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사태'가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을 강타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수십조원에 달했던 코인이 휴지 조각이 됐습니다.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도 한파가 불어닥쳤습니다. 하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2019년 이후 주간 최고 상승 폭을 기록하는 등 잠재된 폭발력은 여전합니다. 신흥국 웹 3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전용 펀드를 출시한 해시드 이머전트의 이탁근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나, 루나 사태 이후 블록체인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들어봤습니다.
가상화폐 투자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을 활용해 블록체인 기반 웹 3.0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른바 '웹 2.5' 스타트업이다.
이탁근 해시드이머전트 대표는 "신흥국에선 휴대폰은 있어도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신흥국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블록체인 기술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7일 서울 강남역 인근 해시드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수억명의 신흥국 사람들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려면, 인터넷을 접목한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웹 2와 웹 3의 중간 지점인 웹 2.5 인프라가 확대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해시드이머전트는 신흥국 블록체인 초기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이다. 한국에서 시작해 글로벌 웹3 투자사로 성장한 해시드가 2021년 싱가포르에 설립한 신흥국 전용 투자사다. 8년간 인도 투자·창업 업계에서 일한 이 대표를 비롯해 인도 방갈로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싱가포르 등에 기반을 둔 16명의 현지 멤버로 구성돼 있다.
해시드이머전트는 지난해 초 4000만달러(약 500억원) 펀드를 결성했으며, 현재 절반가량 펀드레이징을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25개 회사에 투자했으며 90%가 인도인 창업자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주요 투자 분야는 △엔터테인먼트 △금융 △사회 관련 프로젝트다.
A. 신흥국에선 개인들이 휴대폰은 있지만 은행 계좌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블록체인이 필수인 시장이다. 하지만 탈중앙화 자체로는 스케일업이 힘들다. 구글의 지메일 없이 수억명에게 웹3용 메타마스크 지갑을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웹 2.5는 점진적인 시도다. 탈중앙화, 스케일업, 보안 3가지를 기반으로 한다. 블록체인 기반 웹 3은 소수의 '고래(가상화폐를 많이 보유한 투자주체)'가 움직이는 시장이다. 하지만 신흥국엔 이런 급진적인 고래는 거의 없다. 오히려 블록체인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이 많다. 해시드가 신흥국 전용 블록체인 투자사를 만든 이유다.
A. 사실 펀드 출시할 필요 없이, 자체 토큰으로 얼마든지 실험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시드는 가상화폐 '고래'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투자자다. 웹3 생태계에 인터넷, 게임, 금융 분야 대기업을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시켜, 신흥국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적용 사례를 만들려는 것이다.
A. 올 초에 투자한 아프리카 스테이블 코인인 '네스트코인'이 대표적이다. 현재 아프리카 국가 간 결제는 달러로만 할 수 있는데, 각국의 환율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환전 비용이 크다. 크립토 자산을 활용해서 아프리카의 중소기업의 신용(크레딧)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선 지아(JIA)라는 팀도 있다. 금융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A. 주로 게임 이용자들의 경험(DX)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인도인 파리스 초드하리가 2020년 설립한 글립(Glip)이 대표적이다. 인도 게임 비디오 편집 플랫폼으로 시작했지만, 지난해 초 경기가 꺾이면서 수익화를 위해 웹3 게임을 배포하는 '게임 디스커버리 플랫폼'으로 피보팅(사업모델 전환)했다. 인도 게이머에 접근하기 위해 이곳에서 게임을 소개하고 있다. 이용자 수만 400만~500만명에 달하는 최대 규모 게이머 플랫폼이다.
A. 탈중앙화된 자율조직(DAO)이 법적 지위를 갖도록 돕는 변호사 DAO '칼리'에 투자했다. DAO도 현실 세계에서 법인을 세워야 한다. 크립토를 모아서 건물을 사려고 해도, 매도인이 현금을 원한다면 DAO를 대표하는 법인을 세우고 계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A. 인도 창업가가 설립한 회사들에 투자하지만, 인도 법인은 아니다. 본사는 싱가포르, 미국 델라웨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위치했다. 웹 3은 규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한 나라에 베팅할 수 없다. 해시드가 신흥국 시장을 선택한 이유다. 인도 웹 3 인재 규모는 전 세계 3위로, 현재 450개 이상의 웹 3 스타트업이 있다. 이중 60%는 이미 해외시장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 4월까지 인도의 웹3.0 생태계에 집행된 투자금액은 13억 달러(약 1조8000억원)으로 조사됐다.
A. 인도인 창업자는 3가지 특징이 있다. 인도 상위권 대학이 다 공과대학이기 때문에 '테크 네이티브'이고 집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잉글리시 네이티브'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헝그리 앤 앰비셔스(배고프면서 야심만만함)' 하다는 점이다. 인도는 IT 서비스로 산업이 시작한 만큼, 글로벌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어하지만 웹 2에선 뒤처졌다. 하지만 웹 3는 인도에 유리한 판이다. 글로벌 블록체인 폴리곤도 인도인이 창업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나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는 이민자가 아니라,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최고경영자(CEO)가 된 사람들이다. 인도 창업가 입장에선 학교 선배들이 글로벌 기업에 포진된 것인데, 야심이 클 수밖에 없지 않겠나.
A. 인도 스타트업 생태계는 2018년부터 5년간 100개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탄생시키며 전 세계 3위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투자 한파로 인도 스타트업 업계도 위축됐다. 기업가치(밸류에이션)는 절반 이상 깎였다. VC의 투자집행 규모는 지난해 209억달러로, 전년도의 338억달러 대비 38% 줄었다. 하지만 드라이 파우더(미소진 투자금)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41억달러 규모 펀드가 조성돼, 2021년 상반기의 3배 이상을 기록했다.
A. 엔젤 투자자가 지갑을 닫으면서 극초기 투자펀드에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강세장에선 기업가치 100억원 이하인 곳을 찾기 힘들었지만, 최근 50억원 밑으로 나온 초기 기업도 등장했다. 위대한 기업은 '베어마켓(약세장)'에 나오는 법이다. '게임체인저'가 될 만한 '제2의 배달의 민족' 같은 회사가 나올 기회가 커졌다. 또 베어마켓에선 기회적으로 창업하는 어중이떠중이가 사라지기 때문에, VC들도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다. 게다가 미국 실리콘밸리 IT기업에서 대규모 대량 해고가 진행되면서 많은 IT 인재들이 인도 창업 생태계로 돌아오고 있다. 이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다른 점이다.
A. 루나는 알고리즘으로 커런시(화폐)를 만들고자 하는 큰 실험이었다. 대표의 일탈과는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 루나 사태 이후 바이낸스 같은 제도권 블록체인 거래소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크립토 자금들이 탈중앙화 거래소(Dex)로 옮겨가고 있다. 웹 2.5 인프라가 확대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규제 범주에 있으면서도 블록체인 생태계를 키우는 가교 역할이 필요하다.
A. 물론이다. 프로덕트를 검증하지 않고 빠른 회수를 목표로 토큰을 발행한 곳들은 힘들다. 불장 때는 토큰 상장만 하면 다 올랐다. 좋은 프로젝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토큰 거래소도 기준을 낮춰가며 모두가 토큰 출시에 혈안이 됐다. 하지만, 진성 커뮤니티가 없는 곳들은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모여든 이용자가 진성인가, 단순히 토큰 수익을 노린 것이냐가 가른다. 결국 유저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 주느냐가 핵심이다. 블록체인 시장도 투자 혹한기를 거치면서 진성 커뮤니티를 확보한 곳들이 나올 기회가 생겼다.
A. 지난 2년 동안 웹 3 게임 프로젝트에 수조 원의 투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세쿼이아캐피털이 주도하고 해시드 이머전트가 투자한 회사 중에 메이헴(Mayhem)이 대표적이다. 내년 초부터 인 게임 아이템 NFT가 나오기 시작하면, 거래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제2의 펍지'가 어디가 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게임 아이템을 NFT로 발행하는 곳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도 NFT로 발행하려는 회사들도 있다. NFT로 게임을 발행하면 2차 거래에서도 소유권을 보증하고 원작자에게 수익을 돌려줄 수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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