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경고가 이틀 연속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줬습니다. 지난 8일 엔비디아가 오는 24일 발표할 2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시장이 장중 내림세로 전환했었습니다. 엔비디아는 게임 수요 감소로 인해 매출이 줄었을 뿐 아니라 신성장동력인 데이터센터 매출 증가세도 둔화했습니다.
9일(미 동부 시간) 새벽에는 마이크론이 가이던스를 낮췄습니다. 광범위한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으로 인해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며, 8월로 끝나는 회계연도 4분기와 그다음 1분기 등 향후 2개 분기의 가이던스를 낮췄습니다. 이번 분기 매출이 회사 측이 이전에 내놓았던 추정치 68억~76억 달러의 하한선 이하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월가는 72억8000만 달러를 예상해왔죠.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흐로트라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난번 실적 발표와 비교했을 때 수요 감소가 소비자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산업 및 자동차를 포함한 시장의 다른 부분으로 확대되면서 더 약세를 보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마크 머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강하지만 서비스 운영자들이 거시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해 재고 수준을 낮추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최근 자본투자 축소 가능성을 시사했죠. BMO캐피털마켓의 엠브리시 스리바스타바 애널리스트는 "더 약해진 PC와 스마트폰 시장의 재고 조정 외에도 클라우드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시장에서도 재고 조정과 수요 감소를 겪고 있다"라면서 "우리는 반도체 회사가 그동안 클라우드 등의 수요 감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헤지펀드 사토리펀드의 댄 나일스 설립자는 "메모리 반도체는 대부분의 IT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부품일 뿐 아니라 실시간 경기 지표이기도 하다"라며 "지난 5월 초 긍정적 전망을 밝혔던 마이크론이 가이던스를 낮춘 건 팬데믹 때 급증한 PC, 스마트폰 수요가 얼마나 빨리 급락 중인지 보여주는 신호"라고 지적했습니다.
마이크론은 -3.74% 떨어졌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에 속한 30개 주식 모두 급락했습니다. 특히 마이크론이 올해 새로운 공장과 장비에 대한 자본 지출은 1년 전보다 '의미 있게' 줄일 것이라고 밝힌 여파로 램리서치(-7.88%)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7.58%) 등 장비 주 하락 폭이 컸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팬데믹 때 공급망 혼란으로 기업들은 협력업체에 두 세 번씩 같은 주문(double, triple ordering)을 내는 일이 많았는데, 갑자기 공급망 혼란이 해소되고 소비가 줄면서 예상하지 못한 재고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제품 가격 하락을 부를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제 그나마 이날 오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서명하면서 장 후반 하락 폭을 일부 줄였습니다.
2주 전 인텔의 참담한 2분기 실적과 AMD의 PC 매출 감소 경고에 이어 엔비디아, 마이크론의 가이던스 하향이 잇따르자 기술주 전반의 분위기가 악화했습니다. 반도체 수요 감소는 IT 제품 및 서비스 전망 악화를 의미합니다. 오안다의 에드 모야 전략가는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은 공급망 혼란을 헤처나가는 데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보는 두 개의 큰 기업"이라며 "이런 게 기술주 전반에 실제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알파벳(-0.54%), 메타(-1.01%), 아마존(-1.13%), 테슬라(-2.44%) 등 대표적 기술주들이 상당수 내린 배경입니다.
이날은 나쁜 실적을 내놓는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노바백스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수요 부진을 이유로 매출 가이던스를 하향 조정한 후 29.64% 폭락했습니다. 소비자 대출 회사인 업스타트도 2분기 이익과 매출이 모두 추정치를 밑돌았고 11.84% 하락했습니다. 노르웨이지안크루즈는 예상보다 큰 분기 손실을 보고한 후 10.57% 급락했습니다. 객실 점유율이 내년까지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여파로 같은 크루즈 주뿐 아니라 항공 주 등 여행 주 전반의 하락세를 촉발했습니다.
마이크론이 기술주 전반을 짓누르면서 나스닥은 1.19%나 떨어졌습니다. 다우와 S&P500 지수의 내림 폭은 그보다는 적었습니다. 각각 0.18%, 0.42% 내렸습니다.
마이크론의 발표를 빼면 시장은 전반적으로 조용했습니다. 10일 아침 발표되는 7월 소비자물가(CPI)를 기다린 것입니다. S&P500 지수는 기술적 저항선으로 가득한 4200선과 기술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4000선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노무라에 따르면 그동안 시장 상승에 힘을 실어줬던 CTA(Commodity Trading Advisor) 펀드의 포지션도 채권과 주식, 원자재 전반에 걸쳐 거의 중립 수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주식과 채권에서 공매도 포지션을 줄이느라 이들 자산을 매수했는데, 이제는 그런 수요가 사라진 셈입니다.
7월 CPI에 대한 컨센서스는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8.9%로 예상되던 헤드라인 수치는 8.7%까지 내려왔습니다. 지난 6월 9.1%에서 확연히 떨어진다는 예상이지요. 특히 전월 대비로는 6월 1.3% 상승세가 0.2% 증가세로 꺾일 것으로 봅니다. 0.2% 증가는 2021년 초 이후 가장 적은 상승 폭이 될 것입니다. 에너지 가격 하락 덕분이죠. 개스버디에 따르면 이날 미국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처음으로 갤런당 4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서부텍사스원유도 배럴당 90달러까지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에너지와 음식물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6.1%로 6월 5.9%보다 높아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주거비가 전달보다 0.7~0.8% 오르면서 상승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뜨거운 여행 수요로 호텔 숙박비도 올랐을 겁니다. 다만 치솟았던 항공료는 하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골드만삭스는 근원 CPI가 전월 대비로는 0.48% 올랐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6월의 0.7%보다 낮은 것입니다.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이미 휘발유 가격에서 드러난 물가 하락은 주식 등 자산 시장 가격에 반영이 되어 있고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을 멈추려면 근원 물가가 몇 달간 하락하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만약 증시가 랠리하고 회사채 스프레드가 좁혀진다면 이는 Fed가 더 강하게 긴축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르디아의 데인 체코프 애널리스트는 "Fed는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라도 물가 압력이 다시 높아지지 않도록 장기간 금융여건을 빡빡하게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앨리의 린지 벨 전략가는 "투자자들이 이미 Fed가 9월에 75bp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예상과 비슷한 수치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면서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전에 8월 고용보고서와 9월 CPI를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시장 변동성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미국의 2분기 생산성은 연율 4.6% 감소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단위 노동 비용이 10.8%나 증가한 탓입니다. 이는 1982년 이후 가장 큰 폭의 분기 증가율입니다. 생산성이 올라가면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높이지 않고도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성은 떨어지고 단위 노동 비용이 커진다면 기업이 더 낮은 이윤을 견디거나 더 높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생산성 감소는 인플레이션 요인입니다. 웰스파고의 사라 하우스 이코노미스트는 "생산성 향상 추세가 팬데믹 이전보다 악화하였고, 단위 노동 비용의 급증으로 인플레이션을 2%까지 낮추려는 Fed의 도전이 더욱 어려워졌다"라고 밝혔습니다.
생산성이 급락하자 채권 금리는 상승했습니다. 2년물 금리는 오후 5시께 전날보다 5.4bp 오른 3.259%에 거래됐습니다. 10년물은 2.6bp 상승한 2.785%를 기록했습니다. 2년/10년 수익률 곡선은 -49bp까지 벌어졌습니다.
여전히 월가는 지금이 "바닥이다", "아니다"로 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시장이 아직 바닥을 찍지 않은 이유를 몇 가지 내놓았습니다. 제라드 우다드 전략가는 "S&P500 지수가 6월 저점에서 13% 상승했지만 ‘진 바닥을'을 선언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더 많은 하락을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① 완화된 금융여건은 더 강화된 긴축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② 시장 바닥을 선행하는 지표(실업률 상승, Fed의 금리 인하 시작, 이익 추정치 하락, 2년 만기 국채 금리의 최소 50bp 하락)의 약 30%만이 충족됐다. 바닥을 찾으려면 지표의 80% 이상이 충족되어야 한다.
③ 인플레이션은 Fed가 매파적 경로를 완화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높다. Fed는 적어도 몇 차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며, 더 높은 금리는 일반적으로 주가에 역풍을 일으킨다.
④ 투자자 항복 조짐은 거의 없다. 2022년 들어 현재까지 뱅크오브아메리카 고객은 미국 주식의 순매수자로 남아있다.
씨티그룹은 보고서에서 실적 부진과 경제 성장 둔화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비정상적으로 자신들이 맡은 주식에 비해 낙관적이라며 이를 적신호로 풀이했습니다. 약간의 유포리아(도취감, 행복감)예 빠져있다는 것이죠. 자신들이 만드는 글로벌 셀사이드 지수(index of global sell-side ratings)가 2000년과 2007년에 봤던 '강세장 정점'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은 닷컴버블 붕괴, 2007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약간은 중립적입니다. 데이비스 코스틴 미국 주식 전략가는 여전히 미국 경제가 올해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S&P500 지수는 4300으로 마감되어 한 해 전체로는 9.8%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S&P500 지수가 3150으로 무려 34% 하락해서 한 해를 끝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47년 이후 경기 침체가 발생했을 때 평균 S&P500 지수의 하락 폭인 30%보다 더 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JP모건은 낙관적입니다. 미슬라브 마즈테카 전략가는 "데이터 악화가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단계에 진입했다"라며 "약한 데이터는 Fed의 비둘기파 전환을 끌어낼 것이고, 경기 둔화는 우려했던 것보다 덜 깊은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를 10가지나 나열했습니다.
① 주식 밸류에이션은 매력적이다. 절대적으로도 그렇고, (낮은) 채권 금리에 비해서도 그렇다.
② 기관 투자자 사이에 현금 수준은 높고, 이제 그 돈을 운용하기 시작하려는 욕구가 있다.
③ 투자자 심리는 현재 너무 약하다(이는 종종 주식에 대한 강세 지표로 간주됨).
④ Fed의 매파 성향이 정점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
⑤ 미국 달러는 올해 고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⑥ 경기 둔화는 심각한 침체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⑦ 고소득 소비자는 소비력을 유지하고 있다.
⑧ 월가 애널리스트의 기업 실적 추정치가 공격적으로 낮춰질 가능성은 작다.
⑨ 팬데믹 때 축적된 과도한 저축은 여전히 소비자 지출에 완충재로 작용하고 있다.
⑩ 세계 경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
이런 논쟁은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나올 CPI는 굉장히 중요한 인플레이션 데이터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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