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국에서 받아야 할 채권에서 갚을 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이 올해 들어서만 600억 달러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말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뒤 2년 반 만에 1000억달러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은 3861억달러로 지난 1분기 말(4257억달러)보다 396억달러 감소했다. 순대외채권이 40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 2016년 말 이후 5년 반 만에 처음이다.
감소 폭은 사상 최대였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3분기(189억달러) 수준을 웃도는 기록이다.
올해 2분기 순대외채권이 급감한 것은 원·달러 환율이 치솟은 데 영향을 받았다. 환율 방어로 외환보유액을 대거 소진했기 때문이다. 2분기 외환보유액은 4383억달러로, 전분기 말 대비 195억달러 줄어들었다.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은 1210원80전에서 1292원90전으로 6.4% 하락했다. 올해 1분기 원·달러 환율 변동률이 -2.1%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이 눈에 띈다.
여기에 기관을 중심으로 해외에 투자한 국채, 회사채 등 부채성 증권의 평가 가치가 떨어진 것도 대외채권 감소로 이어졌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이 투자한 해외 부채성 증권은 이 기간 154억달러 줄어든 3395억달러로 나타났다.
반면 대외채무는 6620억달러로, 지난 1분기 말 대비 79억달러 증가했다. 특히 1년 미만 단기외채가 89억달러 늘어나면서 단기외채 비율이 10년 만에 40%대로 뛰었다. 준비자산(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41.9%로, 전 분기 말보다 3.7%포인트 상승했다.
순대외채권은 대외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것을 의미한다. 유사시 달러로 교환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돈이다. 특히 한국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데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순대외채권은 이러한 거시경제적 안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순대외채권은 마이너스였다. 외국에서 받을 돈보다 외국에 갚을 돈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이후 지속해서 경상수지가 개선되면서 외환 조달 규모가 커졌고 해외 투자도 늘었다. 대외신인도도 높아져 한국 자본시장의 외국인 투자도 확대됐다.
이에 따라 순대외채권은 지난 2019년 4분기에는 4864억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로 늘어났다. 하지만 2년 반이 지난 현재 순대외채권은 당시보다 977억달러 감소했다. 이는 20% 줄어든 수치다. 특히 올해 들어서만 618억달러가 급감했다.
정부는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양호하다는 입장이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경상수지뿐 아니라 각종 대외지표를 종합 고려할 때 우리 경제는 비교적 양호한 대외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순대외채권 급감을 한국 경제의 '경고음'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역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아 순대외채권을 잘 모아둬야 하는 나라"라며 "이런 속도가 계속되면 앞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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