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요약
- 중국이 WTO에서 개도국 특혜를 포기하겠다고 밝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전했다.
- 중국은 개도국 지위는 유지하지만 추가적인 특혜는 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결정이 미국의 비판을 피하고 무역협상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해석을 내놨다고 전했다.
리창 "WTO 특별대우 안 받아"
美와 협상서 걸림돌 해소 포석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에 부여하는 특별대우를 포기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한 지 6년 만이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앞두고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24일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유엔 80주년 특별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리창 중국 총리는 전날 뉴욕에서 열린 세계개발구상(GDI) 고위급 회의에서 "현재와 미래의 모든 WTO 협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특별·차등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차관은 공식 브리핑에서 "중국이 국내외 양쪽 정세를 모두 염두에 두고 대외적으로 내린 중요한 입장 선언"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의 '개도국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며 관련 국가들과 WTO 개혁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WTO는 개도국에 규범 이행 유예와 무역 자유화 의무 완화, 기술·재정 지원, 농업 보호 등 각종 특혜(SDT)를 제공하고 있다. 개도국이 누릴 수 있는 혜택만 15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개도국 지위에 관한 공식 기준은 없다. 가입국 스스로 개도국 지위를 선언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구조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1기인 2019년부터 중국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중국이 개도국 특혜에 힘입어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도 버티던 중국이 이번에 개도국 특혜를 포기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서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와 대중 제재로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한 뒤에 나온 결정"이라고 전했다. 중국에 우호적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SNS에 "중국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고 환영했다.
中, 美와 무역협상 앞두고 유화책…트럼프, WTO 힘빼기 계속될 듯
150개 개도국 혜택 적용 못받아…개도국 지위는 "유지" 논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혜택을 포기한 것은 미국과의 속도감 있는 무역협상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상당수 제조업은 물론 첨단산업에서 미국과 맞먹는 기술강국이 된 상황이어서 개도국 혜택의 필요성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하지만 개도국 지위 자체는 유지할 것이라고 선을 그은 만큼 미국이 주장하는 WTO 개혁에 얼마나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 "미국과의 무역협상 고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9년 중국 등 경제력을 갖춘 국가들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무역 특혜를 받고 있다며 관련 국가에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했다. 당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브라질 등이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버텼다. WTO는 개도국이 국내 생산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나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등을 할 수 있도록 우대 조치를 하고 있다. 개도국이 적용받을 수 있는 특혜 조항만 150여 개에 달한다. 중국이 2001년 WTO 가입 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배경 중 하나도 개도국 지위였다.
중국이 이번에 개도국 혜택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미국에 보내는 유화책으로 해석된다. 관세전쟁으로 미국과의 교역이 급감하면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실익이 적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과 '세계의 시장' 시기를 지나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전기자동차·인공지능(AI)·로봇 부문에선 이미 선진국을 제칠 정도다. 이런 가운데 굳이 개도국 지위를 남용해 부당한 무역 혜택을 받는다는 미국의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 측면도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해 온 개도국 혜택 포기를 통해 무역협상에 속도를 내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 美에 맞선 '다자 무역 리더' 노렸나
다만 중국은 개도국 지위는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차관은 24일 공식 브리핑에서 "다자간 무역체제를 확고히 수호하고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적극 이행하는 중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제사회에 강조하고 있는 외교 전략 중 하나다.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 지원과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질서 추구 등이 핵심이다.
리 차관은 "국제사회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강해지고, WTO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이 같은 배경에서 중국은 WTO 협상에서 새로운 특혜와 차별적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개도국 특혜는 요구하지 않되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WTO를 유지하려는 계산으로 볼 수 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블룸버그통신에 "다자 무역체제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인 헌신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WTO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의 개도국 혜택 포기에도 미국의 WTO 무력화 시도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WTO가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고 166개 회원국의 무역정책을 규제하기 위해 출범했다고 하지만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도,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미국은 이 체제의 대가로 제조업 일자리와 경제적 안정을 잃었고 다른 국가들은 필요한 개혁을 단행하지 못했으며, 가장 큰 수혜자는 국영기업과 5개년 계획을 내세운 중국이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트럼프 집권 1기 때 WTO 분쟁 해결 기구인 패널이 갈등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며 상소위원 선임을 거부했고, 현재 패널 기능은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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