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긴축적 통화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물가안정 기조를 공고히 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을 낮추는 것은 여전히 한국은행의 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 한은·한국경제학회 공동 개최 국제콘퍼런스 개회사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속도도 Fed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금리 인상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한은이 24일 올해의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2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이 총재는 앞서 연 3%로의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최종 금리는 연 3.5% 수준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랐기 때문에 경제의 다양한 부문에서 느끼는 경제적 압박의 강도(stress)가 증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특히 비은행 부문에서의 금융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실제로 은행 예금금리가 빠르게 상승함에 따라 비은행 부문에서 은행 부문으로 자금이동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 고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의 긴축 하에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이러한 자금흐름을 비은행 부문으로 어떻게 환류시킬 것인가는 한국은행이 당면한 또 하나의 정책적 이슈"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한은은 물론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 전망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체계적 오차'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두 가지 주요 원인으로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미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하반기 이후 원화 가치 절하와 에너지 가격 추가적 상승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주요 중앙은행 중 일본과 중국이 예외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원화의 달러화 대비 평가절하폭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며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원유 및 가스 가격은 정치적 사건 등에 상당한 영향을 받음에 따라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으로는 전 세계적인 '경제적·지정학적 분절화'를 꼽았다. 이 총재는 "미·중 긴장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의 추가적 악화는 국제금융 및 무역의 분절화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경제성장과 무역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며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장기 성장을 억제하는 구조적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개혁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난 20년간 중국과의 무역 확대로 인한 혜택으로 한국경제는 고통스러운 구조개혁을 지연시킬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 더 이상의 그런 여유는 없다"며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일부 산업에 치중된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등 보다 균형 있고 공정한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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