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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경제 안정기 끝나…세계 경제 '대변동 시대' 온다"

블루밍비트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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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충격으로 통화긴축 무용지물
세계 경제 재편되며 인플레이션 불가피
사진 = shutterstock

세계 경제기구 수장들이 통화정책으로는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진단을 내놨다. 공급망에 관한 변동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어서다. 공급 충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예상보다 힘들 거라고 경고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을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다.


◇"현재 경제 상황은 최악, 공급망 충격 심각해져"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최소 향후 5년 동안 통화정책 결정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발생 20년 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피나트 부총재는 “공급망 충격의 변동성이 예전보다 더 크고, 통화정책에 더 큰 비용이 드는 환경에 처해 있다”며 “유럽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위험도 있다”고 진단했다.


고피나트 부총재에 이어 부정적인 전망이 이어졌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WB) 총재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만으론 공급망 위기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맬패스 총재는 “금리 인상은 경제권역 내부에서 많은 마찰에 부딪힌다”며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지만, 금리를 인상하고 있지만 공급망과 생산 주기 등 여러 문제에 부닥쳐 중앙은행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총재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온 공급 순풍이 역풍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세계 경제가 역사적인 변화의 순간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복잡하게 얽힌 요인들로 인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서 비롯된 공급망 붕괴가 폭증한 수요와 맞물리자 물가가 치솟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세계적인 가격 인상을 가중했다.


공급망 위기에 대한 우려는 세계 곳곳에서 제기됐다. 미국 씽크탱크인 피터슨국제연구소의 아담 포젠 소장은 “중앙은행이 당장 해야 할 일은 무리한 인플레이션 억제가 아니라 공급 충격에 대한 대책 마련과 인플레이션 목표치 조정”이라고 강조했다.


◇공급망 재편으로 인플레이션 불가피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공급망 재편에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화 흐름이 역행하며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 통화정책이 효과를 못 내는 근본 이유란 분석이다.


이자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FT의 인터뷰에서 ‘대(大) 변동의 시대’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선언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화와 풍부한 노동력 공급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을 억제했던 ‘안정의 시대’가 역전됐다는 설명이다.


졸탄 포자르 크레디트스위스(CS) 전략분석가도 슈나벨 이사의 전망에 힘을 실었다. 그는 24일 공개한 투자 노트에서 현 상황을 ‘경제 전쟁’이라고 빗댔다. 세계 공급망은 평시에만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포자르는 월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장 분석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Fed)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통찰력 있는 분석 보고서(‘글로벌 머니 디스패치’)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는 ‘월가의 필독서’란 평가를 받고 있다.


포자르는 지난 20여년 간 인플레이션이 억제됐던 요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미국의 명목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이주노동자의 낮은 인건비 △실질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저렴한 중국산 공산품 △유럽과 독일에 유입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이다.


그는 이 요인들이 세계 경제를 움직인 '3가지 기둥'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세 요인은 두 가지 경제 블록 속에서 작동했다.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주창한 ‘유라시아(유럽+러시아)’와 포자르가 제시한 ‘차이메리카(중국+미국)’다.


세계의 자원창고인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를 활용해 유럽의 제조업이 활성화됐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저렴한 공산품을 수입한 미국은 물가 상승이 억제돼 양껏 통화완화(QE)를 시행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두 경제블록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유럽과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둘러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중심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무역으로 맺어진 신뢰가 산산이 조각난 것이다.


공급망은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서방국가는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고, 미국은 미주 대륙에서 노동력을 조달하는 니어쇼어링, 우방국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프렌드쇼어링과 생산기지를 본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에 한창이다. 또 미국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칩4 동맹’을 추진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대책이다.


◇美 인플레이션 극복하려면 '기적' 필요

필연적인 인플레이션 앞에서 경제 정책이 무력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하는 건 기적에 가깝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되레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제언이 잇따른다.


이날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을 역임한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며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기준금리 제한 구역에서 우리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고 밝혔다.


로치 교수는 1980년대 실업률이 10%에 달할 때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폴 볼커의 사례를 들었다. 로치 교수는 “대규모 통화 긴축에 따른 여파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근 Fed의 빠른 금리인상에도 실업률은 1969년 이후 최저 수준인 3.5%에 그치고 있다”며 “실업률이 아직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Fed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그 영향이 시작되고 미 경제는 분명히 경기침체를 겪게 될 것이다. 실업률이 반드시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5%를 넘길 것이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지만 6%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Fed가 내세운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포기하라는 주장에 입을 모았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스테파니 아론슨 연구원은 “3%를 목표치로 잡는다면 Fed가 공급충격을 넘어설 수 있는 유연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를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이날 미국 당국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며 중국과의 단절을 다시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이 중국 등 적대국들과 긴밀하게 얽혀있어서다.


중국을 경쟁 상대로 간주하지 않고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지적이다. 프렌미(적이자 우방·Friend+Enemy)로 설정해 하위 공급업체들과 관계들 단절하지 말라는 것. 국제무역이론의 근간인 ‘비교우위’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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