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자가 S로 시작하는 세 은행(실버게이트 은행, 실리콘밸리 은행, 시그니처 은행)의 연쇄 파산을 지칭하는 '트리플 S 사태'를 마지막으로 끝난듯 했던 은행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엔 자산규모 14위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이 도마위에 올랐다. 이 은행은 이미 지난 3월 10일 뱅크런 사태를 한번 맞았다. 당시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등 대형은행 11곳이 빠르게 300억달러를 지원해 주면서 위기를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4월 24일 실적 발표에서 1분기 고객 예금이 무려 1020억달러(약 136조원) 빠져나갔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후 위기설이 재점화하며 주가가 16달러에서 3.5달러로 78% 폭락했다.
결국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 정부는 그대로 둘 경우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주말 사이 급하게 매수자를 찾았다. 인수자로 나선 주인공은 미국 최대은행인 JP 모건이다. 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인수 직후 5월 1일 언론과 진행한 컨퍼런스 콜에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매우 건전하며 (자신이 문제를 진화했으므로) 이제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JP모건의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인수는 당장 부실 은행이 하나 더 파산하는 사태는 막았을지 몰라도 미국 은행 시스템 전체로 보면 혹을 하나 더 붙인 꼴이다. 이번 인수로 인해 JP모건의 은행 산업 내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힘의 집중화 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타 은행들 대비 보유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너무 커서 실패하기 어려운(Too big to fail)' 은행이라는 지위를 얻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독점 구조는 자유경쟁을 차단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비용 증가와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JP모건의 점유율이 높아짐에 따라 가계에 대출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익에 도움이 되는 대기업, 고액 자산가 군에만 서비스 제공을 집중하고 중소기업과 일반 개인은 소홀히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자산을 예치하거나 한번에 큰 단위위 대출을 해가서 은행 수익에 도움을 주는것은 1% 고액 자산가일지 몰라도, 경제 전체의 생산과 소비를 책임지는 것은 결국 나머지 99% 일반 고객들이다. 만약 JP모건이 이들에 대한 대출 창구를 원활하게 열어주지 않는다면 이는 적어도 법정화폐로 굴러가는 현 경제에는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의 고객 예금을 비롯한 모든 자산을 인수한다고 해서 완전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기에도 이르다. 아직 인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어떤 비율로 부담하게 될지도 불확실하고, 퍼스트리퍼블릭에 거액의 예금을 예치했던 11개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은 어떻게 진행될지도 불분명하다. 만약 이 비용 중 일부라도 납세자에게 부과되는 식으로 결론이 난다면 2008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버금가는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국 경제는 지나치게 오랜 시기 동안 유동성을 확대했고, 연준은 금리 인상 주기를 부적절하게 관리했으며, 규제 당국은 은행들의 자본 건전성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미흡하게 실행했다. 제이미 다이먼의 행복회로 섞인 희망찬 발언과는 달리, 앞으로 또 어떤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절적한 정책 대응으로 해결책을 도출하여 금융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지금 미국의 은행들은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ank Term Funding Program, BTFP)과 연준이 운영하는 할인창구 대출을 통해 자금을 수혈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다. BTFP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도입한 새로운 유동성 지원 기구다. 지난주 미국 은행들의 BTFP 사용액은 739억 달러에서 813억 달러로 또다시 늘었다. 할인창구 대출 사용액도 699억 달러에서 738억 달러로 상승했다. 통상 할인창구 대출을 받으면 은행의 유동성과 신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으로 시장이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들은 이를 꺼리는 편인데, 이제는 은행들도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악화되는 자본 건전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들은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연준 금리가 현 수준으로 유지되는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신용 경색으로 인해 금리가 인하되거나, 은행 부문의 전염성 붕괴를 막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준 대차대조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 비트코인에는 강세 요인이다.
이 와중에 경기는 점점 침체 국면으로 빠져드는 중이다. 1분기 미국의 GDP는 예상치인 2%와 작년 4분기의 2.6%에 한참 못미치는 1.1%를 기록하면서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둔화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연준 위원들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1분기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 가격지수가 4.4%에서 4.9%로 상승하여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 물가지수(CPI)로 측정되는 인플레이션은 확실히 정점을 찍고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그 속도가 여전히 너무 느려 연준이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따라서 다가오는 5월 첫째주 FOMC 회의에서는 은행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와 아직 야속하게도 잘 잡히지 않고있는 인플레이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 결정을 내릴지가 관건이다.
예상컨데 파월 의장은 이번 FOMC에서 마지막으로 25bp 인상을 단행하면서 동시에 앞으로는 금리를 현행 수준에서 동결할 것이라 예고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매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경제 침체와 은행 부문의 위기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으며 언제라도 기조를 전환할 수 있다는 비둘기파적 메세지를 시장에 던지는 것이다.
물론 시장은 그가 아직 매파인지 아니면 비둘기파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며칠간 논쟁을 벌이며 비트코인 가격을 높은 가격 변동성에 노출시킬 것이다. 그러나 한때 75bp씩 자이언트 스텝을 밟던 빠른 금리 인상이 이제 끝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결국 시장은 환호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는 정점을 찍었으며 이제 다시 유동성 장세가 펼쳐진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를 것이다.
이런 와중에 기업들도 연이어 예상보다 좋은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증시 상승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어닝시즌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올해 1분기 S&P500 기업들의 이익 증가세는 팬데믹 이후 최악인 -6.7%의 역성장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었다. 그러나 S&P500 기업들의 53%가 실적을 발표한 현재 이익 성장은 -3.7%로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여전히 역성장이긴 하지만 최악을 보던 시장에는 분명 희소식이다. 주식 변동성을 측정하는 빅스(VIX) 지수는 현재 15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다. 미국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무브(MOVE) 지수 역시 2월과 3월 형성된 고점 이후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는 변동성 수준에 따라 위험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배분하는 대형 펀드의 관심이 다시 비트코인으로 향하게 만들 수 있다.
비트코인은 올해 1분기에만 연초대비 80% 가까이 상승하며 다른 어떤 위험자산들보다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그동안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비한 헤지 수단으로서 주목받은 '디지털 골드' 내러티브가 가격을 밀어올렸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유동성이 풀리며 법정화폐 대비 거의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거품경제가 비트코인 가격을 추가로 상승시킬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비트코인과 주식 시장의 상관관계는 감소했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은 여전히 위험 자산으로 인식된다. 눈앞에 다가온 성장 둔화와 경기 침체는 다시 유동성 바다의 해수면을 상승시킬 것이고 모든 배는 떠오를 것이다. 비트코인 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속적인 자산가격 상승은 전체 재산에서 자산 비중이 높은 부자들은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고 현금비중이 높은 서민은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자산가격의 상승은 반대로 화폐의 구매력은 하락함을 의미한다. 통화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와중에 화폐의 구매력 하락이 본격화되면 상품과 재화의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특히 의료비와 교육비 등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다른것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비탄력적 재화'의 가격이 눈에 띄게 상승하게 된다. 지난 20년간 미국 내 의료비, 대학 등록금, 대학 교재비, 자녀 양육비 등 주요 비탄력 재화의 가격은 적게는 100%에서 많게는 250%까지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동안 평균 시간당 임금은 50% 상승하는데 그쳤다.
서민들은 이런 격차를 좁히기 위해 위험한 투기에 내몰린다. 이런 나쁜 결정들이 하나하나 쌓이게 되면 경제는 주기적으로 지나친 호황 → 거품붕괴 → 경기침체가 반복되는 'boom and bust' 사이클에 갇히게 된다.
이 사이클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과도하게 풀린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는 매우 어렵다. 우리가 지난 1년간 경험했듯이 금리 인상과 양적축소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율로 먹고사는 정치인이 인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대단히 어렵다. 특히 최근 프랑스에서 터져나온 국민연금 사태만 봐도 사람들은 돈과 관련된 문제에는 그 어떤것보다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은 그 탄생 목적 자체가 중앙은행과 은행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는 결국 화폐 찍어내기와 같은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그들 입장에서 긴축은 이득보다는 고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규모에서 터지면 더 빨리 수습될 수 있는 문제의 크기를 더욱 키워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양산할 폭탄으로 만드는 격이다. 이는 마치 임종을 앞둔 환자가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을 맞듯이, 경제도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와 고통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히 다가올 양적완화와 금리인하에 대비해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은행 시스템의 붕괴, 더 중앙은행을 기반으로한 법정화폐 시스템의 붕괴에 대비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을만큼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만약 정말로 발생한다면 세계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만한 대형 사건임엔 분명하다.
자국의 화폐가치가 무너져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사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미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런 국가의 정부는 선진국보다 금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훨씬 더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나 아르헨티나 대도시에 있는 외화 환전소들은 달러화와 USD 테더를 함께 취급한다고 한다. 지금이야 달러화 환율이 여타 신흥국 화폐 대비 강세이기 때문에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인기를 끌지만, 결국 달러화의 구매력도 계속해서 하락할 것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상관없이 4년에 한번씩 발행량이 줄어들면서도 사용성은 꾸준히 증가하는 비트코인은 결국 최후의 안전자산이자 민간화폐로 인정받을 것이다.
"백훈종 샌드뱅크 COO는…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자 "웹3.0 사용설명서"의 저자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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