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에 관한 법안이 4월 30일 국회의 첫 문턱을 넘었다. 금융 당국은 가상자산 시장업계를 규율하는 첫 법안에서 가상화폐·암호화폐·암호자산·디지털자산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던 용어를 '가상자산'으로 통일했다.
가상자산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그 이후 세계적으로 더 많은 기관과 기업이 가상자산에 뛰어들고 규제와 감독 기관이 생기는 등 가상자산 시장은 점차 성숙해졌다.
과거 가상자산은 투기적 성격이 강한 위험 자산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현재는 대형 은행의 파산 등 금융 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 자금이 몰리는 안전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작년 우크라이나 국민과 올해 초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자를 위한 구호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가상자산은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가치 전달 수단으로 부상했다.
실물 자산과 연동해 가격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의 성장 또한 가상자산 시장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예다.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시가 총액 1위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은 과거보다 기술주와의 상관관계가 더 높아져 자산군으로서의 성숙도를 더해가고 있다.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과의 중요한 차이점인 '투명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거래 방식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켰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가상자산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 체이널리시스 '2022 글로벌 가상자산 도입 지수'에 따르면 중앙아시아·남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은 전 세계에서 셋째로 큰 가상자산 시장이다.
2021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이 지역 국가들의 가상자산 가치는 9320억 달러(약 1250조원)에 달했고 베트남·필리핀·인도·파키스탄을 포함한 7개 국가가 글로벌 가상자산 도입 지수 상위 20개국에 포함됐다(한국은 2022년 23위를 달성해 2021년 40위에서 17계단 상승했다). 중하위·중상위 소득 국가의 사용자들은 법정 화폐의 변동성이 크거나 자국의 재정적 이유로 인해 가상자산을 이용해 자산을 저축하거나 송금한다. 가상자산은 기존 은행 계좌 없이도 송금할 수 있는 새롭고 쉬운 방법이고 기존의 송금 서비스보다 저렴한 수수료도 매력적이다.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금융회사도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뉴욕 멜론은행(Bank of New York Mellon)은 아시아에서 토큰화된 증권과 가상자산에 대한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고 싱가포르 최대 은행 중 하나인 DBS그룹은 2020년 싱가포르에 기관용 가상자산 거래소를 설립하고 최근 가상자산 서비스를 홍콩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거나 상품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방관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전통 금융회사를 위해 블록체인 분석 전문 기업 체이널리시스는 <표1>과 같은 가상자산 성숙도 모델을 통해 은행들이 시장 기회를 평가하고 규제·컴플라이언스 요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5단계 로드맵을 제시한다.
<표1>
밑작업에 해당하는 0단계는 '교육·전략·계획' 단계로, 주요 이해관계인을 교육하고 그들이 보유한 가상자산 현황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이다. 그 이후 1단계 '비즈니스 공개'로 넘어가 가상자산 비즈니스를 지원하며 가상자산 전문가를 고용해 전문성을 쌓는다.
2단계 '합성 가상자산 상품'에서는 가상자산과 합성한 새로운 투자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한다. 3단계 '가상자산 예치'에서는 고객의 가상자산 예치를 지원한다. 마지막 4단계 '예치를 넘어서'에서는 탈중앙화 금융(디파이)과 같은 복잡한 상품에 대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모델은 은행이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가상자산을 통합해 고객을 지원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려면 거래를 모니터링하고 의심스러운 활동을 감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체이널리시스의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은 작년 로닌브리지 해킹으로 북한 해커가 탈취한 자금을 압수하는 등 사이버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사건을 더 빠르게 해결하고 문제가 되는 활동을 보고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등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금융의 미래가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될 것은 분명하다.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금융 시스템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금융회사의 과제는 리스크와 규정 준수를 관리하면서 이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는 것이다. 올바른 기술에 투자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며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용자들은 가상자산·디파이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를 이해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스스로 조사하고 최신 동향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자산업계는 빠른 혁신과 성장을 목도하고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업계가 계속 진화함에 따라 금융의 미래는 더욱 흥미롭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백용기 체이널리시스 한국 지사장
한경비즈니스 bizstaff@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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