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크본드(투기등급 고수익 회사채) 가격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공포 때문에 투자자들이 정크본드 투자를 꺼리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1조4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하이일드 채권 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SVB 붕괴로 인한 금융 위기 우려는 미 회사채에 대한 투매를 촉발시켰다. 이후 우량 채권은 손실을 다소 만회했지만, 정크본드에 대한 투기성 베팅은 자취를 감췄다.
BB등급의 미국 채권 평균 수익률은 3월 중순 최고치인 7.5%에서 현재 6.8%까지 떨어졌다. 이는 2월초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의미다. BB등급은 비투자등급 최상단에 있는 채권으로, 정크본드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CCC 등급 이하의 채권 수익률은 현재 15.3% 선에 머물러 있다. 지난달 20일 최고치인 15.6%에 비해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두달 전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 채권 수익률은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시장에서 정크본드 수요가 그만큼 줄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이체방크의 유럽·미국 신용전략책임자인 스티브 카프리오는 "채권 시장 참가자들은 경기 후퇴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미국의 경제 성장과 수익이 둔화하는 기류가 더욱 확실해지면 투자자들은 지금보다 더 우량한 채권에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국제 신용 포트폴리오 매니저 협회(IACPM)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안에 경기 침체가 미국을 강타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4%에 달했다. 86%는 "향후 12개월 안에 미국 기업들의 채무불이행이 잇따를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전 세계 은행, 투자운용사 등으로 구성된 IACPM은 "물가상승세, 긴축(금리 인상), 지정학적 충돌 등 복합 위기에다 은행들의 유동성 급감에 따른 신용 가용성 위기까지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FT는 "하이일드 채권 시장에서 수익률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지난달 10일 이후 미국 SVB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의 구제금융 파동까지 연쇄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 우려가 불거진 이후 발생했다"며 "투자자들은 더 낮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BB등급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채와 BB등급 회사채 간 스프레드(수익률 격차)는 3월 중순 3.66%포인트에서 현재 2.9%포인트로 줄었다. 같은 기간 CCC 등급 회사채의 스프레드는 11.41%포인트로, 3월 24일 수준(11.86%포인트)에서 약간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신용전략가인 로피 카루이는 "채권 발행 시장에서 자금조달 방안이 많은 우량 대기업과 선택지가 부족한 중소기업 간에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참가자들의 미국 경기 침체 전망은 미 경제사령탑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장밋빛 전망과는 다르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 11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춘계총회 기자회견에서 "미국 은행 시스템은 탄탄한 자본과 유동성을 갖추고 있고, 미국 경제는 견고한 일자리 창출, 인플레이션의 점진적 하락, 강력한 소비지출이 매우 잘 실행되고 있다"며 "그래서 나는 경기 침체 위험을 예측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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