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 주인공 마이클 버리, 미국 증시 하락장에 베팅
S&P500, 나스닥100 풋옵션 대량 매입
주식 시장 거품 꺼지며 약세장 도래한다는 주장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마이클 버리의 사이언 매니지먼트가 미국 증시 붕괴에 16억 5000만달러(2조 1400억원)를 베팅했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100지수 풋옵션을 대량 매수한 것이다.
두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에 정반대 포지션을 취한 것이다. 올 상반기 기술주 호황으로 자금 규모가 커진 ETF 시장의 향방이 주목된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버리가 이끄는 사이언 매니지먼트는 올 2분기 S&P500과 나스닥 100지수 약세장에 16억 5000만달러를 베팅했다. 사이언 매니지먼트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SEC 공시에 따르면 사이언 매니지먼트는 올 2분기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인 'SPDR S&P 500 ETF 신탁(티커명 SPY)' 풋옵션을 8억 6600만달러어치 사들였다. 나스닥 100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시리즈1(QQQ)' 풋옵션도 7억 9300만달러가량 매수했다. 포트폴리오의 90%가량을 미국 증시 붕괴에 건 것이다.
풋옵션은 하락장을 가정하고 미래 특정 시점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주로 하락장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매입하는 상품이다.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시장 가격보다 높은 정해진 행사가격에 매도하면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버리 CEO가 매입한 풋옵션에 대한 행사가격 및 만기일은 밝혀지지 않았다. 숏(매도) 포지션을 통해 차익 실현을 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버리 CEO가 2008년 금융위기처럼 시장 붕괴에 대한 예측으로 수익을 올렸던 이력을 감안하면 하락장이 도래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버리의 투자 내용이 공개되자 시장이 들썩였다. 버리 CEO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정확히 예측해서다. 2008~2009년 당시처럼 미국 증시가 반토막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이유다.
버리의 포트폴리오를 본뜬 ETF도 덩달아 인기다. 대표적인 ETF는 S&P500 약세장에 투자하는 '프로셰어즈 숏 S&P500 ETF(SH)'와 '다이렉션 데일리 S&P500 베어(SPDN)' 등이다. 두 ETF 모두 S&P500 지수가 하락하게 되면 수익률이 올라가도록 설계됐다. 버리의 투자 내용이 공개된 뒤 두 ETF는 각 1% 이상 상승했다.
나스닥 지수 하락장에 투자하는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숏 QQQ(SQQQ)'에 대한 투자 수요도 확대했다. 이날 SQQQ 가격은 3.18% 상승했다.
하반기에는 상반기 주가 흐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됐다. 올해 들어 S&P500을 추종하는 'SPDR S&P500 트러스트 ETF(SPY)'의 수익률은 16.3%를 기록했다.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QQQ)'는 38.5%로 집계되며 상반기 기준으로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공지능(AI) 호황으로 기술주가 급등한 덕이다.
시장에선 주가 상승세가 과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 수익에 비해 주가가 과대 평가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과 중국 경기 둔화 등도 약세 요인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11번의 금리 인상 시기에서 침체를 완벽하게 비껴간 경우는 단 4차례뿐이다.
반면 버리 CEO가 오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증시를 두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버리 CEO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주식을 매도하라"라고 권고한 바 있다. 다만 주식 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3월 말에 "매도하라는 조언은 잘 못 됐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버리 CEO는 인덱스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 투자에 대한 위험성을 2019년부터 계속 강조해왔다. ETF 시장이 개별 주식보다 비탄력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시장 가치를 과대평가한다는 주장이다.
하버드대와 시카고대의 공동 연구 보고서인 '금융 변동의 원인 탐색'이란 제목의 논문은 버리 CEO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ETF의 특성상 현금 보유 기간이 짧은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다른 자산을 투자하기 위한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논문에 따르면 패시브 투자의 경우 채권 등 다른 형태의 자산으로 자금을 이동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평균적으로 3개월간 주식 투자금의 0.6%만 채권으로 전환된다.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헤지펀드 자금도 5% 안팎이다. 위기가 도래했을 때 쉽사리 자산을 대량 매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매수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버리 CEO도 이 논문에 나온 단점을 인용하며 "주식 시장 전체에 1달러를 투자하면 시장 가치는 5배 부푼다"고 강조했다. 지수 투자가 시장 가치를 과대평가한다는 지적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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