ 시스템으로, 한 코인은 페그(peg)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며 또 다른 코인은 시장 변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사용된다. 후자를 보통 ‘주식’ 또는 ‘균형자(balancer)’ 토큰이라고 부르며, 종종 유니스와프(Uniswap)와 같은 2차 DeFi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루나/테라의 경우, 1테라는 1달러의 가치를 갖는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1테라의 가치를 1달러에 고정하기 위해 실물 담보를 활용하는 것이 정상적이겠으나, 테라는 별도의 담보물 없이 사람들에게 자매 코인인 루나를 통해 ‘차익 거래’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테라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게 한다. 즉, 테라를 스테이블 코인화하기 위한 일종의 변동성 흡수 메커니즘으로 루나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루나는 시장가격에 상관없이 항상 테라를 1달러로 간주해 매입‧매각 될 수 있으며, 루나를 테라로 바꿀 때 시스템은 루나를 소각하는 대신 테라를 신규로 발행해주고 반대로 테라를 루나로 바꿀 때도 시스템은 테라를 소각하고 루나를 새로 발행해 줌으로써 유통량을 조절한다.

예를 들어 테라의 수요가 적어 시장 가격이 0.9달러로 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0.9달러로 1테라를 산후, 이를 다시 1달러어치의 루나와 바꿔 0.1달러만큼 차익 실현을 하려 할 것이다. 이때 시스템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루나를 새로 생성해 발급해주는 대신 교환에 사용된 테라는 즉시 소각한다. 이렇게 늘어난 루나의 양만큼 소각된 테라로 인해 시장에서의 테라 유통량은 줄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공급 감소가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0.9달러였던 테라의 가격을 다시 1달러로 끌어 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이번에는 반대로 테라의 수요가 많아 가격이 1.1달러로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번에는 1달러어치의 루나를 산 후, 이를 다시 1.1달러의 테라와 바꿔 0.1달러만큼 차익 매매를 하려 할 것이다. 이때 앞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이 생성된 테라와 교환된 루나는 소각된다. 이렇게 태워진 루나의 양만큼 공급이 늘게 된 테라는 시장의 가격을 다시 떨어뜨리게 된다.위의 알고리즘은 얼핏 보기에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것 같지만,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 안정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즉 테라의 대량 투매가 일어나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테라를 사들여 이를 루나로 바꾸는 수요가 발생해야 한다. 이럴 경우 루나가 대량으로 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루나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그 반등으로 테라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런데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동시에 떨어질 경우, 시장에서는 루나를 적극적으로 매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테라의 가치는 반등하지 않는다. 그러면 테라와 연동된 루나의 가치가 예상보다 더 떨어지게 되고, 이는 곧 루나의 투매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연쇄적으로 테라를 보유한 다른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선까지도 무너뜨려 다시 테라의 투매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알고리즘적으로 더 많은 물량의 루나가 다시 또 시장에 투입되기에 루나의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되고, 결국 루나의 가치는 0에 수렴하게 된다. 이를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라고 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테라와 루나 양쪽 모두를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루나·테라 개발진들은 테라를 예치(staking)할 경우 20%의 이자를 테라로 지급하는 앵커프로토콜(anchor protocol)을 만들어 테라에 대한 수요를 유지시켜 왔다. 실제로 사고 당시 테라 공급량의 70% 이상이 이 앵커프로토콜에 예치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앵커 프로토콜의 20% 이자가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 왔다.

◇루나/테라 폭락 사태의 전말

테라와 루나는 한때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 기준 시가총액 10위 안에 위치할 정도로 성장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가상자산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 위축으로 암호화폐들의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고, 원인 모를 루나, 테라의 대량 매도까지 갑작스럽게 발생하면서 5월9일 테라의 가치는 0.985달러까지 하락하며 1달러 페그가 붕괴한다.

5월10일 테라의 가격이 회복되지 않고 디페깅이 지속되면서, 테라의 가치는 15% 하락한 약 0.8달러를 기록한다. 루나 또한 53% 하락하며 29달러를 기록한다. 테라와 루나의 공동 하락으로 시세 방어가 점점 더 불가능해져 간 것이다.

5월11일, 지속된 디페깅으로 투자자 불안이 가중되며 뱅크런이 가속화됐다. 이에 루나는 92% 하락한 2.5달러. 테라는 0.4달러로 시세가 급락한다. 같은 날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장관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법안 마련을 촉구했다.

5월12일, 루나와 테라의 시세가 99.99%까지 폭락한다. 게다가 루나/테라의 가격 방어를 위해 테라폼랩스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비트코인을 매도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비트코인이 3만 달러 선이 붕괴한다. 실제로 권도형 대표(CEO)가 만든 LFG(Luna Foundation Guard)는 얼마 전 재단이 가진 자산 내용을 공개했는데,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이 313개밖에 안 남았었다. 지난 5월7일만 하더라도 8만394개를 갖고 있었으니 불과 열흘 만에 현재 시세로 약 3조원어치의 비트코인이 사라진 것이다. 재단은 비트코인을 판 돈을 테라의 가격 방어에 썼다고 밝혔다.

5월13일,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가 루나 거래를 중단한다고 밝히고, 14일 권 대표가 “내 발명품이 모두에게 고통을 줘 비통하다”며 사과하면서 루나/테라의 신화는 막을 내린다. 금융 당국은 루나를 보유한 국내 투자자 수를 28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우려되는 것은 루나가 이렇게 폭락한 와중에도 단기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루나가 폭락한 다음 날에도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Upbit)에서 루나는 1,633억건이나 거래됐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루나/테라 사태의 원인 ① : 구조적 결함

2021년 11월 라이언 클레멘츠(Ryan Clements)는 “실패하기 위해 만들어진: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본질적인 취약성(Built to Fail: The Inheretent Fragility of Algorithmic Stablecoins)”이라는 논문을 통해 테라와 같은 비담보 스테이블 코인은 ‘미래 시장 가치에 대한 기대’와 같은 무형의 담보를 바탕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전혀 안정적이지 않으며, 부러지기 쉬운 영구적인 취약성이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 규모는 2021년 1,190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급증했고,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또한 이 시장에서 상당 부분 성장세를 보인다”며, 그러나 “역사적 사례들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본질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본질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꼽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들은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가상자산 생태계가 잘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그에 대한 수요로 동작하는데, 만일 이 믿음과 수요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생태계 내의 모든 시스템은 급작스럽게 붕괴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금융 상품에 대한 이러한 기본 또는 최저 수준의 기대감이라는 것이 영구히 보장될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둘째,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소위 안정적인 가상자산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차익 거래를 실행하려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역사는 아무런 법적 의무도 없이 자유재량에 따라 움직이는 자발적 차익 거래자들만으로 시장 가격을 안정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가득하다.

끝으로, 변동성과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는 모든 정보가 불투명해지고,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쉬우며, 가격과 상대방이 불확실해지면서 결국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토큰 경제학(token economics)과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신뢰가 약화한다. 이렇게 인센티브 구조의 기초가 되는 전제조건들이 현실에서 벗어날 때 투매가 일어나게 되고, 첫 투매가 발생하면 투매가 투매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급속도로 불안정화돼 결국 실패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 이미 “루나/테라 생태계가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테라 스테이블 코인과 거버넌스 토큰인 루나에 기준선 이상의 수요가 영구적으로 있어야 한다. 즉, 두 토큰 간 충분한 차익 거래 활동은 물론 루나/테라 생태계의 충분한 거래 수수료와 네트워크의 채굴 수요가 있어야만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루나/테라 사태의 원인 ② : 업계 전반의 자정 기능 부재

2015년 세계적인 차량공유 업체 우버의 국내 철수를 시작으로, 2017년 암호화폐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 금지, 그리고 타다 금지법 발의에 이르기까지 기존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관련 업계 및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들만 최소화해 금지하고 가능하면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자율규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왔었다.

과거 우리 정부의 정책들은 허가된 것만 가능하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이었다. 이는 특정 위험에 대한 안전 대책들을 정부가 직접 규율하는 방식으로서, 예를 들면 “주민등록번호 및 계좌정보 등 금융정보를 암호화해서 저장할 것”, “이용자 PC에서의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접속할 때 우선적으로 이용자 PC에 개인용 침입 차단 시스템, 키보드해킹 방지 프로그램 등의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할 것” 등과 같이 관련 법, 시행령, 또는 지침에 업체가 취해야 할 조치들을 일일이 정부가 명시해 주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정부 주도 방식은 해당 서비스의 빠른 확산에 기여한 측면이 크지만 플랫폼 종속성 야기, 기업이 법에서 하라는 것만 하는 수동적 문화 조장 및 이로 인한 업체의 경쟁력 저하 등의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해킹과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기업에 “우리는 법에서 하라는 것은 다 했으니 사고는 불가항력이었다”고 항변할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이용자의 피해보상을 어렵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정부가 앞으로 나올 신산업들을 모두 예측해서 관련 법 제도를 선제적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해당 사업의 수행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는 업체에 광범위한 자율을 보장하는 대신 업체가 스스로 자신이 처한 위험을 분석하고 그와 관련해 적절한 소비자 보호 대책을 알아서 세우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경우, 만일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업체의 대책이 정말로 충분했는지 여부를 놓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는데, 이 경우 미국 등의 법원은 대체로 기업의 책임을 보다 더 엄하게 묻는 편이다. 이는 한국과 달리 배심원들이 재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술이나 정보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는 기업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힘없는 소비자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들 나라의 경우 ‘고의성’이 없는 한 기업보다는 개인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 사실에 대한 과실 증명을 개인에게 요구하는 경우 또한 없다.

필자도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및 가상자산 관련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인 규제 샌드박스(유예제도) 도입과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네거티브 규제가 단순히 업체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진정한 네거티브 규제란 업체에 광범위한 자율을 보장하는 대신, 업계는 스스로 엄격한 자율 규제 방안을 마련해 서로를 견제하고, 정부는 소비자 보호 대책이 충분치 않아 이용자에게 손해를 끼친 기업에 대해서는 문을 닫을 정도로 천문학적 규모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업체가 나태해지는 것을 단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루나/테라 사태 이후, 그동안 줄기차게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부르짖어 왔던 가상자산 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정부의 선제적 대책 마련 즉, 포지티브 규제를 다시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정부는 굉장히 강력한 규제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관련 업계에서는 또다시 정부가 신산업을 고사시키려 한다며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주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그간 우리 가상자산 거래소 및 관련 기업들을 보면 책임에 대한 얘기는 없이 자율만을 주장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사업은 자유롭게 하게 해주되 책임은 정부가 져주세요”라던가 혹은 “정부가 기준을 만들어 주되 그 기준이 너무 강하면 저희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는 식의 선택적 수용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고등학생들의 자율학습, 프로야구 선수들의 자율 훈련, 육군사관학교의 무감독 자율시험들 모두 강한 책임 의식과 올바른 방법론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처럼, 네거티브 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업체의 자발적이고도 강력한 책임 의식과 자정 기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피해자의 눈물은 외면한 채 산업진흥, 일자리 창출 등의 허울 좋은 구호만을 맹목적으로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하겠다.

◇루나/테라 사태의 원인 ③ : 투자자의 눈을 가린 무분별한 언론과 최고경영자의 오만

“시총 100조원을 돌파한 코인, 알고 보니 한국산”, “한국인이 만든 루나 코인으로 인생이 바뀐 전 세계 루나 백만장자들”, “천재들이 선도하는 한국 블록체인, 발목 잡는 정부”,...

작년 말과 올해 초 국내 주요 언론들이 쏟아 낸 기사들이다. 루나/테라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기사들도 일부 있긴 하나, 상당수 언론은 권도형 대표를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비교하는 등 한국인이 만든 국산 코인임을 강조하며 긍정적인 면만 부각했을 뿐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 언론에서는 권 대표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정확히는 각각 3개월 동안 인턴으로 근무했었다.


정부가 일일이 기준을 제시해 주지 않는 네거티브 규제에 있어서 시장이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언론이 각종 정보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시민들의 눈높이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위험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각종 미사여구로 대중의 투자심리를 부추기기만 하는 홍보형 기사들을 남발한 언론은 이번 사태의 공범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데는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의 오만과 독선도 한몫했다. 권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투자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테라의 팬덤을 구축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권 대표는 평소 SNS 통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쳐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이나 경쟁자들을 공개적으로 비방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7월 영국의 경제학자 프랜시스 코폴라(Francis Coppola)가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운영방식이 불안정하다고 지적하자, 권 대표는 “난 가난한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I don’t debate the poor on Twitter, and sorry I don’t have any change on me for her at the moment.)"고 답하기도 했다.
루나/테라 사태의 원인 ④ : 손 놓고 있었던 정부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은 국가의 시장관리 방식을 전환하자는 것이지 시장관리를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부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대안 조치를 사전에 마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소송제도 및 관련 손해배상제도를 정비하고, 자율규제(self-regulation) 준수를 위한 유인책과 감시책을 마련해야 하며, 발생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한 보험 또는 보상시스템 도입 방안을 선제적으로 수립해 둬야 한다. 또한 관련 정보를 일반에 공개해 일반 국민이나 시민단체가 감시하도록 한다거나 정부의 활동이나 정책을 사전 예고하여 위험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하나 위에서 언급한 내용 중 그간 우리 정부가 준비해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활성화할지 전면 금지할지 결론도 못 내린 상태에서 여론의 눈치만 보며 시간만 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우리 정부가 반성할 대목이다.

맺으며

이번 루나-테라 폭락 사태는 개발진의 오만, 언론의 부추김, 투자자의 탐욕, 그리고 관련 업계의 자정 능력 부족 및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인재(人災)이며, 충분히 다시 또 반복될 수 있다.

루나/테라 사태 이후 시장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근시안적인 단기 처방 마련에 급급해서는 곤란하다.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00개의 가상자산 유니콘 기업을 키우겠다는 허울 좋은 구호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과실은 다음 정부가 따간다고 하더라도 내 임기 안에 온전한 네거티브 제도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힘쓰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가상자산 시장의 키를 쥐고 있는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들 및 블록체인 전문 투자기업, 그리고 각종 협회는 단기적인 이익에만 급급해한다거나 무조건 관련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려고만 들지 말고, 보다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자정 기능 마련을 위해 애써야 하겠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 상장 폐지된 암호화폐는 541종, 투자자 피해액은 1조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도대체 상장의 기준은 무엇이며 폐지의 기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끝으로, ‘다수결의 오류’란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한다고 해서 그 생각이 꼭 옳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탈중앙화를 외치는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블록체인상의 구성원들은 내게 이익이 되느냐, 즉 내가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다수결의 오류에 빠지기가 더 쉽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이나 블록체인 노드 검증자들은 내가 일확천금의 유혹 혹은 스타 개발자의 팬덤에 빠져 이러한 다수결의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 권도형 대표는 제2의 테라 생태계를 만들어 루나-테라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작정하고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사업가를 마녀사냥 하듯 몰아 재기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재기의 기회란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 기업가에게 돌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디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 가상자산 산업의 밝은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되어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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