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닥쳐도 금리 인상 지속?[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4일(미 동부 시간) 뉴욕 증시 개장을 앞두고 영국 중앙은행(BOE)이 기준금리를 50b 올렸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빅스텝 인상은 예상되던 겁니다. 투자자들이 흠칫 놀란 건 향후 경제 전망이었습니다. BOE는 영국 경제가 4분기부터 침체에 빠져 향후 5개 분기 연속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기간입니다. 국내총생산(GDP)은 2023년 -1.5%, 2024년 -0.2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 실업률은 현재 3.7%에서 2025년 6.3%로 치솟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1995년 이후 처음 금리를 50bp나 올린 건 인플레이션이 지난 6월 9.4%에서 오는 4분기 13.3%까지 치솟을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10% 약간 넘을 것"이라던 예측보다 훨씬 높습니다. 통화정책회의(MPC) 위원 중 9명 중 8명이 50bp 인상에 동의했습니다.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는 "가계의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지금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BOE는 9월부터 향후 12개월간 100억 파운드의 보유자산을 매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ING는 "단 한 명만 50bp 인상에 반대했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BOE가 오는 9월 50bp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월가는 경기 침체가 오면 중앙은행이 긴축을 중단하고 인하할 것으로 예상해왔습니다. 하지만 경제 침체가 와도 '인플레이션이 높다면' 중앙은행이 계속 금리를 높일 수 있다는 게 BOE에서 확인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침체된 경제조차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임무를 우선시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블룸버그TV의 조너선 페로 앵커는 "장기 경기 침체와 13% 인플레이션을 예상하면서 50bp 금리를 인상한 게 Fed라고 생각해보라"라며 "그게 BOE가 한 것이고 정말 잔혹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중앙은행(Fed) 인사들이 연일 '비둘기파적 전환은 멀었다'라는 매파적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닐 캐시캐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 총재는 3일 저녁 "금융시장 일부는 우리가 내년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내년에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플레이션 역학을 볼 때 매우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인 것 같다. 더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계속 금리를 인상한 다음 인플레이션이 2%로 회복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캐시캐리 총재는 "시장이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Fed 내에서 가장 비둘기파로 꼽혀온 인물입니다. 또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이날 "Fed는 수요를 완화하기 위해 금리를 4%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며 "물가가 하락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볼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까지는 긴축을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BOE의 금리 인상 소식이 알려진 뒤 영국의 국채 10년물 금리가 1.929%에서 1.865%로 하락하면서 유럽의 금리도 떨어졌습니다. 경기 침체가 오는 데 금리를 계속 올린다면 침체는 정말 깊고 심각할 테니까요. 미국의 금리도 덩달아 내림세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후 4시께 전날보다 8.6bp 내린 2.664%에 거래됐습니다. 2년물은 4.9bp 내린 3.017%를 기록했습니다. 2년/10년물 수익률 곡선은 한 때 40bp가까이 역전되기도 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보합세로 출발했습니다. 그런 뒤 온종일 보합권에서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우는 0.26%, S&P500 지수는 0.08% 내렸습니다. 나스닥은 0.41% 오른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S&P500 지수는 지난 6월 16일부터 14% 가까이 반등했습니다. 그래서 펀드스트랫의 톰리 설립자 등 일부에선 바닥을 지났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지수가 기술적 저항선이 겹쳐있는 4200 목전에서 주춤하자 월가에서는 "베어마켓 랠리"라는 주장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스트레티가스는 이런 수준의 반등은 과거 베어마켓에서도 많이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1950년대 이후 베어마켓 랠리에서 S&P500 지수는 32거래일(6월 16일~8월 3일) 동안 평균 15% 상승했습니다. 스트레티가스는 "이번 랠리가 큰 것처럼 느껴졌지만 역사적으로 거의 평균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시장 포지셔닝이 지난 6월의 매우 낮은 수준에서 개선되면서 자산 배분 변동이 단기적인 랠리를 촉진할 수는 있지만, 거시 모멘텀에 긍정적 변화가 있다는 분명한 징후가 없다면 약세장의 끝을 알리는 신호라기보다는 시장 하락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긍정적 변화가 펀더멘털 투자자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 특히 그렇다. 사실, 반등의 건전성에 대한 투자자 전체의 광범위한 확신 없이는 현재의 낮은 수준의 변동성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궁극적으로 진짜 저점을 지난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으므로 앞으로의 증시 경로는 거시 경제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UBS의 제이슨 드라코 자산 배분 헤드는 "지난 FOMC에서 비둘기파들은 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비둘기파적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쪽은 6월과 같은 매파적 메시지를 전했다고 생각했다"라면서 "비둘기파들이 Fed가 전환하리라고 빠르게 결론을 낸 것은 약간의 의외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드라코 헤드는 "Fed의 매파적 성향은 올해 변화하는 데이터와 시장 상황에 따라 계속 강화되고 있다"라면서 "앞으로의 금리 인상 경로는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빨리 하락하는가, 얼마나 성장이 빨리 둔화하는가 데이터에 달려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경제 및 시장 환경은 여전히 도전적이며 펀더멘털은 일주일 만에 다른 Fed의 미래 경로를 예상할 만큼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라며 "인플레이션이 Fed가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확실하게 떨어지고 연준이 의심할 여지 없이 전환할 수 있을 때까지는 위험 자산에서 새로운 강세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읽어본 여러 보고서 중 가장 인사이트가 있다고 느꼈던 것은 JP모건의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나온 '왜 지금 증시가 랠리 했나'라는 제목의 보고서였습니다. 이번 랠리에는 여섯 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리포트는 마르코 콜라노비치 헤드가 있는 JP모건의 리서치팀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① 거시 경제 재평가에 따른 숏커버링이 있었다. 많은 시장 참여자가 Fed가 인플레이션에서 다시 경제 성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성장이 계속 실망스러우면 예상보다 빨리 긴축 사이클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공매도 포지션을 정리했다)
② 2분기가 올해 가장 나쁜 분기가 될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거대 기술주들이 줄줄이 예상보다 나은 실적을 내놓았다.
③ 개인투자자 매수세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④ 엄청난 자금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거래량과 유동성이 가벼웠다. 이는 작은 움직임을 증폭시켰다. 우리는 랠리를 쫓는 많은 기관투자자의 움직임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이 또 다른 베어마켓 랠리라고 믿는다.
⑤ 어느 시점에 대기 자금 일부가 시장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는 여전히 주가가 새로운 테스트를 받을 것이고 새 저점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그들은 변동성 지수(VIX)가 40이 넘고 S&P500 지수가 4~5% 급락하는 '대청소의 날'(Flush day)을 기다린다. 과거 바닥이 나타날 때 그랬다.
⑥ 기술주의 상승과 관련, 우리가 금리의 고점(10년물 6월 14일 3.47%)을 봤다면 그리고 저성장 환경이 이어진다면 수익률 곡선의 모양과 관계없이 거대 기술주는 틀림없이 가장 좋은 매수대상이다.
CNBC의 마이크 산톨리 주식평론가는 "이번 랠리가 대부분 포지셔닝 쇼크에 따른 것이었다는 셀사이드 트레이딩 데스크의 얘기가 많다. 헤지펀드 순매도, 극단적 약세 심리, 높은 현금 수준은 강력한 반등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게 모든 반등 랠리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랠리가 전적으로 시스템 거래, 유동성 요인에 관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6월 중순 S&P500 최저점 이후 유가는 20% 하락했고 휘발유 가격은 매일 떨어졌으며, 10년물 금리는 0.5% 포인트 이상 내렸다. 또 거시 경제 데이터는 '급격한 경기 침체'보다 '부드러운 착륙'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 그리고 이런 휘발유와 수익률의 하락은 'Fed의 매파 정점'에 대한 생각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뉴욕 증시가 하늘을 뒤덮은 중앙은행 매들의 공격에도 어느 정도 버텨낸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데이터가 계속 괜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지표로 여겨지는 지난주 실업급여 청구 건수는 이전 주(25만4000건)보다 6000건 증가한 26만 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올라가고는 있지만, 경기 침체를 부를 만큼 높은 건 아닙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노동시장 여건이 서서히 냉각되면서 계속해서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노동 수요는 여전히 강하고 신규 근로자 공급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노동시장이 급격히 악화할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또 미국의 6월 무역수지는 796억 달러 적자로 전달(849억 달러 적자)보다 더 감소했습니다. 3개월 연속 감소입니다. 원유, 천연가스 등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게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경제의 성장에는 플러스 요인입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이날 2.34% 하락한 배럴당 88.54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월 2일 이후 처음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브렌트유도 배럴당 1.3% 하락한 95.53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유럽 등의 경기가 악화하고 있는 데다, 미국에서는 드라이빙 시즌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에너지 가격 안정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요인일 뿐 아니라 경기 둔화 속도도 낮출 수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한달 반 이상 지속된 휘발유 가격의 하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기 침체의 시작 시점을 몇 달 정도 지연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중요한 데이터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금요일 7월 고용보고서가 나옵니다. 그래서 큰 방향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고용보고서는 Fed가 9월 회의에서 금리를 얼마나 인상할지 결정하기 전에 보게 될 두 개의 고용보고서 중 하나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69개 월가 금융사의 콘센서스는 25만 개 증가(중앙값)입니다. 추정 범위는 5만~32만5000개로 매우 넓습니다. 지난 6월 37만2000개보다는 줄어드는 것이며, 팬데믹 이전 2019년 평균 20만 개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KPMG의 다이언 스웽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만개 이상이면 팬데믹 이전보다 더 나으며, 여전히 강한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월가는 컨센서스보다 더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6번의 발표를 보면 5번이나 추정치를 넘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또 이번 주 발표된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내 고용 지수는 각각 47.3→49.9, 47.4→48.7로 상승했습니다. 50 이하로 위축 국면이긴 하지만 상승한 걸 보면 고용은 여전히 괜찮습니다. 헤드라인 수치 외에 임금상승률도 중요합니다. 지난 6월엔 전달 대비 0.3% 올랐었습니다. 월가 컨센서스는 같은 0.3% 증가입니다. 실업률은 3.6%를 유지될 것이란 관측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이 뉴스에 대한 의견과 질문을 자유롭게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