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유럽 시장에서 채권 금리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등 경제 지표가 엉망으로 나온 탓입니다.
독일의 7월 생산자물가(PPI)는 7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2% 급등했습니다. 전월 대비로도 무려 5.3% 올라서 두 수치 모두 1949년 조사 시작 이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탓입니다. 에너지 가격은 1년 만에 105% 올랐습니다. 독일 재무부는 "러시아의 현저히 적은 가스 공급, 지속해서 높은 에너지 및 기타 상품 가격, 중국의 코로나 제로 정책과 관련된 예상보다 긴 공급망 혼란 등은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CPI)가 40년 만의 처음으로 두 자릿수 증가한 데 이은 것입니다. GfK가 조사한 영국의 8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44까지 떨어져 1974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인플레이션이 13%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7월 영국 소매 판매는 예상을 깨고 0.3% 증가했습니다. 3개월 만의 증가입니다. 그러나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류부터 가정용품까지 거의 모든 소비가 감소했지만, 온라인 할인 판매가 대폭 늘어나 이를 상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정적 여유가 없어진 사람들이 값이 싼 온라인 상품만 잔뜩 사들인 것입니다. 휘발유 가격 하락도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게다가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이날 또 다른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것도 러시아 가스프롬이 가스 공급 중단 소식을 발표하기 전입니다. 가스프롬은 가스 터빈의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며 오는 31일부터 다시 사흘간 가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 10일간의 정기 점검에 이은 것으로, 러시아의 공급 재개 여부에 대한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치솟는 인플레이션 위험에 유럽의 채권 금리가 오르면서 미국 금리에도 상승 압력을 가했습니다. 새벽부터 상승하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아침 한때 2.996%까지 치솟아 다시 한번 3%대를 위협했습니다. 오후 3시 26분께 10년물 수익률은 전날보다 10bp 오른 2.879%에 거래됐고, 2년물은 3.5bp 상승한 3.216%를 기록했습니다.
네드데이비스 리서치는 "6월 중순부터 나스닥과 기술주가 랠리를 벌인 주요 동인 중 하나가 채권 금리 하락이었다. 10년물 금리는 6월 14일부터 8월 1일까지 89bp 하락했다. 하지만 8월은 얘기가 달라졌다. 8월 1일 이후 10년물 수익률은 약 35bp 상승했고 나스닥의 상승세는 8월 15일 이후 정체됐다. 일부는 대규모 상승 후 평균회귀(mean reversion) 탓일 것이다. 10년물 금리가 3%를 넘어선다면 시장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채권 금리가 치솟자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오전 9시 30분 0.3~0.9%의 내림세로 출발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하락 폭은 계속 커졌고 그럴듯한 반등도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다우는 0.86%, S&P500 지수는 1.29% 내렸고 나스닥은 2.01%나 떨어졌습니다. 한 주 동안 나스닥은 2.62% 내리는 등 주요 지수는 3주 만에 모두 내림세를 보였습니다.
주식과 채권 가격 하락에는 유럽발 소식만 영향을 준 건 아닙니다. 다음 주 25~26일 열리는 잭슨홀 회의에서 미 중앙은행(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매파적 어조로 발언할 것이란 관측도 시장에 퍼졌습니다.
전날 발언했던 네 명의 Fed 스피커들은 금리 인상 폭에서는 약간 이견을 보였습니다. 제임스 불러드 총재(세인트루이스)는 9월에도 75bp 인상을 주장했고, 닐 캐시캐리 총재(미니애폴리스)도 경기 침체를 촉발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매우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을 낮춰야 한다며 올해 말까지 3.9%, 2023년 말까지 4.4%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에스더 조지 총재(캔자스시티)는 "우리는 많은 일을 해왔고, 금리 인상이 종종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매우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메리 데일리 총재(샌프란시스코)도 비슷했습니다.
이와 관련, 월가 관계자는 "75bp 인상에 대해선 이견을 보였지만, 모두가 기준금리를 지속해서 올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금리 인하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올해 말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내년 5월께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시장과는 다른 시각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데일리 총재가 이를 가장 잘 설명했죠. "우리가 올해 금리를 매우 빠르게 올린 다음 내년에는 공격적으로 인하해서 큰 낙타 등 모양의 경로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전혀 내 머릿속에 없다"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날 아침 발언에 나선 토마스 바킨 총재(리치먼드)가 이런 시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바킨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침체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이날 시카코상품거래소(CME)에 반영된 시장의 예상을 보면 9월 50bp, 11월 50bp, 12월 25bp를 올린 뒤 내년 7월 이후까지 계속 유지할 확률이 가장 높아졌습니다. 또 다른 월가 관계자는 "Fed가 침체가 와도 금리를 인하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동안 장기 금리는 가까운 시일 내에 Fed 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게 과도하다는 인식에 다시 올라가는 듯하다. 특히 잭슨홀 회의를 앞두고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키는 파월 의장이 쥐고 있습니다. 사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잭슨홀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랬던 파월 의장이 1년 만에 잭슨홀 회의에서 충격요법을 쓸까요? 바클레이스는 "채권 금리, 미국 달러 강세와 함께 상승하는 주가지수는 약간 혼란스럽다"라며 잭슨홀 회의에서의 파월의 연설은 자산 시장 역학의 재정렬을 촉발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바클레이스는 "상당히 낙관적으로 돌아선 주식 포지셔닝과 기술적 지표들은 현실 확인(reality check)에 직면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CMC마켓의 마이클 휴슨 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이 2%를 훨씬 넘게 유지되고 있는데 Fed가 비둘기파적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리라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시장 그런 시나리오를 심지어 가격에 책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잭슨홀 회의는 파월에게 그 오해를 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에버코어ISI는 "시장이 매파적 메시지를 덜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파월 의장이 시장 생각을 반박하는 데 실패할 경우 시장은 더 큰 폭으로 상승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날은 전반적으로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중국, 유럽에서 계속 좋지 않은 소식이 나오면서 달러는 다시 강세를 되찾았습니다. 파월이 매파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달러에 힘을 실었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이날 0.6% 올라 다시 108선까지 상승했습니다. 이번 주 2020년 4월 이후 최대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포진한 미국 증시에는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기업 이익 감소 요인이니까요.
또 그동안 시장에 상승 동력을 제공했던 숏커버링(공매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끝나고 공매도가 다시 시작됐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프라임브로커리지 데스크에 따르면 (골드만 고객 기준) 지난 4주간 끊임없는 숏커버링이 있었는데, 어제 3주 만에 가장 큰 순매도가 기록됐습니다. 공매도가 매수를 3:1 비율로 앞지른 것입니다. 골드만삭스는 "하루가 추세를 만들지는 않지만, 어제의 매매는 4주 연속으로 위험을 완화한 후 헤지 펀드가 좀 더 공격적인 행동(공매도)을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업종 별로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IT, 산업 등에 공매도가 많았습니다. JP모건 데스크에서도 비슷한 관측이 나왔습니다. 6월 중순부터 엄청난 양의 공매도가 있었는데, 지난 2일 동안 갑자기 중단되었다는 것입니다.
밈주식 열풍도 차가워졌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시장을 시끄럽게 만든 베드베스앤드비욘드(BBBY)는 이날 40.54% 폭락했습니다. 주가 상승을 촉발한 억만장자 투자자 라이언 코헨의 지분매각 소식이 나온 데 따른 것입니다. 코헨이 회장인 게임스톱의 주가도 3.86% 하락했습니다. 비트코인도 8% 넘게 떨어지면서 2만1000달러 대로 내려왔습니다. 코인베이스가 11% 급락하는 등 관련 주도 크게 하락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최근 랠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와 이에 따른 숏커버링으로 인해 발생했는데, 밈주식 하락으로 개인들의 투기 열기도 식은 것 같고 숏커버링도 마무리된 만큼 상승 동력이 흔들리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T3 라이브닷컴의 스콧 레들러 전략가는 ”밈주식과 과도한 투기적 행동을 보면 여름 랠리의 정점을 지난 것 같다"라며 "S&P500 지수가 지난 화요일 4325를 찍은 뒤 모멘텀이 둔화되고 있다. 기술적으로 S&P500 지수가 4250 밑으로 떨어지면서 6월 중순부터 올라오던 상승세가 깨졌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날이 약 2조 달러가 넘는 명목 가치를 지닌 옵션 만기일이어서 시장 변동성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피델리티의 줄리언 티머 거시 전략가는 "주가는 그동안 17% 상승하면서 하락폭의 50%를 되돌렸다. 50% 되돌림을 넘어 랠리가 계속된다면 기술적 지표의 역사를 존중해 새로운 주기적 강세장이 진행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닥을 지났다고 해도 실적과 밸류에이션을 감안할 때 설득력 있는 낙관론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FBB 캐피털 파트너스의 마이크 베일리 리서치 헤드는 "6월 저점이나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오늘과 이번 주에 지켜본 불안정한 상황은 많은 약세를 반영하고 있다”라면서 "시장이 횡보하거나 랠리가 일시 중지되는 걸 본다 해도 이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시장은 계절적으로 좋지 않은 9월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9월은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달입니다. 또 10월은 블랙먼데이 등 엄청난 폭락이 발생했던 달이죠.
이날 월가에 가장 많이 회자된 보고서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넷 전략가가 쓴 글이었습니다. 그는 지난주 S&P500 지수 4380에서 공매도를 할 것을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번 랠리가 전형적 약세장 랠리라는 걸 세 가지 측면에서 주장했습니다.
① S&P500지수가 지난 6월 저점을 기록한 이후 41거래일간 17.4% 상승했는데, 이건 '고전적인 베어마켓 랠리'다. 1929년 이후 10% 이상 올랐던 베어마켓 랠리 43개를 모아보면 평균 상승률은 17.2%, 상승 기간은 39거래일이었다.
② 베어마켓 랠리는 시장 리더십 측면에서도 폭이 좁다. 이번에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테슬라 등 네 개 주식이 전체 지수 상승 폭의 약 30%의 이익을 차지했다. 또 미국 증시가 세계 시장 랠리의 86%를 차지했다.
③ S&P500 기업의 12개월 주당순이익(EPS)은 220달러이다. 여기에 20세기 멀티플인 15배를 곱하면 3300, 21세기 멀티플인 20배를 곱하면 4400이다. 그 사이가 적정한 거래 범위다.
④ 마지막으로 Fed가 마이너스 실질 금리 상태에서 금리 인상 주기를 끝낸 것은 1954년이었다. 소비자물가(CPI) 상승 폭이 다음 6개월 동안 절반이 된다고 가정해도 내년 봄 인플레이션은 5~6%이다. Fed가 알든 모르든, 아직 그들이 할 일은 전혀 끝나지 않았다.
하넷은 실업률이 더 높아지면 주식을 살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요컨대 우리는 3.5% 실업률이 아닌 4.5% 실업률이 될 때 주식 매수를 선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 잭슨홀 회의 외에는 신규 주택 판매와 S&P 글로벌의 구매관리자지수(PMI) 발표, 내구재 판매와 잠정 주택 판매가 나옵니다. 2분기 GDP 수정치도 발표됩니다. 잠정치는 -0.9%였는데, 다른 데이터들을 보면 개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7월 개인소비지출(PCE)과 PCE 물가는 26일 아침 파월 의장이 연설하기 한시간 반 전에 발표됩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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