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가 '증권형 토큰' 도입을 골자로 한 법제 마련을 추진 중인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감독규제의 틀이 갖춰지고 있는 증권형 토큰이 때 아닌 주무부처 경쟁에 휘말릴 전망이다. 증권형 토큰이란 분산원장기술을 이용한 가상자산 중 증권의 속성을 가진 것을 뜻한다.
중기부는 이달 중 연구비 3000만원을 들여 '증권형 토큰 해외사례 연구를 통한 도입방안 검토' 용역에 긴급 착수할 방침이다. 이 용역은 2개월간 진행된다. 증권형 토큰이 기존 증권 제도와 가상자산 제도의 절충안적인 성격으로 알려졌다. 순기능이 많은 만큼 국내 도입 검토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취지다.
중기부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이번 연구용역의 핵심 과업은 '증권형 토큰의 국내 활용 방안 도출'로 해외 사례가 주를 차지했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 증권형 토큰이나 분산원장식 기록을 제도화하고 있는 나라의 법제와 현지 증권형 토큰 거래소 사례를 분석하는 식이다. 이들 사례를 참고해 도입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비상장 주식 거래'와 '크라우드 펀딩' 등처럼 기존 국내 제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분산원장 기술을 적용해 비용과 시간을 효율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다.
논란은 중기부가 용역 결과를 법제 마련에 활용하겠다고 명시한 데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중기부는 제안요청서에 "용역 수행기관이 제시한 국내 도입안 중 중기부가 1가지 안을 택해 국내 법령안 마련에 참고하겠다"고 적었다. 다만 용역 공고와 관련해 금융당국과 사전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부 벤처혁신정책과 관계자는 "증권형 토큰은 자본시장법상 규제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벤처기업들을 대변하는 중기부 입장에서도 개진할 수 있는 의견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일단 우리 입장에서는 해당 내용을 짚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용역을 낸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제도화에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때 아닌 중기부의 등장에 시장은 술렁이고 있다. 금융위에서 증권형 토큰을 둘러싼 현안을 다루고 있는 가운데 중기부가 규제당국 지위에 도전한 모양새여서다.
앞선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배포한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선 국정목표 중 하나로 '디지털자산 인프라 및 규율체계 구축'을 꼽고 가상자산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나눠 규제 체계를 만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인수위는 이 과제의 주무부처로 금융위를 지정했고 자본시장법에 따라 증권형 토큰이 발행될 수 있도록 시장여건을 조성한다고 했다.
학계와 연구계는 중기부의 단독 행보가 자본시장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연구계 한 관계자는 "증권형 토큰이 기업들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 부상하는 만큼 중기부가 부처 역할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진흥법 등에서 벤처기업 육성을 근거로 자본시장 규제에 대한 특별규정을 만들어서 특별법 우선 원칙에 의해 자본시장법의 영향을 배제시키는 등의 행보를 계획하고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정부에선 컨트롤타워 격으로 증권형 토큰에 대한 투자자보호와 산업육성을 한 곳에서 관리하자는 기조인데 중기부가 단독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최근 발간한 '국내 ICO 시장과 STO 시장의 당면 과제와 발전 방향'에서 디지털자산시장에 대한 감독관할권을 단일 감독기구가 가지는 게 규제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산업 육성의 주체가 되는 중기부가 규제를 겸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김 연구위원은 "독립된 디지털자산감독기구의 문제점을 분석해 국내에서 기존의 금융감독기구와 다른 별도의 디지털자산감독기구를 설치해 해당 기구가 가상자산시장감독을 전담하게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며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투자상품 규제에 있어 비효율성이 발생할 수 있고 두 기구간 관할권 분쟁의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증권형 토큰을 연구해 온 금융계 한 교수는 "중기부가 규제자유특구사업을 통해 부동산 증권형 토큰 방식의 조각투자 서비스 '비브릭'을 허용했을 때도 금융당국의 사전 협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중기부로선 단독으로 금융 감독·집행 수행 능력이 부족하지 않느냐"며 "사실상 주무부처가 정해진 현안을 두고 굳이 중기부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것은 억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13년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법제화 당시 금융위와 중기부 간 경쟁과 오버랩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시 금융위는 의원 입법을 통해 크라우드펀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런 금융위 행보와 별개로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도 부처의 기존 소관법인 중소기업창업지원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당시 중소벤처기업부의 논리는 자본시장법이 투자자보호에 초점을 맞춰 중소창업기업 지원 강화라는 목적 달성에는 창업지원법 규정이 더 바람직하단 것이었다. 이후 금융위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업무 조정을 거쳐 자본시장법상 크라우드펀딩 관련 내용을 담기로 했다. 주된 업계 현안을 서로 가져가기 위한 쟁탈전이 다시금 가열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만 업계 일부에선 중기부의 행보를 납득하는 시선도 있다. 업계 한 임원은 "중소벤처 기업들의 주식들을 다루는 문제인 만큼 중기부도 짚어볼 쟁점이 있다고 본다. 오히려 금융위가 단독으로 증권형 토큰을 다루게 될 경우 간과하는 업계 목소리를 중기부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며 "중기부도 새로운 법제 마련보다는 기존 금융위 소관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에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한편 이수영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중기부가 관련 용역을 낸 데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다"며 "타 부처의 용역과 관련해 부연할 말은 없다. 금융위는 기존 계획대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연말까지 증권형 토큰 규율 방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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