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문턱 낮아지자 도박성 투자자들 채무탕감 노려
재작년부터 코인 주식 빚 회생신청 문의 급증
스타트업 대표 A씨는 2020년 여름 재테크에 눈을 떴다. 소액 주식 투자로 시작했던 A씨는 몇 달 뒤 큰 수익을 내고 싶은 마음에 소위 ‘급등주’ 매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사업자대출까지 추가로 받아 투자에 전념했지만 주가가 폭락해 원금의 약 절반이 마이너스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에 차질이 생겨 대표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나왔다. 다급한 마음에 단기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다가 1억원이 넘는 채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개인 회생을 신청했다.
거액의 코인‧주식 투자 손실로 개인 회생 절차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채무자가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시대 변화에 따라 코인‧주식 채무자도 회생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낮아진 문턱…“코인‧주식 채무자도 회생”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시대 때 주가 호황을 틈타 무리한 코인‧주식 투자를 했다 파산지경에 이른 채무자들이 급증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도산변호사회 부회장인 박시형 법무법인 선경 대표변호사는 “재작년부터 코인이나 주식 빚으로 회생을 문의하러 온 사람들이 심할 때는 상담 건수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대폭 늘었다”며 “적게는 천만원 단위에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채무를 지고 있는 채무자가 많다”고 말했다. 네이버 카페 ‘신용회복위원회 공식’에 ‘주식’ ‘비트코인’으로 검색한 회생 관련 문의 게시글은 2020년 이후 138건으로 2017~2019년 19건에 비해 7배 이상 늘었다. 카페 ‘개인회생‧개인파산 더로우미’에 등록된 게시물도 2020년 이후 182건으로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나는 등 온라인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상담 문의가 늘어난 것은 코인‧주식 투자 빚을 채무자 개인 책임으로 보고 탕감해주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투자자들에 대한 면책 결정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회생파산 전문 김봉규 문앤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직한 사람들이 퇴직금으로 무리한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잃는 사례가 늘어나 재판부도 상당히 관대해졌다”며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등에서 상담을 받고 교육확인서를 제출하거나 채무자의 빚과 소득을 바탕으로 변제율을 조정한 변제계획안을 제출하면 회생 인가 결정을 잘 내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투자자 가운데 비중이 높은 만 30세 이하 청년들의 변제 기간을 줄인 영향도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해 8월 청년 등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 속하는 채무자는 원금을 전부 갚지 못하더라도 변제 기간을 기존 3년~5년에서 3년 미만으로 설정하는 내용의 실무준칙을 제정했다. 김봉규 변호사는 “청년층이 안정성 낮은 코인과 주식 투자에 빠져 돈을 날리는 사례가 너무 많아져 재판부 태도도 바뀐 것”이라며 “아르바이트 등 지속적인 수입원을 증명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할 수 있으면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도덕적 해이 우려” vs “채무자 구제 우선”
회생 허들이 낮아지면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니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무리하게 대출을 써서 선물옵션이나 비트코인에 투자해 빚이 쌓이면 개인 회생으로 만회하면 그만” “20대 초중반 때 가진 것 하나 없이 도박 한 번 하고 인생 새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등의 글이 쏟아진다.
절박하지 않은 코인‧주식 투자실패 채무자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회생으로 빚을 탕감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시형 변호사는 “개인 회생은 빚을 없애주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한 사람을 살리는 제도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회생하면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며 “채권자들의 원성이 커지거나 악성 채무자에 대한 봐주기식 탕감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생기면 제도가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조정돼 정작 필요한 사람은 도움받지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 회생에서는 채무자가 제출한 변제계획안에 대해 은행 등 채권자의 동의가 불필요한 탓에 금융회사들은 일방적으로 손실을 떠안는다. 채권자들이 일정 비율 이상 동의해야 통과되는 법인 회생의 변제계획안과 달리 개인 회생에서는 법원이 채무자의 변제계획안을 검토한 뒤 확정한다.
반면 채무자가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경제 활동이 가능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는 것이 사회에 이롭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열풍이 분 코인‧주식으로 빚을 졌다고 해서 법원이 회생해주지 않는 것은 ‘채무자 구제와 배려’가 핵심 가치인 회생법원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봉규 변호사는 “채무자 중에는 앞으로 수십 년 일할 수 있는 20‧30세대 투자자도 많다”며 “극단적인 투자 중독이 아닌 한, 이들의 회생을 불허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말했다.
법원은 기존에 코인‧주식 빚을 청산가치(채무자의 총재산을 금전 가치로 환산한 가치)에서 일부 제외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빚이 청산가치에 포함되면 채무가 아닌 재산으로 간주돼 향후 이를 모두 갚아야할 뿐 아니라 회생 인가도 어렵게 된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최근 법원에서는 코인·주식 채무자를 구제해 경제 활동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게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해당 채무가 전면 청산가치에 포함되지는 않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도 만들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재작년부터 코인 주식 빚 회생신청 문의 급증
스타트업 대표 A씨는 2020년 여름 재테크에 눈을 떴다. 소액 주식 투자로 시작했던 A씨는 몇 달 뒤 큰 수익을 내고 싶은 마음에 소위 ‘급등주’ 매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사업자대출까지 추가로 받아 투자에 전념했지만 주가가 폭락해 원금의 약 절반이 마이너스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사업에 차질이 생겨 대표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나왔다. 다급한 마음에 단기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다가 1억원이 넘는 채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개인 회생을 신청했다.
거액의 코인‧주식 투자 손실로 개인 회생 절차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채무자가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시대 변화에 따라 코인‧주식 채무자도 회생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낮아진 문턱…“코인‧주식 채무자도 회생”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시대 때 주가 호황을 틈타 무리한 코인‧주식 투자를 했다 파산지경에 이른 채무자들이 급증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도산변호사회 부회장인 박시형 법무법인 선경 대표변호사는 “재작년부터 코인이나 주식 빚으로 회생을 문의하러 온 사람들이 심할 때는 상담 건수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대폭 늘었다”며 “적게는 천만원 단위에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채무를 지고 있는 채무자가 많다”고 말했다. 네이버 카페 ‘신용회복위원회 공식’에 ‘주식’ ‘비트코인’으로 검색한 회생 관련 문의 게시글은 2020년 이후 138건으로 2017~2019년 19건에 비해 7배 이상 늘었다. 카페 ‘개인회생‧개인파산 더로우미’에 등록된 게시물도 2020년 이후 182건으로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나는 등 온라인 문의도 급증하고 있다.
상담 문의가 늘어난 것은 코인‧주식 투자 빚을 채무자 개인 책임으로 보고 탕감해주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투자자들에 대한 면책 결정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회생파산 전문 김봉규 문앤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직한 사람들이 퇴직금으로 무리한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잃는 사례가 늘어나 재판부도 상당히 관대해졌다”며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등에서 상담을 받고 교육확인서를 제출하거나 채무자의 빚과 소득을 바탕으로 변제율을 조정한 변제계획안을 제출하면 회생 인가 결정을 잘 내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투자자 가운데 비중이 높은 만 30세 이하 청년들의 변제 기간을 줄인 영향도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해 8월 청년 등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계층에 속하는 채무자는 원금을 전부 갚지 못하더라도 변제 기간을 기존 3년~5년에서 3년 미만으로 설정하는 내용의 실무준칙을 제정했다. 김봉규 변호사는 “청년층이 안정성 낮은 코인과 주식 투자에 빠져 돈을 날리는 사례가 너무 많아져 재판부 태도도 바뀐 것”이라며 “아르바이트 등 지속적인 수입원을 증명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할 수 있으면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도덕적 해이 우려” vs “채무자 구제 우선”
회생 허들이 낮아지면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니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무리하게 대출을 써서 선물옵션이나 비트코인에 투자해 빚이 쌓이면 개인 회생으로 만회하면 그만” “20대 초중반 때 가진 것 하나 없이 도박 한 번 하고 인생 새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는 등의 글이 쏟아진다.
절박하지 않은 코인‧주식 투자실패 채무자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회생으로 빚을 탕감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박시형 변호사는 “개인 회생은 빚을 없애주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한 사람을 살리는 제도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회생하면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며 “채권자들의 원성이 커지거나 악성 채무자에 대한 봐주기식 탕감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생기면 제도가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조정돼 정작 필요한 사람은 도움받지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 회생에서는 채무자가 제출한 변제계획안에 대해 은행 등 채권자의 동의가 불필요한 탓에 금융회사들은 일방적으로 손실을 떠안는다. 채권자들이 일정 비율 이상 동의해야 통과되는 법인 회생의 변제계획안과 달리 개인 회생에서는 법원이 채무자의 변제계획안을 검토한 뒤 확정한다.
반면 채무자가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경제 활동이 가능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는 것이 사회에 이롭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열풍이 분 코인‧주식으로 빚을 졌다고 해서 법원이 회생해주지 않는 것은 ‘채무자 구제와 배려’가 핵심 가치인 회생법원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봉규 변호사는 “채무자 중에는 앞으로 수십 년 일할 수 있는 20‧30세대 투자자도 많다”며 “극단적인 투자 중독이 아닌 한, 이들의 회생을 불허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말했다.
법원은 기존에 코인‧주식 빚을 청산가치(채무자의 총재산을 금전 가치로 환산한 가치)에서 일부 제외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빚이 청산가치에 포함되면 채무가 아닌 재산으로 간주돼 향후 이를 모두 갚아야할 뿐 아니라 회생 인가도 어렵게 된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최근 법원에서는 코인·주식 채무자를 구제해 경제 활동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게 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해당 채무가 전면 청산가치에 포함되지는 않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도 만들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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