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 이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비롯된 미국 지방 은행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모든 위기가 유동성 위기, 시스템 위기, 실물 경기 위기 순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는 시스템 위기로 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상황이다. 이런 노력이 무산된다면 제2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악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바이든 정부의 초기 대응은 리먼 사태 때 오바마 정부와는 분명히 다르다. 위기 극복의 주체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리먼 사태 당시에 각각 부통령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부의장으로 경험이 풍부하다. 위기 극복의 근거가 되는 단일 금융법(도드-프랭크법)도 갖춰 놓고 있다.
최대 과제인 시스템 위기로 점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유동성 위기를 푸는 것이 급선무다. 구제 금융으로 도덕적 해이를 낳았던 리먼 사태의 교훈을 살려 자기 책임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예금자는 확실히 보호해 추가 인출을 방지하는 대신 책임져야 할 금융사와 투자자의 자산은 조기에 파산시키거나 처분해 유동성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리먼 사태에 따른 낙인 효과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뉴 앱노멀 리스크로 신용 경색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이다. 신용 경색의 대표 지수인 시장 심도(market depth)지수는 SVB 사태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 국채 변동성 지표인 무브(move)지수도 코로나19 사태 직후보다 높다.
문제는 바이든 정부는 신용 경색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중국은 국채를 내다 팔아 미국의 돈줄을 더 조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 속도는 의외로 빠르다. 많을 때는 1조3000억 달러가 넘었던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는 지난 1월 말 8590억 달러 수준까지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국채 매각은 바이든 정부에 매각 규모 이상으로 부담이 되고 있다. 공화당의 반대로 6월 초까지 연방 부채 한도가 조정되지 않으면 디폴트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뒤늦게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해 시장 금리가 더 올라가면 인플레이션과 은행 위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Fed의 통화 정책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통화 정책의 우선순위는 인플레이션 방지보다 신용 경색 해소와 금융 시스템 안정에 둬야 한다는 권고가 잇따르고 있다. 통화 정책의 주요 수단도 금리 변경보다 유동성 조절로 바꿔 지금 추진하고 있는 양적 긴축(QT)을 중단하고 양적 완화(QE)를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도 눈에 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태도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원인을 미국이 먼저 제공했다고 역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신용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미국이 당면한 인플레이션을 강달러 유도를 통해 수출하는 과정에서 더 심해졌다는 판단이다. 강달러로 위안화가 약세가 되면 중국 내 자본이 유출되는 차이나런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공산당 대회를 통해 장기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한 시진핑 국가주석으로서는 미국의 강달러 유도에 대한 방침은 의외로 민감하다. 강달러 유도로 수입 물가가 상승해 인민들이 느끼는 경제 고통이 심각해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달러 독주 체제를 적극 견제하자는 데 합의를 끌어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조치다.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는 시대에서 미·중 간 머니 게임은 경제 패권을 최종적으로 누가 쥐느냐의 핵심(key)이다. 양국이 주력하고 있는 첨단 기술 개발을 비롯해 모든 패권 분야는 금융이 받쳐 주지 못하면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양국 간 머니 게임은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으로 더 벌어질 미국과의 금리 차다. 한·미 간 기준금리 차가 1.5%포인트로 벌어진 여건에서 미국의 국채 금리가 더 올라가면 외국인의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위험 수위를 넘은 가계 부채를 감안하면 금리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원‧달러 환율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2020년 3월 중순 달러당 1285원을 정점으로 2021년 1월 초 1082원까지 떨어지다가(1단계)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함께 갑작스럽게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작년 10월 초 1448원까지 급등했다(2단계). 그 후 일부에서 20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난 2월 초에 1227원까지 급락했다(3단계).
앞으로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지속되면 4단계에 해당된다. 미국 여건만 보면 작년 말 대비 달러 강세 요인이 더 강해졌다. 펀더멘털 면에서 미국 경제는 '노 랜딩'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견실하다. 통화 정책 면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차 불거지면서 방향 전환, 즉 피벗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러 인덱스 구성 비율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 경제는 겨울철 이상 고온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하면서 회복세가 뚜렷하다. 올해 첫 회의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한 단계 올린 대신 유럽중앙은행(ECB)은 0.5%포인트 두 단계 인상해 금리 차가 축소됐다.
대외적인 여건 면에서 달러 강세와 약세 요인이 혼재돼 있어 지난 2월 초 이후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를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 경상수지 균형 모델, 환율 구조 모형 등으로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선은 달러당 1230원 내외 수준이다. 외국인 자금 유출입 쪽에서 적정선 이상이면 환차익을 기대하지만 그 이하이면 환차손을 우려한다.
지난해 10월 초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락했던 것은 환차익을 겨냥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기 때문이다. 반면 2월 들어 원‧달러 환율이 적정선 밑으로 떨어지자 외국인 자금이 이탈세로 돌아섰다. 올해 한국 경제 실상이 처음 확인됐던 2월 초 펀더멘털이 개선돼 적정선이 더 떨어졌더라면 외국인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비기축 통화국의 외국인 자금 유출입을 결정하는 주요인은 금리 차보다 펀더먼털 개선 여부다. 성장률·인플레이션율·실업률·경상수지 등 거시 경제 4대 변수 중에서는 성장률과 경상수지를 중시한다. 외환 위기를 경험했던 낙인(stigma) 국가는 외환 보유액이 최광의 개념의 캡티윤 모델로 추정한 적정 수준 이상 확보했는지도 주목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4%로 역성장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인플레 타기팅 선을 2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이 비기축 통화국에 투자할 때 가장 경계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이다. 외환 위기 경험국에 투자할 때 가장 주목해 보는 무역 적자도 올 들어 3월 20일까지 240억 달러가 넘는다.
일부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2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리를 올렸어야 했다는 비판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 경제처럼 펀더멘털이 받쳐줘 금리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처럼 펀더멘털이 좋지 않은 여건에서 인플레이션과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금리 인상→펀더멘털 악화→외국인 자금 이탈→원‧달러 환율 상승'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확률이 높다. 한국은 비기축 통화국이자 외환 위기를 경험한 낙인국이다.
지금처럼 4대 거시 경제 목표 간 상충 관계가 뚜렷한 상황에서는 인플레인션보다 성장률과 경상수지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경제 전망을 토대로 한국의 투자 매력도를 잃지 않기 위한 올해 성장률 최저선은 2%다. 한국은행과 정부가 예상하는 1%대로는 안 된다. 올해 무역 적자가 불가피하더라도 경상 수지 흑자세는 유지해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한경비즈니스(bizstaff@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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