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연말 100弗 간다"…OPEC+, 잡혀가는 물가에 기름 부어
하루 116만 배럴 추가 감산키로
WTI, 한때 8% 올라 80弗 돌파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으로 구성된 협의체인 OPEC+가 하루 100만 배럴 규모의 감산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번 감산 조치는 최근 진정 기미를 보인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시장에도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OPEC+는 사우디아라비아의 50만 배럴을 포함해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 계획을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OPEC+ 회의에서 결정한 대규모 감산 정책(하루 최대 200만 배럴)과 별도로 시행하는 추가 조치다.
이 같은 소식에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가격은 이날 장중 8% 급등해 배럴당 81달러를 넘어섰다. 브렌트유 선물도 장중 7% 넘게 뛰면서 배럴당 85달러를 돌파했다. 감산 조치로 물가 상승폭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S&P500선물과 나스닥100선물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 12월물 전망치를 95달러로 5달러 상향 조정했다.
OPEC+가 감산을 결정한 것은 올해 1분기 국제 유가가 2020년 3분기 이후 최대 낙폭(-6%)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초 중국의 리오프닝이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지난달 터진 글로벌 은행 위기로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미국 백악관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감산 발표는 현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OPEC+의 감산으로 유가가 오르면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가격 전망치 높여…美, 뾰족수 없어 강세 이어질 듯
지난주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모처럼 낙관론이 넘쳤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위기가 소강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인플레이션도 진정 기미를 보여서다.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는 한 주간 3%대 상승세를 보였다. 일요일인 2일(현지시간) 전해진 OPEC+의 전격적인 감산 소식은 '골디락스'(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기대하는 시장 관계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연말까지 서부텍사스원유(WTI)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3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전날 전해진 OPEC+의 감산 소식에 국제 유가는 일제히 급등세를 보였다. WTI는 장중 8%대 급등해 배럴당 81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는 7% 넘게 뛰며 장중 86달러에 거래됐다. 국제 유가는 SVB 파산이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지난달 중순께 급락세를 보였다. WTI는 66달러, 브렌트유는 72달러까지 떨어졌다. OPEC+의 추가 감산 소식은 국제 유가 하향안정 움직임에 급제동을 걸었다.
주요 금융사는 앞다퉈 유가 전망을 상향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예상 밖의 하루 100만 배럴 수준 공급 감축이 1년가량 이어지면 유가가 배럴당 20~25달러 정도 오른다"고 분석했다. 대니얼 하인스 호주&뉴질랜드은행 원자재부문 선임연구원은 "연말까지 국제 유가가 100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연말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90달러에서 95달러로 높여 잡았고, 내년 말 전망치도 100달러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 같은 전망이 이어지는 이유는 OPEC+의 감산에 대응할 미국의 정책 수단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5억93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 중 1억8000만 배럴을 방출한 뒤 아직 보충하지 못했다. 미국 내 셰일가스 기업들을 압박해 증산하는 방안 역시 쉽지 않다. 셰일가스 업체들은 호황기에 무리한 사업 확장을 진행한 후 파산 도미노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과거에 비해 OPEC+의 (원유) 가격 결정력이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글로벌 경기 전망도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이날 미 국채 2년 만기 수익률은 연 4.1%대로 상승했고, S&P500선물과 나스닥100 선물은 하락세로 반전되는 등 주요 가격지표가 일제히 경기둔화를 예상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미 달러화도 강세로 돌아섰다.
지난주까지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지수가 예상을 밑돌자 미 중앙은행(Fed)의 다음달 기준금리 동결 기대로 주가가 오르는 등 전망이 밝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우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원유 가격이 에너지 등 생활 필수재 가격에 영향을 미쳐 물가를 밀어올릴 것으로 예상되나, Fed가 더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아서다. SVB 은행 파산에 이어 크레디트스위스(CS)는 대규모 부실이 발생해 UBS에 인수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엔 자산 7조달러(약 9123조원)의 미국 증권회사 찰스슈와브가 대규모 채권 손실로 휘청이며 위기감이 높아졌다.
신정은/이현일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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