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이 앞으로 유럽연합(EU)에 천연가스 공급을 계속 제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U의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외신 보도에 따르면 가스프롬은 독일 에너지기업 유니퍼 등 몇몇 EU 고객사들에 지난 14일 서한을 보내 ‘불가항력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은 천재지변을 비롯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계약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보상 등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조치다.
가스프롬은 불가항력 선언이 지난달 14일부터 소급 적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EU 고객사들은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스프롬의 이번 선언 배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EU는 러시아가 사실상 천연가스 공급 제한을 선언하며 자원 무기화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스프롬의 불가항력 선언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 수송관인 노르트스트림1에 바로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스프롬은 정비를 이유로 지난 11일부터 열흘 동안 노르트스트림1 가동을 중단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는 21일 가동이 재개돼야 한다. 하지만 가스프롬의 이번 통보로 노르트스트림1의 재가동 및 천연가스 공급 재개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EU 회원국은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EU의 산업 강국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막힐 경우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료 배급제를 시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귄터 외팅거 전 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은 “천연가스와 원유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산업의 범유럽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철강, 구리, 세라믹 등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EU가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도 향후 수입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미국에 허리케인이 찾아오면 미국에서 유럽으로의 LNG 수출이 쉽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겨울이 오기 전 유럽이 적절한 가스 재고를 확보해 두려면 지금부터 소비를 줄여야 한다”며 “유럽이 가스 저장고의 90%를 채워놔도 러시아가 공급을 전면 중단하면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의 천연가스 수급 경색을 다소 완화시킬 요인은 수요 감소다.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올 들어 EU의 가스 수요량은 11% 줄었다. 천연가스 가격 급등 때문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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