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처럼 반도체 쌓는다"…AI 열풍에 더 각광받는 '이 기술'
GPU·CPU·메모리 등 필요한 반도체 조립
대형 반도체보다 수율 높고 설계 빨라
삼성·인텔·TSMC 등 '칩렛 동맹' 꾸리자
中 자체 규격 발표…제재 돌파구 될수도
반도체 패키징 기술인 '칩렛'이 AI(인공지능) 시대에 각광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양한 형태의 반도체를 연결하는 칩렛 기술을 통해 AI 기술기업들의 까다로운 요구에 쉽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칩렛 기술로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를 우회하고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AI 열풍으로 인해 반도체 제조사들은 레고 조각처럼 반도체를 쌓아올리는 칩렛 설계의 개발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칩렛은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여러 반도체를 이어붙이는 방식을 말한다. 레고 블럭을 조립하는 것과 비슷해 '레고같은 패키지(Lego-like package)'라고도 불린다.
AMD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RDNA3 아키텍처가 대표 사례다. RDNA3 아키텍처는 중앙에 하나의 그래픽처리장치다이(GCD)에 6개의 메모리처리장치다이(MCD)가 결합된 형태다. 각각 TSMC의 5㎚(나노미터) 공정과 6㎚ 공정에서 생산된다.
칩렛의 장점은 두 가지다. 우선 대형 반도체를 하나 만드는 것보다 수율이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반도체에 여러 회로가 들어갈 경우 결함이 하나만 생겨도 불량이 되는 만큼 반도체를 작게 만들어야 수율 향상에 유리하다.
AI 시대에 칩렛이 주목받는 것은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바로 각 사 요구에 따라 주문제작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대형 반도체를 만들 경우에도 맞춤형 설계를 할 수 있지만 신속성과 편의성이 떨어진다. 칩렛은 GPU, CPU, 메모리, 전력 및 통제제어장치 등을 필요에 따라 결합하면 되기 때문에 빠른 설계와 제작이 가능하다.
인텔과 AMD 등 반도체 제조사들은 칩렛을 이용한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텔은 올 하반기에 칩렛 기술을 이용한 14세대 CPU를 출시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자사 GPU 칩렛을 미디어텍의 차량용 단일칩시스템(SoC·시스템온칩)에 탑재한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TSMC는 오는 2025년까지 자사 칩렛 생산 공간이 2021년의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칩렛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경제성 확보가 우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WSJ에 따르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칩렛 설계가 대중적인 스마트폰 반도체가 아닌 4000달러 이상에 판매되는 애플 고급 PC 등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칩렛 시장은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이기도 하다. 중국 업체들은 세액공제와 보조금 지원을 등에 업고 칩렛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2021년 기준 중국이 반도체 조립, 테스트, 패키징 분야에서 전세계 설치 용량의 38%를 차지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업계 선두인 대만은 제외한 수치다. 그럼에도 JCET 등 중국 주요 기업들은 칩렛 기술을 기반으로 반도체 대량 패키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칩렛 기술을 통해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를 우회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중국 엔지니어들은 단일 첨단 반도체 성능을 따라잡기 위한 칩렛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적인 칩렛 표준인 ACG를 지난 3월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이 지난해 3월 결성한 칩렛 생태계인 'UCle'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으로 해석된다.
중국 기반의 TF인터내셔널 증권은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 입장에서 칩렛은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 병목 현상을 돌파할 수 있는 핵심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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