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승의 ₿피셜 왜 우리는 아직도 ICO 시대에 머물러 있나 언젠가부터 크립토 시장은 뚜렷하게 양분됐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메이저 코인'과 제도권에 잘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내러티브로 인기와 유동성이 갈라졌다. 2023년, 비트코인만 상승했고 유명 알트코인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알트코인 횡보장 속에서 알파를 찾는 디젠(Degen, 크립토 시장에서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높은 변동성을 찾는 투자자들을 일컫는 속어)들은 밈코인이라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찾아 변동성을 즐겼다. 2024년에도 비트코인의 독주가 이어졌다. 2025년 현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오른 뒤 메이저 알트코인으로 불꽃이 옮겨붙는 모습이다. 밈코인을 즐기던 디젠들은 최근에는 '퍼프덱스'라는 신규 테마에 몰리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흐름이 모두 미국의 규제변화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크립토 업계 전반을 초법적으로 압박했다. 이로 인해 이더리움과 솔라나 같은 메이저 알트코인뿐 아니라 대형 디파이 프로젝트, 코인베이스와 바이낸스 같은 거래소들까지 성장이 멈췄다. 알트코인들이 장기간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그래서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자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오히려 '백서도, 사업계획도 필요 없다. 어텐션이 곧 가치다'라는 밈코인이었다. 일각에서 밈코인을 규제에 대한 저항 서사로 읽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알트코인 중 솔라나가 거의 유일하게 밈코인 생태계의 수혜를 입어 성장했다. 2024년 1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되면서 비트코인의 독주는 공식화됐다. 이더리움 현물 ETF도 뒤따라 상장됐지만, '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자산은 증권'이라는 입장의 SEC가 스테이킹의 증권성을 문제 삼으면서 상승은 더뎠다. 행정부 차원의 조사와 위협이 이더리움 생태계 전반을 장기간 짓눌렀다. 2025년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스테이블코인을 국가적 사업으로 명시하며 관련 프로젝트들이 강세를 보였다. 디지털 자산 트레저리(DAT) 기업들이 등장했고, 알트코인 현물 ETF 기대감도 증폭되고 있다. 백악관과 SEC, CFTC, OCC, FRB 등 주요 기관들이 '그림자 규제 철폐'를 공개적으로 반복 선언한 것이 업계에 활기를 부르고,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주었다. 기관과 기업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매수하고, 엑스알피와 솔라나 등 메이저 알트코인들도 기대심리에 상승했다. 한편, 시장의 다른 한쪽에서는 퍼프덱스(Perp Dex) 테마가 강세다. 퍼프덱스는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을 거래하는 탈중앙화 거래소를 뜻한다. 무기한 선물(Perp)과 탈중앙화 거래소(DEX)는 각각 새롭지 않은 개념이지만, 하이퍼리퀴드라는 이름의 퍼프덱스 거래소가 큰 인기를 끌며 하이퍼리퀴드 토큰(HYPE)이 장기 상승하자, 이를 따라 베이스 체인의 아반티스(AVNT), BNB 체인의 아스터(ASTER) 등도 등장하며 퍼프덱스는 내러티브이자 테마로 진화 중이다. 왜 인제 와서 퍼프덱스가 테마가 된 걸까. 배경에는 SEC의 태세 전환이 있다. 트럼프 취임 첫날부터 '더 잘 할 수 있습니다(SEC can do better)'라며 규제개혁을 약속한 SEC는 '증권성 소송'을 남발하던 과거와 달리 매우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디파이 규제 면제를 검토하고, 백악관 리포트를 토대로 '프로젝트 크립토'를 선언하며 △토큰화 금융자산의 미국 내 거래 허용, △증권과 비증권을 아우르는 슈퍼앱 허용, △자동화 마켓메이커(AMM)등 디파이(DeFi) 규칙 제정, △온체인 증권시장 육성 등을 약속했다. 이는 토큰화(tokenization)와 RWA(Real World Asset) 시장 확장뿐 아니라 DEX에도 직접적인 호재가 됐다. 하이퍼리퀴드 장기 상승의 배경에는 바이백(buyback)도 있다. 하이퍼리퀴드 거래소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시장에서 하이퍼리퀴드(HYPE) 토큰을 매수하는 것인데, 이러한 바이백이 바이든 정권 하에서는 SEC의 증권성 소송 난사로 인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취임 이후 SEC의 태세 전환으로 법적 불명확성이 개선되었다. 하이퍼리퀴드는 높은 거래량으로 수익을 내고, 이를 공격적인 바이백에 할당해 토큰 가격 상승을 이끌었으며, 이것이 하이퍼리퀴드에 더 많은 충성이용자를 만들어 내는 플라이휠(flywheel)효과를 일으켰다. 상기한 아반티스, 아스터 등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규제 개혁 덕분에 글로벌 크립토 시장은 양쪽에서 상승장을 만끽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는 아직도 2017년 ICO 광풍 차단에 머물러 있다. 한국 기업은 퍼프덱스를 만들 수도, 바이백을 할 수도 없다.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들은 아직도 비트코인 현물 ETF를 거래하지 못한다. 2017년 전후 만들어진 '가상통화 긴급대책'이 아직 유효한 탓이다. ICO 이후 두 번의 디파이(DeFi) 대유행, NFT, 밈코인, ETF와 DAT, 퍼프덱스까지 시장은 끊임없이 진화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대로다. 이번 주는 크립토 업계의 명절인 KBW(Korea Blockchain Week)가 열리는 주다. 올해도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 한국 시장과 제도에 관해 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법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하면 안 된다', '해도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만 내놓을 것이다. 결국 또 혁신과 발전의 수혜는 외국인들만 가져갈 것이다.
9월 23일일반 뉴스