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파이 피해자금 100% 지원 약속해놓고
피해자 청구권 사전 동의 없이 헐값 매각
사실상 돌려막기…"손실액 수백억 추정"
금융당국 "불법 행위 막아야…철저히 검토"
사진=김민주 블루밍비트 디자이너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GOPAX)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바이낸스가 고팍스 피해자들의 자산 청구권을 액면가의 절반도 안되는 금액에 팔아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바이낸스는 지난해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 투자자들의 자금 인출 중단 피해금(당시 약 700억원) 100% 보상을 약속했다. 대신 고팍스 주식을 시가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그런데 바이낸스가 자사 자금으로 피해금을 보상한 것이 아닌, 피해자들의 자산 청구권을 헐값에 팔아 보상 대금을 지급한 정황이 포착됐다. 사실상 '부채 돌려막기'를 한 것.
이 과정에서 바이낸스가 피해자들의 자산 청구권을 매각한 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시세가 급등해 피해 규모는 오히려 늘어났다. 고파이 부채액은 기존 상환분을 제외하고서도 현재 기준으로 약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체 기금으로 피해금 보상한다더니…투자자 청구권 '몰래 매각' 정황
바이낸스-고팍스 인수 거래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 A씨는 27일 블루밍비트에 "바이낸스(현 고팍스 이사회)가 지난해 8월 2차 고파이 투자자 피해자금 분배 재원 마련을 위해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의) 자산 청구권을 이미 팔아버렸다"라고 밝혔다.
제네시스는 고팍스가 운영하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 투자자들의 자금이 묶여 있는 곳이다. 지난주 미 법원은 제네시스의 파산 보상안을 승인했다. 제네시스 측은 약 30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채권자금 중 77%를 채권자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고팍스와 마찬가지로 제네시스에 자사 예치 서비스 자금이 묶였던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제미니는 "제네시스의 파산 보상금을 활용해 피해자 자금 97%를 이달 말부터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고팍스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고팍스 이사회(바이낸스)는 작년 8월 2차 피해자 자금 분배 당시 해당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 답변할 수 없다고 숨겼으나, 이는 제네시스 자금 청구권을 헐값에 매각해 충당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특히 바이낸스는 고팍스의 제네시스 자산 청구권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청구권은 당시 시세로 약 7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가상자산 시세가 급등해 고팍스는 결과적으로 최소 수백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바이낸스는 당초 자사의 산업회복기금(IRI)으로 고팍스 피해자금을 충당하기로 약속했으나 IRI는 1차 피해금(약 150억원) 지급에만 사용됐다"라며 "이후 2차 지급부터는 제네시스 청구권을 제3자에 싸게 팔아 얻은 비트코인으로 지급했고, 나머지 피해금 50%는 고팍스 인수를 완료한 이후에 지급하겠다고 미루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블루밍비트가 제네시스 청구권 판매 여부에 대해 고팍스에 질의하자 고팍스 측은 "이사회에서 IRI 투자를 통해 고파이 피해자금을 보전하기로 결정한 만큼 청구권에 대해서는 따로 확인하고 있지 않다"라며 "피해자 보상금 100% 지급을 위해서는 바이낸스와의 인수 계약을 완료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가상자산사업자 변경 신고, 원화 거래소 지위 유지를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싼값에 구주 인수해놓고 투자자들에 부채 전가…책임감 없는 행위"
바이낸스는 고팍스 구주를 인수할 당시에도 '고파이 피해금 100% 지급'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시장가 대비 터무니 없는 가격에 구주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바이낸스는 고팍스 모기업인 스트리미가 2015년 신한은행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았을 당시보다 더 낮은 가격에 고팍스 경영진의 구주를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해당 구주 매각 대금은 아직도 집행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고파이 피해금 100% 지급을 조건으로 걸었지만, 계약상 지급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이낸스가 나머지 피해금 지급 조건으로 건 '고팍스 인수 계약 완료'가 성사되기 전까지, 피해자들은 미 법원이 제네시스 파산 보상안을 승인했음에도 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더불어 올해 2월부터 고팍스가 고파이 투자자들에게 채무금의 주식 출자 전환을 요청한 건에 대해서도 바이낸스가 책임져야 하는 부채를 피해자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초부터 가상자산 상승장으로 인해 고파이의 부채(비트코인 등 가상자산)도 계속 불어나게 되자 고팍스는 채권자들에게 채권액 확정 및 채권액 출자전환을 요청했다. 고파이 부채로 남아있는 가상자산을 원화 시세(2023년 12월 31일 자정 기준)로 확정하고 잔여 부채는 고팍스 운영사인 스트리미 주식(주당 7만242원)으로 전환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제네시스 파산 당시 고파이의 부채액은 원화 기준 약 700억원으로 1, 2차 지급을 통해 돌려준 약 50%를 제외한 나머지 약 350억원은 2023년 말(비트코인 4만5000달러) 약 640억원으로 급증한데 이어 이날 현재(비트코인 6만9000달러) 기준 약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블루밍비트는 고파이 피해자들의 '자산 청구권 돌려막기 정황'에 대해 바이낸스에 사실 확인 및 해명을 요청했으나, 바이낸스 측은 "현재 상황에서 공유해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라고 답변했다.
금융당국 "바이낸스-고팍스 인수 건, 불법행위 막기 위해 철저히 검토"
금융당국은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를 위해 고팍스가 신청한 임원변경 신고 서류 등을 자금세탁을 비롯한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특정금융정보법상 임원변경 신고는 자금세탁 방지, 법 질서 확립, 불법 행위 방지 등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해 결정한다"라며 "바이낸스와 고팍스 간 거래가 이를 충족하는지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계약 사항들 중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는 듯 하지만, 이미 당사자들끼리 주식 인수 거래 체결을 한 뒤 금융위에 임원변경 신고 신청을 했다"라며 "특금법을 기반으로 철저하게 불법적 문제가 있는지 살피면서 신고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팍스는 지난해 3월 바이낸스 측 인사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의 등기임원 변경 신고서를 금융위에 체출했으나 금융위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바이낸스 기소 등을 이유로 임원의 적격성, 바이낸스의 자금세탁 의혹 등에 대한 소명자료를 요청하면서 신고 수리를 보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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