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훈종의 알쓸₿잡 [14]
○Web 3.0이란?
암호화폐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요즘 '웹(Web) 3.0'이란 단어를 많이 듣는다. 지난해와 올해 암호화폐 시장의 메타였던 디파이(탈중앙화금융)와 NFT(대체불가능토큰)를 이을 차세대 메타로 지목된 것이 바로 웹 3.0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3세대 인터넷'쯤 된다.
구분하자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은 2세대 인터넷이다. 원래 인터넷은 정적인 웹페이지 형태라 글을 읽거나 재미있는 사진을 보더라도 '좋아요'를 누른다거나 댓글을 다는 등 상호작용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유튜브 등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플랫폼 서비스들이 생겨나 우리, 즉 사용자에게 훨씬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 준다. 이제는 '좋아요'나 댓글뿐만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2세대 인터넷에도 문제점이 있다. 위에 열거한 기업들이 전 세계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실시간으로 추적당하고 있다.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이번 주말에 '차박 캠핑'을 가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페이스북 앱을 열어본 적이 있는가? 십중팔구 캠핑 도구나 차박 캠핑장 광고가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광고를 '더 잘 타게팅'하기 위해 마케팅 회사에 당신의 일상 대화까지 판매하고 있다.
3세대 인터넷은 이런 문제를 탈중앙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사용하는 플랫폼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어 기업에 넘기는 대신 인터넷 ID라는 공용 인터넷 신분증 같은 것을 만들어 모든 웹사이트에 로그인하는 것이다. 괜찮지 않나? 마치 집안 모든 가전제품을 하나의 리모컨으로 켜고 끌 수 있는 것처럼 편리할 테니 말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저커버그
인터넷판 공용 리모컨을 만들 수 있는 근본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좀 더 정확히는 블록체인의 특성 중 하나인 분산 원장이라는 시스템이 그렇다. 분산 원장은 중앙서버나 중앙관리자의 제어 없이 네트워크의 참여자(노드)들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계속 동기화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페이스북에 따로 계정을 만들지 않아도 로그인하고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그뿐일까? 점심시간에 친구와 나눈 차박 캠핑에 대한 광고로 피드가 도배되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페이스북의 서버에 내 정보가 저장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데 정작 이 문제를 제일 잘 알고 있을 당사자인 페이스북(현 '메타')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본인은 3세대 인터넷의 모습을 약간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사명까지 메타로 고쳐가며 자신들이 메타버스 회사임을 천명하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플랫폼의 형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럴 계획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메타에서 2018년 신설한 블록체인 전담 부서는 자기들 자신의 데이터 독점 권력을 분산하는 블록체인을 개발하기보다는 엉뚱한 곳의 권력을 분산하려 했다가 지금 정치권과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메타의 암호화폐 프로젝트인 '디엠(리브라)' 얘기다. 디엠은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를 대체하고 은행 계좌가 없는 수십억 명에게 지불 네트워크를 제공한다는 원대한 출사표를 던졌지만 2년이 넘도록 아직도 자체 암호화폐를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식 출시를 하기도 전에 7개의 파트너사가 탈퇴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디엠 프로젝트를 이끌던 데이비드 마커스 메타 부사장까지 며칠 전 사표를 냈다.
국가가 독점하던 발권력을 차지하려 했던 저커버그의 계획은 일단 실패했다. 어쩌면 그는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 수도 있다. 자신들의 플랫폼 권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남(국가)의 권력만 빼앗으려 했으니 말이다.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잭 도시
트위터와 스퀘어의 창업자인 잭 도시는 저커버그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3세대 인터넷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는 지난 5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1'에 연사로 참여하여 필요하다면 트위터와 스퀘어를 떠나 비트코인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로부터 7개월 뒤인 지난주 정말로 트위터의 최고경영자(CEO)직을 사임했다.
트위터를 나온 잭 도시는 곧바로 스퀘어의 사명을 '블록(Block)'으로 바꾸고 스퀘어의 비트코인 전담 사업인 '스퀘어 크립토(Square Crypto)'는 '스파이럴(Spiral)'로 이름을 바꿨다. 다른 알트코인들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애정만 드러내 온 그의 행보로 볼 때 결제 솔루션 기업인 스퀘어의 기존 사업 인프라를 이용해 비트코인 생태계 발전에 '올인'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의 행보는 상당히 빠르다. 지난달 말에는 기존 디파이처럼 사용자의 익명성은 보장하면서도 비트코인과 현금간 거래를 할 수 있는 'TBD'라는 탈중앙 거래소의 백서를 공개했다. 은행 등 전통 금융기관들을 TBD의 노드로 참여시켜 사용자 신원을 최대한 익명으로 보호하면서도 법정화폐 입출금 및 거래를 가능케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어서 이달 7일에는 '라이트닝 개발자 키트(Lightning Development Kit)'를 스파이럴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는 비트코인 송금과 결제를 번개처럼 빠르게 만들어주는 레이어 2 솔루션이다. 만약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비트코인 결제 기능을 탑재하고 싶다면? 기존에는 복잡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스파이럴의 라이트닝 개발자 키트를 이용하여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자사 홈페이지나 앱에 연동시킬 수 있다.
잭 도시는 다가오는 3세대 인터넷의 주인공으로 비트코인을 낙점했다. 비트코인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1만 개가 넘는 노드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동기화하고 있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완전히 탈중앙화된 네트워크이다. 주인이 없으므로 그 어떤 국가의 정부도 없앨 수가 없다. 각국 정부의 반대에 막혀 여태 출시조차 못 하고 있는 디엠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디엠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정부가 규제할 수 있는 주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즐겨 쓰는 유튜브, 페이스북, 넷플릭스가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등장한다면 어떨까? 필자가 서두에 소개한 것처럼 사용자가 플랫폼마다 일일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플랫폼에서 하는 모든 행동을 감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웹 3.0이 등장하게 된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웹 3.0을 선점하기 위한 두 실리콘밸리 천재의 경쟁은 이제 막 시작했다. 하나는 내가 혼자 심판도 보고 해설도 하고 선수로도 뛰겠다고 나섰고, 다른 하나는 유명한 심판과 캐스터를 데려왔으니 자기는 선수로 뛰는 데만 전념하겠다고 나섰다.
필자는 인터넷의 미래를 예견할 정도의 혜안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안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업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전반전은 잭 도시의 승리다. 만약 아직 경기가 열린 줄도 몰랐다면 이제부터라도 앞으로 펼쳐질 후반전과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를 흥미진진하게 관람해 보자. 그리고 후반전 중간에라도 누가 이길 것인지 예상이 된다면 꼭 미리 투자하자. 먼 훗날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는 그때 거기에 투자안하고 뭐했어?"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블루밍비트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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