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최근 영국 정부가 내놓은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 혼란이 이어지면서다.
피치는 5일(현지시간) "영국의 정부부채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영국 중앙은행(BOE)의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려갔다. 피치는 다만 현재 국가신용등급은 'AA-'로 유지했다.
피치는 "영국 새 내각이 성장계획의 일환으로 발표한 단기적 대규모 재정 패키지가 중기적으로는 재정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릴 수 있다"고 전망 하향 배경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30일 또 다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영국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한 단계(안정적→부정적) 낮췄다. 무디스는 영국 정부의 채무 건전성이 훼손될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지난달 이른바 '트러스노믹스'로 불리는 대폭 감세 중심의 예산안을 내놓았다. BOE가 물가상승세를 낮추기 위해 긴축(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사실상 돈풀기 조치를 내놨다는 점에서 "당국 간 엇박자"라는 비판이 거셌다. 국채 금리가 폭등(국채 가격 하락)하는 등 시장 혼란이 심각해지자 BOE가 대규모 국채 매입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 트러스 총리도 부자 감세안을 일부 철회하기로 했지만,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피치는 이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엇박자는 금융시장의 확신과 정책에 대한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 정부가 부자 감세안을 일부 철회했지만 정치적 밑천이 이미 약해진 상황"이라며 "정부의 재정전략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추가로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고물가와 에너지 대란 등으로 인해 이미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5만개 이상 기업이 폐업했다.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한 규모다. 영국 내 560만개 기업 중 95%가 9인 이하의 사업장인 만큼 최근 들어 문을 닫고 있는 기업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추정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 기업들의 폐업 가속화에 대해 "심각한 물가상승세로 인해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탓"이라며 "트러스 내각의 감세 정책으로 소비자 신뢰는 더욱 추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동차, 가구 등 고가 제품이나 여행 등 서비스 구매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Gfk가 지난달 발표한 영국 소비자 신뢰 지수는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74년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여기에다 에너지 가격 폭등세로 인해 영국 중소업체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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