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가 기술적 반등에 머물면 한국이 반사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글로벌 달러 강세는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준다."(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
한국의 대표 경제학자인 이창용 한은 총재와 신현송 BIS 국장이 1일 올해 한국 경제의 방향과 전망을 주제로 대담했다.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회 한은·대한상의 세미나에서다.
이 총재와 신 국장은 올해 환율이 지난해와 달리 안정적일 것이란 데 동의했다. 이 총재는 "현재 상황에서 물가 예측치에 변동이 없는 한 환율은 안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수그러든다면 추가로 (미 중앙은행이) 금융 긴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그렇게 되면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정점을 찍은 달러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상황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경제가 올해 5%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두 사람은 내다봤다. 하지만 한국이 중국 경제 회복의 큰 수혜를 입을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이 총재는 "중국 여행객이 한국에 와서 경상수지 흑자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한다"면서도 "중국의 성장이 유가를 올리는 쪽으로 가는 리스크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신 국장은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으로 최종 소비재만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한·중 무역 관계는 중간재 수출입이 많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있어) 중국보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 총재와 신 국장의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신 국장은 "한국 기업들 입장에서 몇몇 전략적 업종 외에 미·중 갈등이 무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의문이 있을 수 있다"며 "미·중 마찰이 있다고 해도 미국과 중국 모두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 총재는 "중국에서 임금이 오르고 경쟁이 심해져 한국으로선 지난 20년간 누렸던 특수를 누리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며 "중국 의존도를 바꿔야 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총재는 "미국과 유럽 경제가 지금 수준에서 침체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느냐"고 신 국장에게 묻기도 했다. 신 국장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며 "지금은 달러화 가치와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서 연착륙에 대한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고 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고용시장이 균형을 찾고 어느 정도 경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진=최혁 기자
대담에 앞서 신 국장은 '세계 경제와 국제무역의 전망'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달러 가치와 수출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달러가 약세를 나타냈을 때 금융 여건이 개선돼 수출이 오히려 성장했다"고 전했다. 자국 통화의 가치가 절하(환율 상승)되면 수출이 늘어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글로벌 가치 사슬 내에서는 달러 조달 여건이 호전됐을 때, 즉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일 때 기업의 운전자금 조달도 쉬워져 교역량이 늘어난다는 게 신 국장의 주장이다.
이 총재는 "세계 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세적인 흐름으로, 최근 정치적 갈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포인트"라며 "무역의 트렌드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환율을 통한 금융 측면을 밝혀낸 건 신 국장의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신 국장은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예견해 명성을 얻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낸 이 총재와는 국제금융기구에서 일한 점과 이명박 정부 고위 관료를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 국장은 이 총재와 함께 윤석열 정부 출범 전 한은 총재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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