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의 감산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것."
OPEC+가 하루 117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같이 말했다. 3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의 한 에너지회사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OPEC+의 감산이 미국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발이란 점을 감안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은 뜻밖이라는 평가다. 감산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데다 사우디와의 관계 재정립을 위해 미국이 비판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날 나온 백악관의 공식 입장도 예상보다 온건했다.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우리는) 감산 결정을 미리 통지받았다"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80년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밝혔다.
OPEC+의 감산 조치에 대한 백악관의 반응은 지난해와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OPEC과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이를 비웃듯이 지난해 10월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을 비롯해 바이든 대통령은 '후과'를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의 태도가 달라진 배경엔 중동의 지정학적 변화가 있다. 최근 사우디는 중국과 밀착하며 독자 노선을 강화했다. 중국이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자 미국이 사우디와의 공생관계를 다시 강화하려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교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자국 안보 문제에 대해 미국의 관심을 다시 끌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도 (사우디에) 분노할 일이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지 않는 등 양국이 균형점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가에서도 OPEC+의 이번 감산 결정으로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씨티그룹은 "유가가 단기적으로 급등하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원유시장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는 깨달음이 뒤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실물경기 둔화로 원유에 대한 수요가 약해 유가 상승세가 오래가진 못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전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은 개장 직후 8% 치솟았지만 소폭 하락하며 마감했다. 4일에는 전장 대비 0.51% 상승하는 데 그쳤다.
유가를 두고 비관적인 전망도 잇따른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뛸 것이란 관측이다.
스위스 투자은행(IB)인 UBS는 "오는 6월까지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했다. UBS는 유가 상승 이유로 △중국의 원유 수입 증가 △은행 위기 완화로 불확실성 제거 △제한적인 러시아 원유 생산 등을 꼽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연말까지 브렌트유가 배럴당 최대 25달러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사우디가 유가 방어에 주력하는 것도 상승 요인 중 하나다.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이 사우디의 재정 손익분기점을 유가로 환산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6.76달러로 추정됐다. 국제 유가가 66달러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 사우디 예산은 적자로 전환한다는 뜻이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혁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추진하기 위한 대규모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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