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빼고 다 좋다"…다들 모르고 지나친 호재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후반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전반전엔 순발력과 스피드가 중요했다면 후반전엔 단연코 체력과 지구력이 결정적입니다.
더 많이 더 빨리 올리느냐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느냐가 후반전의 핵심입니다. 결국 막판까지 잘 버티느냐가 관심입니다. 자칫 인저리 타임이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아니 연장전과 페널티킥까지 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깔딱고개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의 깔딱고개가 기다리고 있을 지 모릅니다.
다행히 그동안 몰아치던 분쟁 강풍이 멎었습니다. 연이어 중동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해묵은 앙숙 관계가 풀리면서 분쟁비용이 확 줄어들 전망입니다.
인플레라는 더위도 한 풀 꺾였습니다. 온도는 더 이상 올라기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고온 탓에 그동안 잠잠하던 산불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산사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깔딱고개에서 버티는 체력은 강해졌는데 자연재해는 멈추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깔딱고개에 선 인플레를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철천지 원수들이 앙금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외나무 다리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잇따라 평화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국 중재로 7년 만에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이번엔 미국이 힘을 쓴 덕분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국교 정상화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두 나라는 큰 틀에서 합의를 했고 세부 사항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 국교 정상화까지 9개월~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교 정상화 대가로 사우디에 무엇을 줄 지가 관건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 관계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각각 자국 내 수감자 5명을 서로 풀어주고 한국 내 이란 자금 동결 조치를 해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에 붂여 있던 이란 자금 60억달러(8조원)가 이란으로 넘어갑니다.
이란은 그동안 이 자금을 풀어줄 것으로 끊임없이 요구해왔습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이런 요청을 묵살하던 미국이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번 합의가 양국이 관계 정상화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다시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중동의 평화는 필수에 가깝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사우디와의 관계 악화로 미국의 입지가 약해진 대표적인 곳이 중동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중동에서 해빙 분위기가 확산하면 전 세계적으로 분쟁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쟁과 갈등이라는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건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호재입니다.
중동발 호재가 나오고 있지만 더 큰 분쟁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더 격화하고 있습니다. 원유와 곡물의 수출 항구가 몰려 있는 흑해 지역으로 확전되고 있습니다.
돈바스 지역을 되찾으려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으로 흔들릴 것 같았던 러시아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히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달 9~10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있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실상 첫 명실상부한 국제 외교전 참석입니다. 푸틴 대통령도 내년 3월 치러질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세계 무대에 다시 나설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입니다.
더 큰 상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입니다. 우선 지난달 미·중 고위급 회담 재개로 상황 악화는 막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나온 대 중국 투자 제한 조치도 이런 변화를 반영합니다. 지난해 10월 반도체 수출 통제와 비교해 훨씬 규제가 강도가 약했습니다. 해빙 분위기를 고려해 수위 조절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미·중 대결 구도는 변한 게 없습니다. 두 나라 상황 때문에 잠시 완급 조절을 한다고 봐야 합니다. 침체 일로에 있는 중국 입장에서 미국과의 대결 구도가 부담스럽습니다. 미국과 유럽이라는 시장을 잃어버린 중국은 어떻게든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합니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위기 속에서 다른 활로를 모색해야 합니다. 단체관광이라는 빗장을 푼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통령 재선에 인플레 전쟁도 걸려 있어 미국도 중국 리스크를 마냥 키울 수 없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더 밀착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디리스킹'(위험최소화)에 충실한 전략입니다. 세계의 시장인 미국이 세계의 공장인 중국 없이 살기 위해 미국 내 공장을 짓고 있지만 단기간 내 완성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방국과 동맹국을 중심으로 블록 범위는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오는 17일부터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도 동맹의 확대와 결속 강화라는 연장선에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 내에서도 분쟁 리스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매파의 입지가 줄어들고 비둘기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비둘기로 전향하는 인사들도 늘고 있습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은행 총재가 지난 7일(현지시간) "인플레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내년에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물가 상승률이 Fed 목표치인 2%가 되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언급한 점이 주목됩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실질금리가 오르면 그럴 수 있다고 한 것과 유사한 흐름입니다.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이 있는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도 확실한 비둘기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는 8일 "9월 FOMC 때까지 놀라운 데이터가 없다면 인내심을 갖고 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금리인상 사이클은 이미 끝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이 임명한 Fed 이사진은 "기다리겠다"는 소신을 펼치고 있습니다. 미니애폴리스와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올해 투표권이 있는 지역 연은 총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투표권이 있지만 중도파 또는 매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정도가 예외입니다.
대표적 매파 인사들은 따로 있습니다. 공화당이 임명한 Fed 이사과 올해 FOMC 투표권이 없는 지역 연은 총재들이 대부분입니다.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와 미셸 보우만 Fed 이사가 선봉에 있습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 등이 그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최근 들어 비둘기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Fed 내 이견이 존재해도 겉으론 결정은 만장일치로 나오고 있습니다. 결정문만 봐선 다양한 견해를 볼 수 없습니다. 그 부족한 점은 FOMC 의사록이 메우고 있습니다. 16일 오후 2시에 나오는 FOMC 의사록을 통해 여러 의견과 속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주연과 조연이 바뀌고 있습니다. 근원물가가 잠잠해지니 헤드라인 물가가 튀어 오르고 있습니다. 전쟁 등의 영향으로 들썩이는 유가와 곡물가 때문입니다.
국제유가는 7주 연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침체 가능성이 확인되거나 이란산 원유 공급이 늘면 판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심리적 저항선인 갤런당 4달러가 넘어서면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미국도 가만히 있기 힘듭니다. 현재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85달러 수준입니다. 게다가 유가와 곡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계절적 고비인 겨울을 맞이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 부담스럽습니다. 특히 유럽이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리도 뒤바뀌었습니다. 그동안 기준금리 전망에 따라 미 국채금리는 춤을 췄습니다. 그러나 9월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커지자 다른 요인에 의해 금리가 오르고 있습니다. 경기침체 확률이 줄어들고 채권 공급이 늘어난 게 큰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불안요인이었던 단기물보다 장기물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장기물을 사줄 매수세가 줄어 좀체 하락으로 방향을 틀지 않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빚에 허덕이며 부채 경제로 휘청이고 있습니다.
미국도 막대한 정부부채로 인해 공급이 확 늘어난 미 국채금리가 금융시장의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엑스트라에서 주연급으로 부상한 유가도 부담입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가운데 호재가 하나 생기면 숨어 있던 악재가 다시 도지고 있습니다. 이런 고질병을 잘 극복하느냐가 인플레 깔딱고개를 잘 넘어설 수 있을 지를 결정할 전망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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