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국내외 송수신액 69조
위안화 수출입 결제액의 두배
올 들어 국내에서 해외를 오간 비트코인 규모가 6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 위안화로 결제한 수출입 거래 금액의 두 배를 넘는다. 해외 투자나 송금 창구로 비트코인의 활용도가 커지면서 거래 규모가 웬만한 해외 통화 수준을 넘어섰다.
17일 암호화폐 분석 스타트업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4개 암호화폐거래소의 올 1~9월 비트코인 입출금 규모는 17조2515억원에 달했다. 대부분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거래량의 80%를 차지하는 업비트 입출금 규모까지 더하면 최소 69조원 규모의 비트코인이 해외를 오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같은 기간 수출입 대금 결제 통화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위안화(32조186억원) 거래량의 두 배를 넘는다. 이더리움 리플 트론 등 다른 암호화폐의 해외 송수금 거래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국내외를 오간 전체 암호화폐 규모는 100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국내 거래소에서 금지된 암호화폐 파생상품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비트코인을 해외 거래소로 옮긴 뒤 암호화폐 선물 매도, 풋옵션 투자 등을 통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해외 주식 투자, 유학 및 거주비 용도의 송금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 경우 환전 수수료가 적고 외환당국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 이미선 빗썸경제연구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자 파운드화로 거래되는 비트코인 거래량이 평소의 열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며 "비트코인이 기존 통화의 대체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넘어선 비트코인…파생상품 거래 막히자 해외로
코인 선물 거래, 현물의 20배…국내 투자자들 고수익 좇아 거래
5년 차 암호화폐 투자자 A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약 7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해 고점보다 60% 이상 떨어졌지만 특정 기간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쇼트(매도) 포지션으로 돈을 벌었다. 국내는 이런 파생상품 거래가 막혀 A씨는 해외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를 이용했다. 그가 국내 거래소에서 바이낸스로 암호화폐를 보내기 위해 낸 수수료만 500만원이 넘는다.
국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송수금 규모가 최근 급증한 것은 쓰임새가 늘었기 때문이다. 투자 목적뿐만 아니라 외화 송금 대체 수단, 대금 결제 수단 등으로 떠올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B씨는 최근 암호화폐거래소 계좌를 처음 만들었다. 미국에 사는 딸에게 결혼 자금을 보내기 위해서다. 시중은행보다 송금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도 적은 데다 외환당국에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거액 해외 송금은 불법이 아니어도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의 감시를 받는다.
○급증한 암호화폐 송금
17일 암호화폐 분석 스타트업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주요 4개 암화화폐거래소에 입금된 비트코인 규모는 8조5015억원어치에 달했다. 대부분 해외 거래소에서 유입됐다. 상당 규모가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원화로 현금화하려고 옮긴 것이다.
국내 1위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가 거래량 기준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이 8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달 4일까지 비트코인 입금 규모는 최소 34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국내 거래소의 시장 점유율 변화와 업비트를 제외한 네 곳의 입금액을 따지면 올해 국내 거래소에 들어온 비트코인 규모는 3년 전인 2019년(7조4000억원)보다 4.6배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올 들어 4일까지 업비트를 제외한 국내 4대 거래소에서 출금된 비트코인 규모는 8조7500억원 정도다. 대부분 해외 거래소로 나갔다. 업비트의 출금 규모까지 추정해 더하면 모두 35조원 정도다. 입금을 합친 송수금 규모는 69조원이다. 이더리움 등 다른 암호화폐 입출금 규모까지 더하면 국내 암호화폐 유통량은 올해 100조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해외 선물 거래 수요 급증
국내 비트코인 송수금 규모가 급증한 것은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이 커진 데다 한국에서는 암호화폐 선물 상품 시장이 막힌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 원화로 구입한 비트코인을 해외로 송금해 선물 거래하고, 이후 현금화를 위해 다시 국내 거래소로 비트코인을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바이낸스 등 해외 거대 암호화폐거래소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 규모는 현물 거래의 20배 이상이었다.
비트코인의 쓰임새가 다양해진 영향도 있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자녀에게 외화를 보낼 경우 시중은행 송금 대신 비트코인 전송을 활용할 수 있다.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1개(2780만원 기준)를 보낼 경우 수수료는 2만5000원 정도다. 국내 은행을 통해 비슷한 금액을 미국에 송금하려면 이보다 2만원 넘게 든다. 게다가 송금액 제한, 송금 이유 작성 등 각종 외환 규제를 피할 수 있다. 기업들도 무역대금으로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것을 노린 환치기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검찰은 지난해 6월부터 1년 동안 일명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9300억원대 환치기를 한 일당을 검거했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비트코인의 해외 송수신 규모가 70조원 정도면 국내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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