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께 부채한도 리스크 본격화 가능성 대비"
미국 기업들이 이달 들어 회사채 발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연방정부 부채한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자금 조달 시장이 급변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을 마무리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직접 만나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금융정보업체 딜로직 자료를 인용해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이 5월 1일부터 이날까지 총 1120억달러(약 148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고 보도했다.
발행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460억달러)의 두 배 이상이며, 전월과 비교하면 세 배를 넘는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반 초저금리로 '차입 광풍'이 불었던 2020년을 제외하면 7년 만에 최대치다.
이달 중 회사채 발행금리 책정을 마친 기업은 56개로 조사됐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 천연가스 회사 오빈티브, 생명과학 분야 솔루션, 임상 연구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큐비아 등이 발행 계획을 앞당긴 기업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발행된 회사채 중 3분의 2는 인수자금 조달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이다. 일례로 화이자는 씨젠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해 310억달러 규모 투자 등급 채권을 발행했다. 이 인수‧합병(M&A)은 올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최대 규모로 꼽힌다.
미 연방정부의 현금 잔고가 바닥 나 시장 변동성이 급증할 때를 대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 중‧장기적 관점에서 6~7월 중 회사채 발행 계획을 세웠던 기업들은 5월 들어 부채한도 이슈가 불거지자 시장 접근 시점을 확 앞당겼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댄 미드 투자등급 신디케이트 부문 책임자는 "유리한 시장 조건을 활용해 자금 조달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다수 목격되고 있다"고 짚었다. 씨티그룹의 글로벌 기업금융 부문 책임자인 리처드 조게브도 "채권 발행이 가속화했다"며 "부채한도의 '넌센스'를 피하고, 비교적 활기찬 시장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심리"라고 해석했다.
경기침체 우려를 비롯한 불확실성 확대도 기업 심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조게브 책임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14개월 만에 제로(0) 수준에서 5~5.25%로 오르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며 "경제 상황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가 투자 시점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웰스파고의 모린 오코너 투자등급 채권 부문 책임자도 "고전적 경기침체의 역풍으로 나타나는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부채한도 상한 논의가 여기에 불을 붙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수정헌법 14조 발동 가능성과 관련해 "우리에게 권한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문제는 그것이 늦지 않게 발동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연방정부는 모든 채무 이행은 준수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부채한도 상향을 위한 의회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대통령에게 국채 발행 권한이 부여된다는 것으로 해당 조항을 해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매카시 의장,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의회 지도자들은 협상 당시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디폴트 발생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공화당은 극단적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조건만을 반영한 합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저녁 매카시 의장과 대면 협상을 재개할 계획이다. 그는 귀국길에도 매카시 의장과 관련 문제 논의를 위해 통화했다. 매카시 의장은 의회의사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가 "생산적이었다"며 "그가 우리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일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아무것도 합의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양당이 부채한도 상향에 합의하지 못하면 다음 달 8일 또는 9일에 재무부 현금 잔고가 300억달러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고 추정했다. 300억달러는 연방정부의 지급 책임을 충족하기 위한 최소 보유 기준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재무부는 570억달러 조금 넘는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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