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재벌, 달러 거래 막혀 주가 폭락
소수는 돈 더 벌기도…美 압박 강화
전 세계 500대 부호에 포함된 러시아 억만장자 23명의 재산이 1년 만에 88조 이상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국이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억만장자들이 직격탄은 맞은 것이다.
2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러시아 상위 23위 억만장자의 총 자산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하기 전인 2022년 2월 23일 기준 3390억달러(약 447조 65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1년을 맞은 지난달 24일 기준 러시아 억만장자 23명의 자산은 670억달러(약 88조 4700억원) 줄었다. 이는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있는 나머지 부호들의 순자산 감소 폭보다 4배 이상 크다.
가장 많은 재산을 잃은 억만장자는 러시아 최대 철강회사 중 하나인 세베르스탈의 소유주 알렉세이 모르다쇼프다. 모르다쇼프는 서방 친화적인 기업 운영을 펼쳤던 기업인으로 꼽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 영향으로 순자산이 67억달러(약 8조 7890억원) 증발했다. 유럽과 세계 금융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세베르스탈이 서방의 제재로 달러 거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의 순자산은 현재 198억달러로 추정되며 여전히 러시아에서 4번째 부자로 손꼽힌다.
두 번째로 많은 재산을 잃은 부호는 또 다른 '철강 재벌'인 블라디미르 리신 노볼리페츠크스틸 회장이다. 러시아 정계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리신은 1990년대 이후 인수합병을 성사하며 기업을 키워왔으며 한때는 러시아 최고 갑부 자리에도 올랐다. 그는 지난 1년간 58억달러의 손실을 보아 자산이 205억달러로 줄었다.
물론 전쟁 이후 떼돈을 번 사람도 있다. 러시아 비료업체 포스아그로 설립자인 안드레이 구리예프는 전쟁이 시작된 후 회사의 주가 급등으로 21억달러를 벌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러시아 미술품 거래 추적
소수 부호가 돈을 벌긴 했지만, 전쟁은 러시아 부호들의 많은 재산을 뺏어갔다. 러시아의 대표적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전쟁 이후 첼시 FC 구단주에서 내려왔고 그의 많은 소유물을 매각해야만 했다. 푸틴 대통령은 측근인 억만장자 빅토르 벡셀버그는 지난해 4월 미국 당국의 요청으로 90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255피트(78m)짜리 호화 요트 '탱고'를 스페인에서 압류당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 부호들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재벌들이 자산을 매각해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당국은 러시아 거물들의 미술품 거래 추적해왔으며 경매회사들에 이들의 정보를 요청한 상황이다.
일부 러시아 부호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러시아의 반정부 재계 인사들의 잇따른 사망 배후에 푸틴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작년 최소 12명의 러시아 기업인들이 자살 또는 의심스러운 사고로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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