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와 등가 교환'…스테이블 코인 전쟁의 최후 승자는?[비트코인 A to Z]
2023년 3월 크립토 시장의 최대 블랙 스완 이벤트는 스테이블 코인 USDC의 디페깅(달러와의 가치 고정 실패)이었다.
USDC는 블랙록과 골드만삭스 등이 투자한 서클과 나스닥에 상장한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개발한 스테이블 코인이다. USDC의 가치를 담보하는 준비금은 현금과 현금성 자산으로 구성돼 있고 미국 은행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 불투명한 준비금과 회계 문제로 홍역을 치른 USDT와 BUSD를 비롯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UST의 실패로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상황에서 USDC는 사실상 '근본 스테이블 코인' 취급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3월 11~12일 주말 USDC가 디페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클이 보유한 USDC 준비금 중에서 약 8% 수준인 33억 달러를 보관하고 있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 위기에 직면한 것.
만약 서클이 SVB의 파산으로 돈을 잃게 되면 USDC의 가치를 보증하는 신뢰에 타격이 간다. 최악에는 서클이 자산을 보관하고 있던 다른 은행으로 시스템 리스크가 전이돼 서클이 추가 손실을 보게 되면 USDC의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USDC 스테이블 코인과 USD 법정 화폐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던 코인베이스 역시 주말에 은행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해당 서비스를 중단할 것을 발표했다. 공포에 빠진 마켓은 USDC 패닉 셀을 시작했고 USDC는 달러 대비 15% 할인된 0.85달러까지 하락했다.
가장 안전한 것으로 취급되던 스테이블 코인 USDC 가치가 하락하자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테더가 발행하는 USDT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년 전부터 논란이 됐지만 USDC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폭락할지는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암호화폐 시장의 만트라(주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3월 15일 기준 USDC 가격은 0.995달러에 거래돼 페깅이 된 상태다. 미국 정부가 SVB의 예금자 보호를 보장했고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USDC 디페깅 사건은 무마되는 추세인데 필자는 이 사건이 스테이블 코인 전쟁이 다시금 격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판단한다. 현시점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존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 은행 시스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둘째, 중국이 홍콩을 통해 크립토를 수용하면서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을 모색할 수 있다. 셋째, 테라 UST 실패 이후 다시금 '크립토 네이티브 스테이클 코인'이 주목받을 수 있다.
해당 내용은 글로벌 크립토 투자사 알파논스 트위터 리서치를 상당 부분 참고했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 시장 톱 4(USDT·USDC·BUSD·DAI)는 시가 총액 기준(1345억 달러, 3월 15일 기준) 94%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USDT·USDC·BUSD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은행에 담보물로 보관하고 있는 중앙화 스테이블 코인이다.
DAI는 메이커DAO에 의해 운영되는 탈중앙화 스테이블 코인이지만 담보물의 60% 이상이 USDC이기 때문에 사실상 USDC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제로 USDC가 디페깅됐을 때 DAI 가격 역시 USDC와 마찬가지로 0.85 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현존하는 스테이블 코인의 문제는 은행 시스템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USDC 디페깅은 크립토 시장의 문제라기보다 전적으로 SVB의 파산을 비롯한 은행 시스템의 문제에서 촉발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크립토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달러 스테이블 코인 외 다른 대안을 찾을 유인을 제공한다.
중국의 움직임도 흥미롭다. 중국은 홍콩을 통해 간접적으로 크립토를 수용하고 있는 양상이다. 2022년 12월 홍콩에서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됐다. 또 홍콩 금융 당국은 2023년 6월 리테일 투자자에게 크립토 거래를 허용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 수년간 암호화폐 공개(ICO)·거래소·채굴 금지를 통해 사실상 크립토를 배척해 왔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움직임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중국 정부가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을 고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그동안 중국은 기축 통화 미국 달러의 아성에 맞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실제로 위안화가 외환 보유액, 국제 무역 등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3% 남짓한 수준이다. 또 중국은 상하이 석유 가스 거래소를 설립하고 위안화 결제를 추진한 바 있는데 아직 페트로 달러 시스템은 공고하다. 국제 무역 시스템과 화폐 헤게모니가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를 능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와 크립토 세계에서는 승산이 있다. 필자는 중국 정부가 CBDC 외에 퍼블릭 체인에 기반한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도 옵션으로 고민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실제로 최근 USDT 발행사 테더는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을 지원했고 중국계 거래소인 후오비는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 트루NH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해당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은 트론 블록체인 위에 발행됐다. 참고로 트론과 후오비를 운영하는 저스틴 선은 홍콩 당국과 소통하며 중국 정부에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은 기존 달러 중심의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질서를 뒤흔들 메기가 될 잠재력이 있다.
'탈중앙화 경제에는 탈중앙화 돈이 필요하다. 탈중앙화 돈에는 탈중앙화 담보가 필요하다.' UST를 고안한 테라폼랩스의 도권(권도형) 최고경영자(CEO)가 비트코인을 UST 담보물로 지정할 당시 올렸던 트윗이다. UST는 결과적으로 대실패했지만 비전만큼은 담대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실제로 장펑자오 바이낸스 CEO도 "UST는 올바른 비전을 가졌다. 다만 실행이 형편없었을 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는 크립토업계가 조만간 달러 중심의 스테이블 코인 시스템에서 탈피하고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부상을 목격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참고로 바이낸스는 BUSD 발행사 팍소스가 미국 규제 당국에 제재를 받음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 사업에 타격을 받은 바 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든, 위안화 스테이블 코인이든 결국 국가와 은행 시스템 리스크에 종속돼 있다. DAI는 아직까지 가장 성공한 크립토 네이티브 스테이블 코인이지만 USDC를 비롯한 전통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국경을 초월한 가치 저장 및 이동이 자유로운 크립토 세계에서는 크립토 네이티브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수요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주목할 만한 크립토 네이티브 스테이블 코인에는 sUSD·LUSD·RAI 등이 있다. 크립토 자산을 담보로 달러의 가치를 추종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온체인상에서 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지만 담보 비율, 거버넌스 운영 방식 등의 세세한 메커니즘은 상이하다.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
한경비즈니스(bizstaff@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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